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8일 (토)요일, 녹색당 2020 여성출마 프로젝트의 연속특강으로 고은영님의 "나의 언어로 권력 창출하기"라는 강의가 있었습니다! 자신만만한 표정과 제스쳐의 이미지에서 이미 어지간한 외국어 학원 스타 강사님들의 스타성을 압도하고 계신데 강의명이 무려 '권력'을 '창출'하기! 게다가 선착순 60명! 과연 '여성출마 프로젝트'의 첫 특강으로 이만큼 적절하고 필요한 것은 없다는 생각에 공지가 뜨자마자 신청을 했더랍니다! (당일 현장에 참석하신 분 중 다수가 비당원이셨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만큼 녹색당에 대한 대중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이겠지요? :) )

우리는 정치를 얘기하면서 '생활'에 밀착한 '생활 정치' 혹은 '지역 정치' 그리고 풀뿌리, 민주주의와 같은 단어들을 갖다 붙이곤 하지만 '권력'에 대해서는 말하길 꺼려합니다. 여성과 권력을 함께 두고 얘기했을 때 우리가 사회에서 마주해야만 했던 목소리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수감번호 503번, 전 대통령 박근혜는 권력을 남용한 정치인이기 이전에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생물학적 성별로서 수식어를 단 채 온갖 성차별적인 발언들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지금까지 어느 남성 대통령도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받은 적은 없었음에도 말이죠.

 

2018년 지방 선거를 치루며 '페미니스트' 후보를 자처하셨던 고은영님의 행보를 지켜봐왔기 때문에 어떻게 '권력'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가실지 궁금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 고은영님의 열렬한 팬이기도 합니다 :)

 

작년 지방선거 이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http://www.womanpower.or.kr/)에서 [본격정치수다] 고은영x여세연의 제주도 푸른밤(http://omn.kr/160fr)이란 프로젝트를 진행하신 적이 있는데요. 고은영님에 대한 덕심으로(!) 단체 활동가들이 마련한 자리임을 전해 들었고 저도 그에 덕심을 더하고자 활동가들과 고은영님의 본격 만남 이전, 사연 신청을 받는 데에 몇 자 적어보내기도 했습니다.

 

2018년 6월 당시 저는 프리랜서로 불안정한 삶을 하루하루 이어나가고 있던 차에 덜컥! 중랑구 지역에서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게 됩니다. 막 '지역 내에서의 정치'에 대해 배워가는 시점이었던지라 본격적인(!) 활동과 생활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풀어내 사연을 보냈었습니다. 이후 단체에서는 고은영님의 답변을 손수 타이핑하여 프린트한 종이와 제주의 사진을 함께 담아 보내주는, 아주 낭만적인 정리를 해주셨구요. (이 정치수다의 내용은 위 오마이뉴스 연재 기사 링크에서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미디어로만 마주했던 고은영님, 개인이 더 궁금해지는 첫 만남이기도 했습니다.

 

녹색당은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대통령을 꿈꿨던 여성 100명을 찾습니다"라는 프로젝트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4월 15일, '2020 여성출마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녹색당과 함께 정치인 되기!'가 본격 가동되었지요! (http://werun2020.kr/)

 

제가 녹색당에서 공동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가까이 느꼈던 점은 누구나가 이 곳에서 '주체'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원 가입을 한 지 한 달만에 첫 총회를 나왔다가 운영위원회에 합류하게 되신 분! 모임이 열리고 있던, 공간을 지나가던 분께서 저희 지역에서 준비하던 캠페인의 취지에 공감하여 그 자리에서 당원 가입을 하시고 캠페인 팀에 참여하신 적! 시민이자 당원들 개개인이 모두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녹색당의 미래가 가장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2020 여성출마 프로젝트'는 제 개인이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더 많은, 다양한 목소리가 모이고 있구나를 실감하게 만들며 내년 선거를 어느 때보다도 기다려지게 만들기도 하는데요.

