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에년에 비해 휘파람을 더 잘 불 수 있게 되었다. 올해 기타를 다시 손에 잡게 된다면 그건 저 영상 속 벨로주의 아름다움의 절반이라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일테다. 휘파람도 더 잘 불거야






이 곡이 왜 이리 귀에 낯익나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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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정범>은 공동정범이란 이름 아래 국가폭력에 희생 당한 이들의 이야기를 끈질기게 쫓아간다. 용산 참사 당시 우연히도 바로 두 블럭 옆 건물에 출근을 하던 때였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던 이들이 돌맹이를 던지며 경찰과 대치 중인 모습을 목격 했었다. 하룻밤 사이 그 곳에서 사람이 죽어나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시 기사로도 작성했으며 기회가 될 때마다 남일당 건물에 들렸지만 나는 이것을 어떻게 기억하고 가져가야 할 지 막막했다. 망루에 올라갔던 이들이 출소 후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가늠해 본 적 없었고 영화를 통해서야 그들이 지나왔을 처절하고 잔인한 시간들에 대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망루에 올랐던 이들 중엔 용산 재개발 구역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들도 있었지만 다른 지역에서 철거 연대 운동을 하던 이들이 더 많았다. 사고 후 살아남은 이들은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공동정범'이란 이름으로 한데 묶여 5년간 감옥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들이 서로의 얼굴을 대면할 수 있었던건 출소 후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마련한 자리를 통해서다. 개인들의 인터뷰에서 일부는 왜 그들이 서로 만날 수 없었는지 그리고 망루 안에서 마주했던 공포에 대해 이야기 나눌 기회가 없었음에 한탄했다. 일부는 망루 농성을 주도했던 이충연 위원장을 향한 서운함도 드러냈다. 공통된 기억과 트라우마를 가지고도 거기서 비롯된 개인이 일상으로 가져갔을 무게는 다 달랐겠지만 (국가에 의한) '고립'으로 인해 겪었을 상처는 모두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당시 망루에서의 이충연 위원장의 선택을 두고 누구 하나 비난하는 이 없었고 오히려 '나라도 그 상황에 처해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며 위로를 해준다. 이는 5년간 이 위원장을 가장 힘들게 괴롭힌 상처였다. 이들이 와해되지 않고 그 위로의 몇 마디를 주고 받을 기회만 있었더라도 그는 그렇게까지 인고의 시간을 견디지 않았어도 될지 모른다. 물론 사건 직후 모든 것을 풀어내긴 어려웠을 지라도 조금은 덜 외로웠을거다. 영화 <공동정범>은 이 외로운 이들을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영화 초반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접했던 불길이 치솟은 용산 참사의 모습은 지금도 마주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이들의 목소리를 잊지말고 들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연대의 시작이리라. 1월 25일 개봉!



* 영화 말미에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이명박과 김석기의 얼굴 (쌍판)을 보면 없던 호랑이 기운도 솟구친다는 ^*^

(당시 작성했던 기사는 신문사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유실되었고 내 개인 블로그로 공유했던 기록만으로 남아있다 : 용산 철거민이 옥상에 올라갈 수 밖에 없던 이유 / 지난 20일 새벽 망루에 올라갔었던 박모 씨 사연 https://blog.naver.com/choi5765/90041334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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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페북에 올렸던 가편집 기사 구인 공고 게시물을 삭제했다. 제작 이사에게 전달 받은 단가로 100만원 선인 작업이었고 처음 내게 제안이 들어왔으나 기한이 맞지 않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사실 드라마 편집 경력이 없는 나로선 프로덕션 측에서 제시하는 가편집이 얼마만큼의 노동력을 얘기하는지 디테일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러치만서도 매우 적은 금액이라 생각했다. 주위에 편집 일을 하는 사람 인프라가 적기도 해서 이게 가능한 금액인지라는 질문을 포함해 지인 몇에게 물어본뒤 페이스북에 글을 게시했다. 말도 안되는 금액이라며 최소한 얼마는 받아야한다는 얘기라도 듣고 제작사에 전달해야겠단 생각도 있었지만 그만큼 마음을 쏟아 부을 여력도 시간도 없어 그러고 말았다.

