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손에 잡히지 않는 감정들을 기록을 통해 그 면면을 포착하거나 붙잡아 두고자 한다. 아내를 홀로 둔 채 망망대해로 떠나와 있는 폴은 하루 8 시간 가량을 흔들리는 뱃속에서 기계와 씨름해야하는 화물선의 선원이다. 별안간 배를 이탈해 리스본의 한 항구에 내린 그는 쉴 새 없이 8 미리 카메라로 자신과 주위 풍경의 모습을 담아간다. 이것은 아내에게 영상 편지로 전달되어 스크린으로 다시 영사된다. 좀 전에 본 낯익은 모습들이 8 미리로 촬영된 것을 다시 볼 때 우리는 그와 함께 동행하며 도시를 거닐었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백색도시>는 바로 이 남자와의 언제 끝날지 모를 동행이다. 일상 속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찾아올 지 모르는 감정들의 여백에 대해 생각하며 그를 응시하게 되는 것. 기약 없는 이  여행객은 누군가들의 일상 속에 몸을 내던진다. 춤을 추기도 하고 주먹질에 얻어 맞기도 하며 하물며 소매치기까지 당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한 여자를 만난다.

 폴은 백색이 곧 고독이라고 말한다. 백색은 모든 것에 흡수되버릴 수도 있지만 반대로 빛으로써 그것들을 잠식시킬 수 있는 힘도 지니고 있다. 여자는 사랑에 빠져들다가도 지금 자신이 딛고 있는 곳이 어딘지 끊임 없이 재차 돌아본다. 늘 느긋하게 웃어 보이는 그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불안은 돌고 돌아 결국 그가 방문자란 사실을 다시 마주하게 한다. 실제로 화물선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는 감독이 담아낸 리스본의 풍광은 아름다우면서도 어쩐지 쓸쓸해보인다. 영화의 첫 시퀀스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푸른 물결이 안개에 가려져 있는 가운데 아득히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 뒤에 한 배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여자의 몸은 광활하며 바다와 같다는 말을 남긴채 그는 어디론가 또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아마 바다만이 폴의 행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백색도시>는 이 기억들을 어루만지며 놓치지 않기 위한 모든 '방문자'의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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