 

 

오늘의 이 특강은 앞으로 그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연속특강의 제 1탄입니다!!

 

'특별한 선물'이 무엇일지 너무 궁금하여 일정을 고민해보기도 전에 강의에서 돌아온 후 다음날 제 2탄 강의를 신청(..)

 

오늘의 특강, '나의 언어로 권력 창출하기'에서 고은영님이 질문하고자 하셨던 것은 이렇게 4가지입니다.

 

1. 나는 누구인가?

2. 나는 누구의 곁에 있을 것인가?

3. 나는 어떤 태도로 경청할 것인가?

4. 나는 나의 언어로 응답할 수 있는가?

 

청소년기를 줄곧 재개발되는 도심의 배경에서 성장한 이야기로 고은영님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20살 즈음이 되서야 아파트는 완공이 되었고 그의 친구들은 하나 둘씩 마을을 떠나갔다고 합니다. 어느 공간에 남아 떠나가는 이들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청소년기의 고은영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지금까지 고은영님의 '인생 그래프'입니다! 

 

대학을 졸업 후 홍보대행사에서 본인을 '갈아넣는' 시간을 보내신 뒤에 인체조직기증 단체에서 2년의 경력, 경실련 인턴까지 다양한 시기와 순간들에 존재했던 스스로의 삶을 모두 '그것 또한 고은영'이라고 칭하시며 1번째 질문이었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때때로 상기시켜주셨습니다.

 

외면하고자 했던 순간들의 나도 결국은 '자신'이라는 것.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에 들이셨을 고민을 어림 짐작하며 스스로에게도 강연 내내 "그래서 나는 누구이지?",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지?"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던 기회가 되었어요.

 

고은영님은 제주도지사 후보이셨지만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제주도민이 아닙니다. 그런 그가 제주로 '도망' 가듯 이주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이 선택의 이전에는 '세월호'라는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낭만적 여행자의 시선'으로 제주를 찾았다고 한 그였지만 실제 고은영님이 제주에서마저 마주해야했던 것은 청소년기 내내 경험해야만 했던 '개발'의 풍경이었습니다. 강정에는 해군기지가 들어서고 있었고 2018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은 강정마을을 찾아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한 일에 대해 사과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민들이 이를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사과하는 자리'는 강제로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서 그의 두번째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나는 누구의 곁에 있을 것인가?"

 

6,70년대 제주가 이른바 '관광화'가 되면서 섬에서는 '여성들'을 물자로 내세운 관광들이 성업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현재 강정에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병영체험'이 운영되고 있으며 신도시 개발 광풍 속에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항공 모함 클럽'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세워진 대형풍선 설치에 적힌 글귀

 

"서귀포 아가씨 100명 대기"

 

고은영님은 2017년 '오라관광단지 반대 피켓팅'을 하며 도민들 90%가 모르는 '제주 녹색당' 알리기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스스로를 '늪에 빠졌다'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3번째 질문인 "나는 어떤 태도로 경청할 것인가?"를 통해 더 이상 외지인이 아닌 제주도를 사랑하고 아끼는 이로서 제주 녹색당을 통해 도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차츰 대변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제주퀴어문화축제의 '장소 승인'은 싸워서 이긴 '판례이자 선례'로서 그에게 "우리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 "모두가 마이크를 나눌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고도 하네요!

 

이 때 고은영님은 "누구 곁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 지 알고 있었던 거 같다. '제주'만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사람들을 만나며 스스로 무엇을 해야할 지에 대해 더 명확해졌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제주 제2공항 반대 시위를 벌이는 중에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의 면담으로 더욱 마음을 굳히게 되는데요. 스스로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왜 묻지 않았냐고" 따졌던 경험이었다고도 합니다.

 

([기고] 당신은 왜 제주에게 먼저 묻지 않았나 : http://www.vop.co.kr/A00001378385.html)

 

[기고] 당신은 왜 제주에게 먼저 묻지 않았나

 

www.vop.co.kr

 

4. 나는 나의 언어로 응답할 수 있는가?

