오늘 아침만 하여도 삶이 엉망진창으로 뒹굴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면들은 썩 괜찮아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에 일 순간 "아 인생은 재난이야. life is a disaster."라고 뱉어내버렸다. 진작에 처리했으면 무탈할 것을 어리석게 미루고 미뤄오다가 구구절절 토를 다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그 고인 염증이 이제 터져버린 것인데 불과 며칠 전만 하여도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꿋꿋이 다짐을 했었다. 왜냐면 좋아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도 여전히 9 to 6 출근을 하지 않는 삶에 짜릿함을 느끼면서 매일 밤 잠들기 전 하루 하루를 선명하게 각인시키며 내일을 기대했다. 누구 말처럼 내가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 때가 나를 기다리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수면이 조금 잦아들 때까지 기다린 것이 이 모양새를 초래했다.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기는 너무 힘드니까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고 타협을 해야한다고 나 자신 그리고 모든 사회와 약속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지껏 주춤거리고 있는 걸 발견하니 정말 내동댕이치고 싶어지다가도 끝내 어르고 어를 수 있는 것마저 스스로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매일 아침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기 위해 서울을 횡단한다. 2호선을 갈아타는 왕십리 역사 안 자판기에서는 데자와 밀크티가 800원이지만 같은 역사 내 5호선 방향에 있는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는 이 제품이 1,200원에 판매된다. 그렇지만 내가 하차하는 상수역 내 편의점에서는 11월 한 달동안 1+1 덤을 껴주는 행사에 1,200원 프로모션을 하는 지라 늘 아침마다 1시간 가량 목마름을 감수한채 동전을 매만지기도 했다. 어제 알아차린 바로는 환승하는 합정역 2호선 앞 자판기에서는 900원이라는 생소한 가격에 데자와를 판매하고 있다. 그렇지만 오늘은 몇 푼 더 아껴보겠다고 빈 손으로 출근을 했다. 그리고 넌 그걸 마실 자격도 없어라며 정말 엉망이군, 엉망이야.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청소기를 돌리기 전 거실에 있는 데이브라는 분에게 "I am sorry that i have to make some nosie"라며 양해를 구하는데. 돌아오는 답변이 나를 붙들고 흔들었다. "As much as you like!".

...

그 한 마디의 에너지가 보란듯 나를 움직이게 만들고 모든 재난을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 그래 하루가 지나면 또 다른 하루가 오지. 그건 아마 기회일 것이다. 다시 제대로 할 수 있을 기회. 회복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처럼 행운을 만나면서 다시 제 갈 길을 찾는다. 그 갈 길이라는게 정해진 건 없어도 네가 재미있고 정말 좋다면! 그래. 얼마든지!라는 거다. 늘 모자란 나는 좋아하는 이들과 좋아하는 영화, 이미지, 이야기, 공간 많은 것들에 항상 빚을 지고 가는 마음이다.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안간힘 쓰되 내려놓을 때는 내려놓을 줄 아는 현명하고도 너무 무르지는 않지만 또 너무 단단하지도 않은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bless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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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아트시네마에서 있었던 '작가를 만나다'에서 <논픽션 다이어리>를 두고 이용철 평론가와 정윤석 감독이 얘기하는 자리를 가졌다. 운이 좋게도 친구 따라 서촌 갔다가 작년에 개봉 전 이 영화를 보았었는데 1년이 지난뒤 내게 남은 어렴풋한 기억은 연출자의 '집요함'이었다. 우리가 그런 시대를 '통과'해왔다는 사실을 배치해준 이미지들에 의해 깨닫을 수 있었고, 지금 발 딛고 있는 현실은 어디인가를 가늠해보게 한 것은 사실 오늘의 시네토크를 통해서였다.

 이야기는 영화가 개봉하게 된 시기에 세월호 참사 이후의 여파가 끼친 영향에 대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같은 여름에 흥행한 <명량>이 한 영웅을 앞세워 결국엔 모두를 '수장시키고 마는' 일종의 슬래셔 무비라고 짚어 얘기하며 한국 사회의 피로감이 해소되는 방식으로 연결지어 얘기하는데 이 부분이 굉장히 슬프고 무서웠다. 나는 이 어마어마한 참사를 어떻게 껴안고 가야 할 지 사실은 아직 자신이 없지만 감독이 전해준 어느 관객의 리뷰에 대한 마음과 나도 같다고 말하고 싶다. 아트시네마 몇 년을 다니고도 시네토크를 녹음해본 것은 또 처음인데 그 대목을 옮겨보자면 :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망각하지 않고서는 살기 어려운 세상이에요. 그 죽음이 중요한 의미이고 용산이나 세월호는 정말 잊어서는 안되는 것인데 이 영화가 자기가 살기 위해서 잊고 있었던 (리뷰를 쓴 관객 친구 분의) 죽음을 어느 한 순간에 일깨운다는 그 사실이 감사했고, 그 사람한테 그런 시간을 만들어줄 수 있는 기능적인 역할을 해서 뿌듯했어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되살려온다는 것. 그의 이야기를 통해 나 또한 그 불편함을 다시 끄집어낼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에 마음의 빚을 지는 기분이었다. 굉장히 고마웠고 시네토크 내내 차분하면서도 분명한 그의 목소리에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이야기가 어느 구조를 갖고 있다기보다는 패치워크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관객의 인상에 대해 답하길 "이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내러티브가 강화되면 될수록 선과 악의 구도로 갈 수 밖에 없어요. 관객들이 몇 년 후에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시선이 가게 되는 부분이 달랐으면 했고요. 저에겐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을 볼 때마다 눈이 가는 인물들이 다르거든요."