오늘 새벽 마지막 촬영 때 감독과 제작팀원이 나누는 얘길 들었다. 아직 가편집 기사를 구하지 못한 상태였고 제작팀원이 지인을 소개해주려는 참인거 같았는데 그 지인은 평소 3분짜리 영상 제작에 20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했다. 포맷이나 후반 작업의 디테일은 모르지만 60분짜리 웹드라마 가편집 100만원이 단단히 잘못된 금액이라는 것만은 다시 한 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내가 프리랜서로 작업을 시작하게 된건 비영리 시민단체들이었다. 먹고 사는 일이 촬영과 편집 일이라고 말하게 될 정도로 내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나는 근래까지만 해도 영상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한 일이었고 그냥 할 줄 아는 기술 이상으로 생각지 않으며 늘 스스로를 전문가 범주에 끼우기를 주저하고 실제로도 연마하지 않았다. 운이 좋게도 일은 지인들을 통해 계속 들어왔고 그 중에는 내가 없는 돈을 주고서라도 (격한 마음을 표현키 위해 과장한 표현치고는 현실적으로 너무 슬프고 위험해서 농담으로 자조하기 어려우나 아무튼-) 하고 싶을 정도로 근사한 기회들이 많았다. 그리고 늘 챙겨주는 마음들이 더 예쁘고 고마웠으므로. 그치만 페북에 올렸던 공고 글 이후 제작사에게 항의하지 않은 행동이 업계에 먹칠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속한 업계가 어떤건지 사실 보이지도 않고 결속을 다질만한 다른 사람도 많지 않지만 부끄러웠다. 실제 가편집 작업을 해보고 싶지만 경력이 많지 않아 고민된다는 마음을 밝힌 친구를 소개할 뻔한건 더 창피하고 스스로에게 화난다.

그래서 내년 나의 목표는 새로울 거 없이 늘 고민하던 거지만 자기검열을 멈추고 남한테 베풀고자하는만큼 나 스스로도 존중 받도록 애쓰는 거다. (나 존중 + 타인 존중 = 상생) 좀 더 구체적이고 단단한 방식으로 말이다. 노동과 그 가치에 대한 고민의 무게로 대학 졸업 이래 개인 작업을 할 수 없었고, 만들고 난 지금도 마음이 물론 어렵다. 얼마 전엔 단순 변심으로 인한 수정 요구를 번복하는 클라이언트에게 나는 당신이 제시한 금액 내에서 그러니까 ‘딱 50만원 어치’만 작업한거고 그 외 말씀하시는 이펙트 같은건 내 영역이 아니라 잘라 말하기도 했다. 이만하면 재능기부에 착취되던 삶을 정당화하고 스스로를 괴롭히던 때보다 많이 성장했다. 나잇값이라는게 딴게 아니라 착취나 실수에 대한 경험이 있으면 그걸 번복하지 않는다는 건데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보다 나은 노동 사회! 노동 해방!!

+ 덧붙이자면 3분에 200만원이란 대목은 경종에 불과했던 것이지 작업의 특성 상 분, 초 단위로 단가를 책정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치만 적어도 ‘실 노동시간 + 노동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소요된 시간 (식사 + 이동 + 작업공간 유지 등) + 기술과 경력 + 작업으로 인해 클라이언트 측이 얻게 될 혹은 얻고자하는 효과, 파급력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기본적으로 고려하고도 남길 수 있는 이윤이 보장되어야 한다. 사실 지금 이것들보다 우선하는 것은 아무래도 하고 싶은 작업인지와 예산의 충분함을 떠나 클라이언트가 내가 작업하는데에 얼마나 ‘케어’가 가능한지다. 앞으로의 목표는 이것들을 지치지 않는 내에서 차근차근 가져나가는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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