 

"왜 영향력을 끼칠 수 없을까? 저들이 쥔 권력을 시민이 되찾아야 해"

 

강한!!! 출마!!! 예감!!!!

 

이미 그녀의 욕망은 이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이죠.

누구의 곁에 있을 것이며 나는 어떤 태도로 경청할 것인가!

그리고 '나는 나의 언어로 응답할 수 있는가?"

 

그의 선본에는 강정 활동가, 세월호 활동가, 예래 토지 강제수용 주민, 노동자, 페미니스트, 청소년, 퀴어, 엄마, 예술가, 문화기획자, 외국인, 다큐멘터리 감독, 수 많은 평범한 사람들, 비주류들, 유령의 연대자와 사랑하는 자들, 비통한 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돈'이 '어디에서 오는가가' 그 '정치'를 말해준다고 생각해 시민들과 함께 1만원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하셨다네요!

 

Responsibility (책임)은 곧 Respond (응답) 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공간에 찾아가 경청하고 답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정치적 책임

 

이것이 그의 4번째 질문인 '나는 나의 언어로 응답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리고 그는 제주도지사 선거 활동을 통해 '당신의 정당 - 당신의 정치 - 당신의 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유세 발언을 듣고 어느 도민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쩜 그리 말을 잘해잉. 내 속을 꺼내서 얘기하는 거 같아"라고 말씀하셨던 순간이 가장 크게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이 대목에서 우리가 소수 기득권들로부터 빼앗겼던 '권력'이라는 단어를 다시 되찾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녹색당이라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에서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다음 특강 제 2탄은 류민희(변호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의 '법을 우리의 권력으로 활용하기'라고 합니다. '동성혼 법제화, 낙태죄 위헌소송 등 법 바깥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법을 무기로 싸워 온 희망법 류민희 변호사와 함께 여성정치의 실현을 위해 법이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봅니다.'라는 소개글에서 알 수 있듯 '권력을 창출하여 어디를 향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좀 더 스스로의 목소리를 발현하기 위한 힘을 기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 기대됩니다! :) (강연신청 : http://bit.ly/여성권력_2)

 

더 많은 여성들이, 시민들이 녹색당의 이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저마다의 '마이크'를 쥐고 '목소리'를 모을 수 있는 장이 열렸으면 합니다!

 

우선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를 자신에게 말하라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해라

 - 에픽테토스

 

 

 

우리들은 자신에 [힘에 대한 욕망]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안에 있는 추악함을 인정하는 듯한 괴로운 과정이기도 한 것이지만,

지금 당신의 가장 투명한 합리적 반항심을 거기에 부딪히는 것으로,

자신 속의 맑은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양쪽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출처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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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 등장인물, 스토리, 감독 등에 대한 정보 전혀 없이 동네 친구들과 운 좋게 우연히 보게 된 심야영화였다. 정말 많이 웃었고 즐거웠다. 그리고 잘 쓰여진 대사들과 배우들의 캐릭터에 감탄했다. 그렇지만 그 웃음들 이후 불편하게 머릿 속을 헤매는 잔여들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역시나 벗어나지 않는, 고쳐지지 않는 고질적인 여성 캐릭터에 대한 편견. 이 영화에서 대사를 가진 여성은 4명이다. (연출자의 지난 작품에 비해 주연급 5명 중 무려 1명을 여성으로 넣었으니 이를 발전이라 해야 할 지 모르겠으나...)‬


1. ‪잠복 수사 중에 중년의 여성이 마약반 형사를 두고 왜 자신을 스토킹하냐며 따진다. 여기서는 사회적인 ‘여성성’(성적 대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중년’으로 설정했다는 데에서 교묘하게 비켜나가며 이를 유희로 승화시키고자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건 ‘스토킹’은 농담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몇 년전 머리 나쁜 이 모배우가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멍이 든 내 다리를 보고 십 여명의 스텝들이 있는 자리에서 “어? 데이트폭력?”이라며 깔깔 웃었던 적이 있다. 만일 그것이 정말 데이트 폭력으로 인해 얻어진 상처였다면?