"현대 예술가들이 다른 건 다 포기할 수 있어요. 토렌트에 내 영화 다 풀리고 돈 하나도 못 벌어도 상관없는데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이야기의 권력을 자기가 독점한다는 거거든요. 한국에서 스릴러 영화가 유행하는 데엔 이유가 있어요. 사회적인 폭력성말고도."

 그의 꿋꿋한 목소리를 들으며 '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용철 샘이 <논픽션 다이어리>가 개봉 당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며 더 나아가 대기업들이 소히 말하는 '다양성 영화'라고 일컫는 사업의 졸렬함에 대해 시원하게 말씀해주신 것도 매우 좋았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화를 내고 계셨지만 정말 이와 같은 영화가 잘되길 바랐으면 하는 그 진심 어린 마음이 너무도 잘 드러났기에 그 모습에 또 뭉클. 감독님이 본인의 '첫 영화 상영'에 대한 기억-그것도 서울아트시네마에서-과 마지막 촬영 날 지존파의 무덤에 찾아가 비석에 손을 얹었던 경험에 대해 공유해주신 것 또한 무척 감사했다. 더불어 나는 여름에 파리에서 좋아하는 감독들의 묘를 찾아가며 비석에 손을 얹었던, '만져질듯한 감정들'에 대한 기억을 함께 떠올렸다. 이 분의 행보를 어떤 식으로든 항상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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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들) 되기

rewind 2014. 9. 21. 03:04

<관계 (들) 되기>

안무 : 장홍석 퍼포머 : 장홍석, 이재은 드라마트루그 : 정명주 사운드디자인 : 안준서

 관계라는 것은 노련해질래야 노련해질 수 없다. 마모되거나 혹은 확장되거나 모양새는 가지 각각이다. 지난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2014에서 '소호호뱀' 공연'을 통해 <관계 (들) 되기>를 보았을 당시 6살 무렵에 보았던 어느 클레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근 2주가 지난 뒤에야 비로소 그 제목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는데 바로 <패트와 매트>다. 둘은 언뜻 보기에 노련한듯 제법 모양새를 갖춰가며 항상 함께 무언가를 만들곤 하지만 이내 실패하고 망설일 새도 없이 다시 '도전'을 한다. 그 어떤 표정의 미동도 없이 무언으로 '꾸준하고 착실하게' 일을 해나가지만 거기에는 협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드라마가 있다.

 <관계 (들) 되기>의 시작은 흡사 애니메이션 같다. 핀볼 게임이나 어느 기계의 부속물과 같이 두 퍼포머가 정확한 액션들을 취하며 공간을 점유해나간다. 사운드의 어느 부분에서는 1980년대 스즈키 세이준을 비롯해 여러 일본 영화에서 종종 쓰이던 비파와 같은 현악기가 컷에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뭔가 장면에 '킥'을 던진다고나 할까. (특히 나는 <지고이네르바이젠>에서 맹인 셋이 바닷가에서 벌이던 퍼포먼스를 가장 좋아라한다.)

조명이 점멸될 때마다 이전에 위치해있던 둘의 모습은 무대 위에 잔상으로 남겨지며 또 다른 관계(혹은 이전의 관계에서의 연장)가 어느 곳에서 시작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모양새의 성질이 달라진다. 때로는 마치 밀가루처럼 둘 사이의 위태위태한 점성이 발생하는가 하면 이내 일련의 행동이 수면처럼 퍼져나가거나 무게가 전이되기도 한다. 그저 신체의 물질화라고만 보기엔 여기에서도 어떤 드라마가 발생한다. 그 드라마를 지탱하는 것은 우리들 관계의 '리듬감'이다. 어긋난 리듬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한 신체가 안정된 공간 내에서 이탈했을 때, 말 그대로 튕겨져 나갔을 때 둘은 표정으로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이 관계의 균형은 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항상 입으로 털어 먹고 사는, 특히나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는 '대사'로 상황을 이어나가는 내게 이런 '몸짓'들만으로 감정이 드러나는 작업은 어떤 황홀감을 안겨다 준다. 이후 한예종에서 한 차례 더 있었던 공연은 공간 뿐 아니라 조명이 달라졌고 때때로 어린 아이의 울음 섞인 투정이 추임새처럼 함께 들어갔다. <관계(들)되기>는 너도 나도 모두 다른 리듬과 온도를 근사한 모양새로 패턴화시킨 작품이다.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2014, 소호호뱀 : 관계(들)되기 : 

http://www.seoulfringefestival.net/load.asp?subPage=210.view&search_gubun=&orb=&search_section=&search_category=&search_idx=991


패트와 매트 : http://youtu.be/YS3Mt_5w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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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포드 연구 전문가라고 하는 미국의 비평가 '태그 갤러거(Tag Gallagher)'가 존 포드 탄생 120주년을 기념해 부산 영화의 전당에 이어 서울아트시네마에도 찾아왔다. 범상치 않다는 그의 용모에 대해 미리 귀띔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상 위로 올라온 그를 보자 과연 탄성이 흘러나왔다. 마치 70년대 히피족을 지나와 노년에 동네 바에서 매일같이 맥주 한 잔을 끼고 그레이트풀데드나 메탈리카를 들을 거 같은 옆집 할아버지 느낌. 그래서 한참을 두리번거렸는데 그 흔한 팔뚝에 거미줄 문신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래봤자 많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일련의 비평가들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소개를 부탁하자 긴 설명 할 거 없이 준비해온 영상을 본 뒤 다시 만나자고 하는 그의 태도는 사실 조금 생경했다. ("I don't want to talk too much"라고 말하셨던듯) 내가 아는 또는 생각하는 비평가의 몇 안되는 이미지라곤 좋고 싫음이 분명한데에 주저없이 후두두둑 말을 쏟아내거나 정말 조근조근 생각을 풀어내는 사람들 정도이기 때문이다. '존 포드'를 좋아하는데다 그런 용모이시면 거침 없는 마초적인 느낌에 오승욱 감독님 같이 대번에 열변을 토해내실것만 같았는데 음, 어떤 온도의 사람이실까 궁금증이 일었고 조금 멈칫했다. 영상을 상영한뒤 이어진 자리에서도 그는 내가 기대했던 '달려드는 모양새'를 취하진 않았지만 때때로 소년과 같은 격앙된 목소리로 입을 모으곤 했다.

'말하는 모양새'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니 떠올랐는데 아까 아트시네마 로비에서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돌려보니 다름 아닌 허문영 쌤이셨다. 순간 느낌이 굉장히 이상했던게 '말투는 조근조근하지만 성량이 풍부해 멀리서까지 들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조근조근하다'라는 것은 목소리를 낮추어 차근한 모양새로 말을 풀어나가는 것인데 이게 또 큰 목소리로도 가능한거구나. 새삼 신기해서 한참을 귀기울여버렸다. 강연 전에 은경 언니가 태그 갤러거의 목소리를 두고 굉장히 조용하신 분이라고 말했었던지라 그에 더 신경이 기울었나보다. 원체 성량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때때로는 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내냐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 요즘의 나는 적당한 데시벨의 목소리와 덜 호들갑스러운 목소리의 지점을 찾고 있다. 나는 너무도 방정 맞다.

1시간 조금 안되는 시간동안 아-주 많은 이야기가 오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드문드문 기억나는 이야기들이 몇 있다. 이건 그의 목소리 톤으로 직접 들어야 느낌이 더 사는데 그냥 혼자만 알고 있기엔 아까워서 말이다. 태그 갤러거의 목소리는 뭔가 심드렁한듯 하면서도 자신의 그 진심을 알아주지 못하면 서운해하는 어린 아이 같은 느낌이 있다. 갈수록 점점 '확신에 찬듯'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물이 나기 시작했는데 오늘 같이 이렇게 귀여운 애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을 보긴 또 간만이다.

초반에는 마냥 이야기를 들으며 깔깔대다가 후반에 메모했던 것을 옮겨보자면 어느 관객이 "존 포드 영화 중에서 혹시 싫어하시는 작품이 있으신지? 싫어하시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좀 덜 좋아한다던가 하는게 있으신지요?"라고 조심스레 물었다. 왜냐면 초반에 그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려워도 싫어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건 어렵지 않다'와 같은 식으로 말을 한 바 있었기 때문일터. 그러자 그는 "Why do you ask such thing?"이라며 투정 섞인 목소리를 낸다. 이어 궂이 말하자면 <도노반의 산호초>에서 스키 타는 장면을 정말 싫어한다! "그러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나요?"라고 하니 대번에 "No!"라며 고개를 돌려버리는 이 할아버지! 그 No의 뉘앙스는 마치 조카에게 '이모 이거 한 입만 주면 안돼?'라고 물었을때 싫어!하는 것과 같은 느낌. (난 또 혹시나 존 웨인이 여자의 엉덩이를 때리는 장면!이라고 말했더라면 순간 'Me neither!'이라며 자리에서 일어날뻔 했네.)

그리고 로셀리니와 존 포드에 대한 책을 쓰셨는데 둘의 공통점이 있다면 어떤게 있는지? "둘 다 카톨릭이다" (관객 좌중 웃음) "근데 이건 진지한거야. 둘 다 교회에 다니거나 하는 신실한 카톨릭은 아니지만 그 종교라는 것이 그들의 세계관에 어떤 영향들을 주었고 모두 역사에 대한 관심이 굉장하기 때문이지. 그리고 로셀리니 역시 무르나우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어!"

앞서 보여주었던 영상은 그가 여태까지 직접 매킨토시로 편집하며 코멘터리를 덧붙였다는 존 포드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 영상으로서 비평하는 방식이 매우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다들 하지 않는 건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다시 한 번 근래 지혜언니와 함께 고민했던 부분들에 힘을 얻게 되던 순간! 