‘일방적인 폭력’은 유머의 소재가 아니어야 한다.‬


2. ‪공동 주연급인 마약반 5명에 그나마 여성 캐릭터 이하늬 한 명을 끼워준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지.. 그러나 그녀의 로맨스 라인은 흡사 미녀와 야수 급이다. 외모로 비하 받기 일쑤인 상대 동료와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키스를 나누는 순간 동료들은 대번에 그들을 두고 농담으로 (총을) 쏘라고 한다. 상대가 평소 외모 비하로 놀림 받아오던 대상이 아니었어도 그런 농담이 유머로 기능할 수 있었을 지 의문이다.


3. ‪마약반 반장의 부인은 철야로 잠복 수사를 하고 들어오는 신랑의 빨랫거리를 항상 명품 종이백에 담겨진 채로 받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잠복수사로 인해 우연히 큰 돈을 벌게 되자 그 명품 종이백에는 진짜 실물의 명품백과 현금다발이 담겨온다. 부인은 이에 기뻐하며 “나 씻을까?”라며 화답한다. 연출자는 집안일(무료 가사 노동)을 하는 여성에게 ‘명품백’이 과연 그 노동들에 응답하는 선물이라 순수하게 생각하고 쓴 것인지 궁금하다. 명품 좋아하는 여자는 곧 사치스러운, 일명 된장녀라는 익숙한 서사가 떠오르지 않는가? 이에 성관계를 암시하는 것으로 응답하는 아내(안 사람-을 뜻하는 말이어서 쓰기를 지양한다). 여기서 그녀의 역할은 '안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게 전부다.‬


4. ‪마약왕을 보필하는 보디가드 여성은 우리가 킹스맨에서 열광했던, 매력적인 살인무기를 연기한다. 그녀는 무자비하게 마약왕의 오더에 따라 사람들을 처치할 뿐 어떤 감정도 표현하지 않는다. 마지막 그에게 버림 받았을 때 내뱉는 한 마디가 이 캐릭터가 가진 대사의 전부다. 살인무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남성들은 이에 대한 어떤 지배 받는, 압도 되는 이상한 판타지가 있는 듯 하다. (하도 어이 없어 장문의 글을 쓰다 멈춘 <마녀>에 대한 이야기에서 추후 이것을 더 이어갈 수 있을 거 같다.)‬


‪한국 영화에서 제대로 된 여성 캐릭터를 보고 싶었던 마음은 역시 웃음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다. 다행이 이것이 올해 첫 영화가 아니었다는 것에 덜 허망해해야 할지...


그리고 채식을 하는 이로서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아는 사람이었다면 저런 포스터 속 카피(닭을 잡을 것인가 범인을 잡을 것인가)는 감히 생각도 못해냈을 것이다. 애초 닭이 곧 '서민'이라고 명명하는 영화의 전반적인 가치관 아니 대한민국 사회의 치맥으로 단결 된, 지나친 소비는 이를 당연한 전제로 깔고 들어간다.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생닭을 토막내고 조리하는 장면들은 정말 보기 매우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치킨 소비'가 팽배한 모습들 사이에서 나는 종종 침묵으로 빠져야만 했다.



그러는 사이 딸애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멀리 가 버린 걸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뭔가를 바로잡아야 할 시기를 바보처럼 그냥 흘려보낸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한 거라곤 연단이 올려다보이는 이곳에 앉아 남들이 엿들을지도 모를 말들을 가만히 손으로만 매만지면서 침묵을 키운 것뿐이다. 하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 할 수 없는 말, 해서는 안 되는 말. 이제 나는 어떤 말에도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이런 말을 도대체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 누가 들어주기나 할까. 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말. 주인이 없는 말들.

김혜진, 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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