오늘 하스미 시게히코의 <오즈 야스지로>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도 그렇고 태그 갤러거를 만난뒤 새삼 '영화를 보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며 '비평'이란 것이 '애정'에서 출발한다는 것임을 새삼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좋아하는 영화들에 대해서는 그리도 호들갑을 떨면서 '싫다고' 짐짓 지나쳐버렸던 영화들을 다시 돌이켜 본 적은 있는 지에 대해 반성하기도 했다. 수 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오즈의 영화가 풍부하게 읽히고, 보이는 것을 보면 단순히 물리적인 작품에 한정된다기보다 개별로서의 '현상'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왜 나는 '오즈적인 것'에 대해 입을 모으면서도 그것을 한정하려 했는가. 애정을 표하면서도 어찌 그것들이 모두 엇비슷한 것들의 반복이라고만 느꼈던 것인지. 오즈에 대한 하스미 시게히코의 애정 어린 시선들을 보며 나는 과연 그에 얼마나 충실하게 감정을 표현했었는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태그 갤러거는 마지막으로 "아니, 존 포드 영화는 100편이 넘는데 지금 서울아트시네마 이 곳에서는 단 16편만을 튼다고 한다. 이거 다들 피켓을 들고 데모해서라도 모두 10번 이상 틀게 하라!고 해야하는거 아닌가! (프로그래머 김쌤을 가리키며) He wants your help! GO FOR IT!"라는 말을 남겼다. 우선 이 참에 줄곧 지나쳐왔던 존 포드를 만나볼 참이고 앞으로야 뭐 모스필름, 올리베이라(ㅠ_ㅠ), 베니스, 친구들영화제가 남아있으니 당분간 데모할 일은 없을테지. 사실 항상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는 우리 극장인지라 혹여라도 그런 데모질 같은 호사를 부리는 때가 오기나 했으면 좋겠네. 이 참에 박원순 서울시장님은 어서 아트시네마에 대한 지원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보고해주시라!

지인의 추천으로는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 How Green Was My Valley>는 반드시 봐야만 한다고 한다. 마지막 상영이 9월 25일 목요일 17:30에 남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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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판타지

책갈피 2014. 8. 10. 03:03

Hector: Mr. Hanna, what can I bring for you on this glorious afternoon?


Mark Hanna: Well, Hector here's the game plan. You're gonna bring us two Absolut martinis, you know how I like 'em, straight up.

[he gives Hector some money]


Mark Hanna: And then precisely in seven and one half minutes after that you're gonna bring us two more. And then two more after that every five minutes until one of us passes the fuck out.


[Jordan laughs]


The Wolf of Wall Street, Martin Scors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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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시작!

rewind 2014. 6. 8. 08:39
파리는 어제부터 갑자기 20도가 넘으며 늦더위가 시작되었다. 물 사먹는게 돈 아깝다고 생각되어 기를 쓰고 끓여 마시는데 사실 이상하게 하루에 한 잔 마시기도 어렵다. 전철 고장으로 20분간 사람들 북새통 사이에 앉아있는데 머리가 빙빙 돌아 아 아무래도 물을 안 마셔서 더위를 먹은 모양인가보다라고 생각되어 오늘은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서 물을 한 사발 끓여 마시기로 한다.

사실 화장실 갈 때 돈을 지불해야한다거니 위급한 상황에 도심에서 발견하기 어렵다는 사실과 영화를 보는 동안 마려워하면 안된다는 게 더욱 이상한 쪽으로 강박 관념을 만들어버렸다.

그러고 나서 상태가 조금 호전되어 심야 영화로 <The Rover>를 보러 나갔다. 워낙 천천히 진행되는 서사 탓에 중도에 나가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는데 기다림이 필요한 영화다. 이 두 배우가 대체 연기를 하고 있는 건가 싶다가 로버트 패틴슨의 호주 억양 영어를 듣고 있노라면.... 불어 자막에 간간이 나오는 단어들만으로 상황을 유추할 때도 더러 있었다. 그만큼 알아듣기가 너무 어려웠음. 며칠 전에 포럼 데 이마주에서 호주 영화 한 편 봤다가 정말 패닉;;

중후반부 두 배우의 마스크, 표정을 쉽게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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쎋 빠히

카테고리 없음 2014. 6. 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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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 도착한 날 첫 메모

2호선쿠션 무늬가 제일 맘에 듬.
맥 플러리가 3.1유로
심지어 화장실이 1유로인 곳도 있음
섹시 벨이라니 허접하다 허접해

숙소 주인인 안나가 북역으로 마중을 나와주었다. 그녀는 일 때문에 친구 집에서 지낼 것이라 하고 룸메이트인 얀이란 친구와 나 단둘이 지내게 될 것이라 했다. 영국에서 28인실 혼성을 쓰긴 했었어도 난생 처음 남성이랑 둘이 생활 공간을 공유하라니. 그것도 샤워실은 문도 안 잠긴대. 긴장과 흥미로움이 오가는 가운데 첫 날 침대방에서 멀리 등대처럼 비추는 에펠탑 불빛을 보았다. 여기가 파리냐.

섹시 벨은 첫 날에 쓴 메모는 아닌 거 같은데 몽마르트 언덕에 우연히 흘러 들어갔다가 팔찌 파는 아프리칸 남자에게 들은 말이다. 계속 나한테 다가오지마하는 오만인상을 쓴 채 양손을 점퍼 주머니에 넣고 돌아다녔다. 인상을 쓴 건 혹시나 하는 마음 그러니까 단지 겁을 조금 먹었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긴장을 내려놓을 수 없는 여행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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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루를 어떻게 채워 나가야 하나 런던 초반에 했던 생각. 그러나 이내 곧 내가 꽤나 부지런하면서도 게으른 것도 아니고 뭐라 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나를 조금 알게 된 느낌이다. 그냥 걸어 돌아다니며 시내 전역을 익숙하게 몸으로 눈으로 받아들이고 싶었을 뿐 그 이상 투어 관광이 조금이라도 몰려 있는 곳이라 생각되면 무조건 피해다녔다. 이 곳에 줄곧 거주해왔던 사람처럼 카메라나 지도 따위 등을 손에 쥐지 않고 주머니에 쉽고 편리하게 넣어 눈동자를 열심히 굴리지 않고 앞만 보고 걸으면 이내 관광객이 길을 물어오곤 했다. 그러다 정 안되겠다 싶은 순간에는 지도를 펼쳐들고 불안의 눈동자를 굴리며 런던 시민에게 익스큐즈 미하며 호소를 했으니 나도 참 간사하고 편리한 인간이구나 싶어 웃었다.;;

온전히 나를 중심으로 시간이 돌아간다는게 좋다. 아침에는 점심 도시락을 싸기 위해 통마늘을 까야했는데 그 노동에 그토록 많은 힘과 근육이 쓰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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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아영과 한 시간 조금 안되게 통화를 하고 나서 든 생각.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사람들로 온통 견고하게 둘러싸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성벽이기보다는 등대였으면 하는 느낌.

그냥 걷다가 흘러 들어가면 이내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성이나 공원이 드러났고 조금만 더 걸으면 우연히도 루브르가 나타났다. 저 멀리 보이는 에펠탑 꼭두머리를 보고는 무작정 그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꽤 가깝다고 여겨졌지만 길을 헤매고 결국 버스를 타느라 두 어 시간 정도는 지체되지 않았었나 싶음. 에펠탑은 무척 크고도 선명했으며 탑 바로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니 여성의 음부를 올려다보는 기분이어서 황급히 샤요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바라본 에펠탑은 400번의 구타에서 본 그 탑이었고 가까이에서 본 것은 몽상가들에 나오는 거대한 생명체였다. 이제야 지미 헨드릭스 노래에 맞추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던 에펠탑의 모습이 이해된다. 마치 인간의 몸을 훑듯.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느낌을 발견하지 못했겠지. 그제야 보길 잘했다하는 생각이 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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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전철에서는 시선이 교차된다. 문 옆 의자에 앉은 나는 출입문 창에 비추는 앞에 앉은 사람들을 보는데 이 시선은 왼편을 향해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 앞에 마주 앉은 남자는 내 쪽을 보고 있다. 그러다 내가 고개를 살짝 돌렸을 때 둘은 눈이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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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철이 천정에 있는 등만 빼고 모두 불이 꺼졌다. 그것도 지하 철로 한복판에서. 모두가 무어라 중얼거리는데 뭐라 하는 지는 모르겠고 옆에 있는 노인네가 지팡이로 바닥을 툭툭툭툭 연신 쳐댄다. 그게 요술을 부린 모양인지 1분도 안되어 전철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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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R 노선으로 갈아타려는데 전철의 외부 창이 새까만 먼지로 뒤덮여있었다. 자꾸 설국열차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건 잿더미 열차라고 해야 할까;; 샤를드골 에틀레?역에서 한 정거장을 지나는데 순간 전철 내부가 사람들 말하는 목소리들로 가득 차 있음을 알아차렸다. 모두가 퇴근하는 사람들은 아니겠지만 서울에서 만원 지하철이 정적으로 가득한 가운데 다들 핸드폰만 들여다 보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참 다르다. 그리고 접이식 의자에 앉아있던 여자 아이가 사람들이 들어차니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입석을 한다. 그냥 우기며 앉아 있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알고 보니 누구나가 다 그러더라.

오후 8시대의 리옹역 방향 RER 노선은 다시 타고 싶지 않을 거 같다. 이산화탄소로 가득 차 내부는 덥고 답답하며 숨이 가빠지고 맥박이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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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르의 국외자들을 몇 년만에 보는데 그 당시에도 전철이 있었다니! Libertè역. 그리고 심지어 Monoprix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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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켈리가 캐씨를 쳐다보던 그 눈빛. 연기였을지라도 진심이 느껴진 그 순간을 잊고 싶지 않다. 모두가 박수 쳤던 <Singing in the Rain>

그리고 집으로 오던 밤길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길가에 목줄 없이 남자와 함께 눈과 발걸음을 맞추며 걷던 요크셔테리어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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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에 장 비고의 <라탈랑트>를 보러 갔다. 매표소 직원 앞에 섰는데 그녀가 "Bonjour!"라고 내뱉은 한마디에 당황해서 하려던 말을 까먹었다. 왜냐하면 저녁 8시였고 나는 당연히 "Bonsoir"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관 입장을 위해 줄서있는데 전주영화제에서 샀던 포르투갈 감독이 그려진 에코백을 가져올걸 그랬다. 이름이 기억나질 않아 왜! 파졸리니 에코백을 매고 있는 사람에게 그거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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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머리칼을 가진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지만 영화가 끝난뒤 그 감흥이 어떻든 간에 너는 쓸쓸함을 안고 극장을 나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원래 그런 것이다. 영화는 결국에 네가 살아가는 현실이 씁쓸할 수 밖에 없음을 안겨준다. 하나 둘씩 극장을 들어오는 이 사람들.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에 갑자기 눈물이 차기 시작했다.

첫 관객은 5-60대의 아저씨, 두번째는 왠 동양인 여자, 세번째로는 예쁜 머리칼과 수염을 지닌 남자, 네번째로는 중년의 여자와 임산부가 함께 들어왔고 그 다음으로도 중년의 여자 한 명. 조금 전에는 대머리의 중년 남자가.

MK2 Beaubourg? 이 극장의 선곡이 참 좋다. Feist 음악이 갑자기 생각나면서 그녀의 노래만 종일 틀어두어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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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이 멈추면서 바람이 불었고 왼쪽 뺨에 있던 잔머리가 오른쪽으로 쏟아졌다. 많이 기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전철이 어느 곳으로 추락하고 있었으면 했고 눈을 감고 있었던 상태에서 앞이 하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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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 마지막 날

rewind 2014. 6. 5. 20:21
Grand Palace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광장이 하나 나온다. 여기에서는 그 어떤 것을 비싸게 팔아도 사람들 그러니까 관광객들이 주저 없이 지갑을 열 것만 같다. 기회가 된다면 여기서 반짝 시즌으로 팥빙수를 팔아보고 싶다.

가게의 이름은 모르겠지만 레페 한 잔을 주문하고 30초도 되지 않아 황금빛을 띈 무언가가 잔에 담겨 나온다. 4,80유로로 역시 한 잔은 턱도 없다. 한 두입 마셨더니 이미 잔은 바닥을 드러냈고 옆 테이블의 부부로 추정되는 이들은 정말 한 두 입씩 홀짝홀짝 맛을 보나보다. 그래도 잔을 비운채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나도 눈치껏 남겨두었던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켰다. 햇볕에 미지근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목넘김은 도리어 더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끝맛이 약간 초콜렛 향이 난다. 바삐 움직이는 웨이터들을 보며 서울에 돌아가면 술이나 음식을 파는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1년간 책상 머리 앞에 앉아 컴퓨터로 눈을 혹사시켰기 때문에 이번에는 몸을 좀 움직여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맥스 가게에서 한 달간 일했던 경험을 떠올려보건데 다리는 좀 아팠을지언정 늘 멀찌감치 떨어져 사람들 바라보기를 좋아했었다. 문득 함께 스치는 생각이건대 나는 항상 사람들 지켜보기를 즐겼던 거 같다. 공연이나 어느 술자리에 가도 늘 반쯤 뒤로 물러서있는 느낌이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여튼 몸을 좀 바쁘게 움직여보고싶다. 당시엔 영어를 그나마 좀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외국인 손님만 오면 내가 나서곤 했으며 운이 좋으면 팁을 받기도 했었더란다. 아까 남은 돈을 팁으로 넘기지 않고 일일이 세어 지갑에 고이 넣은게 조금 죄송했지만 웨이터가 잔을 비운 이에게 자리를 비켜달라는 식의 얘기를 하는 듯 하다. 그래도 마지막 날이니 호사스럽게 감자튀김에 커리 케챱을 찍어 먹으러가야겠다. 그래. 결국 돈이지 뭐... 돈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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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숙소에서 곧장 직진하여 왕복 2시간을 산책하고자 했다. 10시 즈음부터 해서 어두워지니 그 정도면 꽤 괜찮은 산책이 될 거 같았다. 기왕이면 길목에서 괜찮은 공원 하나가 나타나주기를 바랐지만 강둑을 지나 올라가니 보이는 것은 오로지 공장으로 추정되는 것들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곳은 오후 9시였고 해가 지는 시간이었으며 사람들은 길에 없었다. 서울에서의 9시라면 사람들은 퇴근 중이거나 혹은 야근 그것도 아니면 집이나 술집 어딘가에 속속들이 넘쳐났어야 했다.

런던에서 이 곳으로 넘어오는 중에 시차가 바뀌면서 '1시간'을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소도시인 이 곳에서의 시간은 조금 다르게 간다. 친구들과 술 한 잔 나누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간 데 없고 오로지 혼자 맥주를 홀짝이며 해가 지는 것을 기다린다. 마트에서 라쇼페가 2천원도 채 안되는 것을 발견하고는 자축하는 마음으로 한 병을 사왔지만 숙소에서 내내 뚜껑을 따기 위해 별 수를 다 쓰다가 결국 거품만 축내고 흘린 맥주들만 닦아내야했다. 뚜껑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작년 여름 경민이 엄마와 함께 나눠 마시라며 사준 라쇼페가 생각난다. 여기 함께 왔다면 매일 같이 서로의 병을 따주며 건배를 외쳤을텐데 하는 생각들이 들면서 왜 나는 병따개를 가져오지 않았나 싶다.

혼성 4인실인 이 곳에서 친절한 미소를 지닌 프랑스인 클레어와 싱가폴에서 태어나 얼마 전 호주에서 학교를 마치고 졸업 여행을 왔다는 남자를 만났다. 티모시인가 팀 모시기였는데 이름을 적어둘걸 그랬다. 적어놓고 보니 티모시와 팀 모시기 두 이름의 모양새가 꽤 닮아있다. 여튼 그처럼 젠틀한 남자를 만나본 것도 참 간만이라 꽤나 한참 영어로 대화를 나누며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했다. 나는 런던에서 이 곳으로 날아왔지만 그는 곧 암스테르담인가를 들렸다가 그리로 갈 것이라 했다. 같은 2개월의 기한이지만 여기서 누구든 내 여행 일정과 경로에 대해 들으면 놀라는 눈치다. 대부분 열심히 빠릿하게 유럽 군데 군데를 둘러다니는 편인데 비해 나는 오로지 3군데 그것도 파리에만 1개월 반을 머물기 때문이다. 이래서 3개월 남미 여행을 다녀온 상희님이 그것도 턱없이 짧을 것이라 하신 모양이다. 런던에서는 10여일간 하루 온종일 걸어다니며 구미를 당기는 것들에 눈을 열심히 굴리고 다녔다면 여기 브뤼셀은 잠시 방학을 보내고 있는 기분이다. 휴가가 아닌 방학. 런던 호스텔에서는 조식을 먹기 위해서라도 매일 7-8시에 꼬박 일어나곤 했는데 여기 온 뒤로는 10-11시가 되어서나 슬그머니 일어나 침대 위에서 깜빠뉴에 감자샐러드를 발라 우걱우걱 먹어댄다. 깜빠뉴 한 덩어리를 4, 5일에 걸쳐 먹었더니 식비가 꽤나 많이 절감되었다. 대신 더 많은 맥주를 마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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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 시내 중심에는 유서 깊은 성당 같은 건물들이 제법 있다. 누구든 도서관처럼 쉽게 드나들 수 있는데 런던에서도 보았던 것처럼 어디까지나 자율 기부인지라 그냥 놓여진 통에 최소한의 예의만 보이면 된다. 그 중에 하나를 클레망틴과 만난 날 처음 들어갔었다. (클레망틴은 아는 지인의 지인의 딸로 소개를 받아 이 날 잠시 동네 투어에 동행해주었고 여름에 한국에 놀러온다고 하여 그 때는 내가 가이드가 되어줄 참이다.)

"I don't know how to describe this. but the place has a power for sure. it just makes me really calm."

그녀와 헤어지고서 몇 시간 뒤 다시 찾았었는데 다른 이들이 모두 건축물에 감탄하며 스테인글라스와 동상들의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을 때 나는 거기에 앉아 시네마테크 책자를 보다가 졸고 있었다. 어느 곳에 가던지 돈을 지불해야 하는 이 유럽 한복판에서 공원이나 이런 공공재는 여행객인 내게 굉장한 안식처가 되어준다. 성스러운 곳에서 졸고 앉아 있었다니 그게 할 짓이냐고 누군가는 뭐라 할 지 모르나 모두가 셔터를 눌러대고 있을 때 가만히 그 모습을 응시하는 것 또한 다른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이 여행에서 새삼 신기하게 느끼는 것은 바로 '빛'인데 이게 장소에 따라 달라보이기도 하지만 어느 곳에나 있다는 점.

그리고 성당 앞에는 앉아서 다리를 뻗을 수 있는 모양의 의자가 여럿 놓여있다. 첫 날에는 텅텅 비어있더니 볕이 좋은 오늘 같은 날에는 다들 주위 벤치에 앉아있다가 빈 자리가 나면 바로 기회를 틈 타 그 곳에 몸을 뉘이곤 했다. 대부분 연인들이 한 자리를 비집고 앉아 두 몸을 포개고 있었는데 그 중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떤 할머니가 자리를 비키자마자 엉덩이를 붙인 남자 꼬마였다. 점심을 먹기 위해 그 앞 벤치에 앉으려던 찰나에 그 꼬마를 보았고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던 걸로 짐작하건대 닌텐도 정도나 만지작거리기 위해 자리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황급하게 음식을 밀어넣은 뒤 고개를 돌려보니 그 꼬마는 약 10분도 안되는 시간동안 그 의자에 앉아있다가 이내 일어서서는 자기가 앉아있던 의자를 핸드폰으로 촬영해가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감동 받고 말아서 처음에 의레 짐작해버렸던 내 생각이 부끄러워졌고 그 꼬마가 의자를 '기억'하는 모습이 참 예뻐보였다. 내가 10대 초반일 때에는 그러니까 초등학생 때 간 수련회가 생각이 난다. 당시에는 핸드폰은 물론이고 디지털 사진기가 보급되어 있지 않았던 지라 오늘의 꼬마가 기록한 방식과는 조금 달랐지만 나도 일종의 그런 '의식'을 가지곤 했었다. 이를테면 처음으로 집에서 멀리 떠나와 2박 3일간 지낸 수련회 숙소에 고별 인사를 전하는 식이었다. 모두가 짐을 챙겨 떠난뒤 비어있는 그 방에 그동안 고마웠다며 속으로 몇 번이고 방 번호를 읊조리곤 했었다. 그 방 번호를 잊지 않고 일기에 잘 적어두었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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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주는 한적한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곳에는 카메라 장비로 무장한 관광객들이 진을 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인터넷에서조차 찾을 수 없을 거 같은 호텔들이 의외의 장소에 위치해있는데 풍파 같은 삶을 살고 난 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이 곳에서 여생을 마감하면 좋을 거 같은 곳들도 더러 있다. 그리고 나는 인사동에서조차 상술이라는 것을 잘 믿지 않기 때문에 마켓들을 보고도 큰 감흥이 일지 않으며 가능한 카메라를 들지 않으려 한다. 조금 뽄새가 웃길 수도 있겠지만 옆에서 nothing else to do?라며 부인에게 질문을 건네는 남자의 말을 듣고 나서 더욱 나는 sightseeing, 관광이라는 말을 믿지 않게 된다;;

유럽의 화장실을 생각하면 조금 정내미가 떨어진다. 50센트?를 내고 화장실에 들어가 침묵 속에 자리를 지키며 돈 받고 있는 할머니는 빵을 드시고 나는 대변을 소화시키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순환'의 법칙인가... 그런데 또 의외의 일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내가 맥주잔을 들고 헬렐레 미소를 흘리면서 두번째로 화장실을 찾았을 때였다. 처음에 달갑지 않게 느껴졌던 화장실 지키미 할머니가 내게 그 주플리에 맥주 꽤 strong할텐데 너 맥주 좋아하니? 이러시는 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 저 많이 좋아해요 하며 볼일을 보고 나왔다. 그리고 세번째로 그 곳에 갔을 때 그녀는 조금 취한 내가 동전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지고 있는 모습 위로 손을 저으며 그냥 들어가라고 했다. 이렇게 정내미 없는 유럽 화장실과 나는 어느 정도 타협을 하는 것일까.

브리주 광장에서 파는 주플리에 쌩맥주는 정말 인생을 갖다 바칠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생음악들은 어떻고!

브리주 광장에서 신나게 취해 눈가를 적시고 있는 애미가 있다면 바로 나일 것이다. 노인네들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나는 3일도 더 지난 깜빠뉴를 뜯어대며 한 잔을 마쳤다. 노부부 사이에 걸쳐앉아 님포마니악의 조가 그랬듯 내 머리 위 그림자를 만들어주고있는 이 나무를 인생의 나무라고 여기리라했다. 오른쪽 할아버지는 이명세 감독님을 닮았다! 두 잔 째에 접어들며 광장에 춤추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노부부들을 보니 또 주책 맞게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는데 올려다보니 나무가 보인다. 가장 끝에 있는 잎사귀들은 빛을 받아 하얗고 밝은 연두빛을 띄고 있고 그 아래 다른 잎사귀들은 빛이 오기까지의 시간을 기다릴테다. 차근차근 하나 하나. 너도 나도. 모두 그렇게 빛을 기다린다.

눈감고 광장을 애워 싸고 있는 이 음악을 들으니 어렸을 적 오래된 삼촌 방에서 눈에 띄곤 했던 ybm 영어 테이프가 떠올랐다. 수 많은 기억 중에 그것을 떠올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디에선가 이 비슷한 선율을 떠올리면 이 날의 볕과 선명한 사람들, 바람이 떠오를까 하는 마음.

4유로 생맥주에는 망설임 없으면서 4유로 까르푸 샐러드 (for 저녁거리)에는 돈 쓰기 힘들어하는 불편한 진실. 3잔 째에 이르러 플라스틱 컵을 자꾸 새것으로 바꿔주려는 것이 내키지 않아 please use this one이라고 청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에게 가치가 있다 여겨지는 것들에 애정을 쏟아붓기 마련이다. 깜빠뉴 한 덩이를 3,4일간 감자샐러드를 발라 먹으며 연명한 나는 남은 모든 유로를 이 브리주 광장에서 쌩맥주를 마시는 데에 바쳐도 조금도 아깝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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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책갈피 2014. 5. 29. 23:43



밥 주는 길고양이에게도 이름을 안 붙여주는데 상근하던 당시 내가 처음으로 이름 지어줬던 '우주'. 한 쪽 눈이 우주처럼 유리 구슬 같이 예뻤고 항상 자기를 안으라며 짖는 모습이 여느 개와는 조금 남달랐던 아이. 우리 모두는 우주가 '본인이 원하는 것은 꼭 쟁취하고야 마는 자주적인 성격'이라고들 입을 모았다. 그냥 떼쓰는 것과는 조금 달랐기 때문. 안아주지 않고 지긋이 바라보면 우주는 눈을 빤히 맞추고 짖기를 멈추곤 했다. 그 눈빛이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데 어디서 어떤 풍파를 겪으며 살아왔을 지는 몰라도 항상 좋지만은 않은 냄새로 피부병을 앓았던 그녀를 누구든 보면 안아줄 수 밖에 없었다. 참 사랑 받으며 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얼마 전 좋은 가정으로 입양을 가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고 한다. 간만에 놀러온 사무실에서 찍은 위 사진. 눈에 띄게 좋아진 모습에 동료가 이런 힘으로 살아간다며 인스타그램에 코멘트를 남기었다.

이름을 붙여준다는 건 이미 내 마음이 하릴없이 상대를 향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라 주저해왔는데 '우주'야 네 이름을 불러보고 싶네.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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