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 우리에게 보장되는 것은 무엇들이 있을까. 국가? 사회? 가족?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나의 가치를 인정 받고자 증명해야만 한다. 대학만 가면 어떤 삶이든 보장될 것처럼 말하던 이들도 있었다. 물론 살아보니 그것들은 높은 산을 오르며 ‘거의 다 왔어'라고 나를 어르던 것과 다르지 않음을 안다. 산을 오르고 나면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갈 일이라도 있지. <컴, 투게더>의 가족 앞에 기다리는 것은 흙탕물에 낭떠러지다. 많은 것을 바란 것도 아니었고 단지 평범하게 사는 것, 그 뿐이었는데 가장 어려운 일이 되버렸다. 이것은 재앙이다.

혹독하고 처절한 시간들을 통과하는 이 가족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자, 함께'라고 말하는 감독의 시선은 굳건하고 묵직하다. 그들의 감정을 시선으로 압도하거나 휘두르지 않고 줄곧 응시한다. 입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딸 한나와 돌연 실직자가 된 범구 그리고 신용불량자 처지에 카드 회사에 다니는 미영. 영화는 각자의 일상과 공간들을 보여준 뒤 이들이 함께 식사하는 장면으로부터 출발한다. 한데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음식을 나눠 먹는 일 그러니까 ‘먹고 사는' 일이야말로 가장 쉽지 않은 세상이다.
딸 한나는 재수를 하며 또 한 번 대기번호를 받게 된다. 대학은 입시생들을 개인이기 이전에 수치화 된 대상으로서 희망고문을 할 뿐이다. 아직 대학 이후의 삶을 꿈꿔본 적 없는 한나에게 친구 유경은 기왕이면 너처럼 살라며 다른 삶도 가능함을 알려준다. 줄 세우기 경쟁에 내몰린 딸에 이어 아빠는 졸지에 사회(회사)에서 이탈하게 된다. 성접대를 받고 싶었던 상사의 눈치를 못 알아챘다는 게 퇴직 사유라면 사유다. 그가 밀려나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젊은 신입 인턴 사원. 필요에 의해 대체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직장인으로서의 ‘질서’를 잃어버린 범구는 별안간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면서 집에 늘상 존재해 온 아내의 식물과 반찬들을 마구 엉클어 뜨리기 시작한다. 정렬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탈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려 층간 소음으로 찾아간 이웃 앞에서조차 재택 근무라는 핑계를 대며 정장 차림을 하고 있지만 그 또한 사회로부터 낙오된 범구를 알아본다.

미영이 마주하게 되는 경쟁 사회 또한 만만치 않다. 자신도 신용불량자라고 어렵게 고백하는 동료를 앞에 두고 역겹다고 돌아서는 데에서 주위를 둘러 볼 여유는 보이지 않는다. 경쟁 사회가 정말 무서운 것은 바로 이런 순간이다. 어느 순간 상대를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 미영이 죽기 살기로 마지막까지 매달릴 곳은 ‘실적'뿐이었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컴, 투게더>의 인물들은 나락으로 떨어지기 직전 우정과 연대를 통해 다시 발걸음을 어렵게 옮긴다. “조금만 더"를 얘기하는 이들 앞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며 몸부림 친다. 과도한 경쟁과 고립, 그 질서로부터 벗어나도 된다는 것. 흙탕물에서 뒹굴지언정 앞으로 가게 될 이 가족의 길은 그 어떤 것보다 의미 있을 테다. 지금 여기에 희망을 데려다 놓고 함께 가자고 하는 <컴, 투게더>가 고마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어디로든 '함께'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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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물결

rewind 2016. 11. 15.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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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우의 동생은 사람들이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좋은 일을 하면 천국에 갈 것이며 그 곳은 매일 맛있는 것과 재밌는 것들로 가득할 것이라 답하는 그. 이에 동생은 다시 묻는다. 그렇게 좋은 곳이라면 왜 다같이 한데 모여 살면 안되는 것인지. 왜 두 세계로 나뉘어 헤어져 있어야 하는지 말이다. 이에 그는 더 이상 대답을 줄 수 없다. 이를 듣고자 했던 대상도 곁에 없을 뿐 아니라 애초에 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일테다. 죽음이라는 상실 앞에서 우리는 무력해지고 두려움에 휩싸인다. 결국 돌고 돌아 어디서든 그 진실은 다른 모습으로 마주하게 되지만 말이다. 원희는 이를 피하고 있는 연우 앞에 나타나 진실을 마주하라고 다그친다. 뒷걸음 치는 그에게 끊임없이 손을 뻗는다.


 동생과의 마지막 대화를 상기시켜보면 연우가 아버지에게 묻는 질문에서 두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왜 우리 여기 살죠?"라는 말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자들이 머무는 그 곳. 단양이라는 동네인 동시에 이승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다른 이유 없이 그냥 와서 사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답은 이전에 여기서 공장을 다니려고 했다며 '단양'이라는 데에 가깝게 들린다. 그러나 '이승'인 이 곳에 왜 사느냐고 묻는 의미로 읽는다면 동생의 죽음 이후 그녀의 질문에 대해 내내 고민했을 그의 시간들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오토바이로 병원과 집을 오가는 것 이외 달리 만나는 이도 없어 보이는 한적한 그의 삶에 죽음이라는 질문이 끈질기게 따라다닌 것이다.


 죽음을 앞둔 원희가 그런 연우 앞에 나타났다는 것은 슬픈 운명을 암시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가 어떤 답을 내릴 것인지에 대해 주목하게 한다. 그가 처음으로 오토바이에 원희를 태워주는 순간. 그 동행을 잊을 수 없다. 카메라는 오토바이에 탄 두 사람의 행로를 오랫동안 보여 준다. 탈 것의 특성 상 두 사람이 밀착되어야 함은 물론 한 번 시동을 걸고 도로로 나가면 멈추기가 어렵다. 거리를 두어 온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취미라 할 것도 없어 보이는 연우에게 유일한 사치라곤 세련된 오토바이 하나로 보인다. 그것에라도 몸을 싣지 않으면 스스로 나아갈 추진력을 받지 못해서일까. 연우가 오토바이를 몬다기보다 오토바이가 그를 태우고 다니는 느낌이다. 좀처럼 가까워 질 수 없을 거 같았던 두 사람이 소나기 앞에 나란히 서고, 마주 앉아 밥을 먹고 그렇게 조금씩 거리를 좁혀나가는 동선이 제목을 닮아있다. 수면은 흔들리며 머물기도 나아가기도 한다. 잔잔한 움직임 안에서 삶은 역동하고 조금씩 모습을 바꾸어 나간다. 일렁이는 수면은 다 같은 풍경인 것 같아도 오랜시간 지켜보면 매 순간 바뀌고 있는 것들이 합해진 잔상들로서 인식된다. 그런 물결을 거스르고 원희가 가고 싶어 했던 장소를 향해 가는 연우의 모습은 그래서 오랫동안 지켜보고 싶어진다. 따뜻해지며 꽃이 필 것이기 때문에 연우 안에서도 작지만 큰 생명력이 일어나길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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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 love is dead, love is a fantasy, little girl have.

Sarah : love is a stream. it's continuous, it doesn't stop.


[Love Streams, John Cassave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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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보다] 활동가들이 겪는 심리적 문제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http://todayboda.net/article/7088


라다   우선, 감정은 좋은 감정 나쁜 감정이 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감정일 뿐이에요. 가치판단은 우리가 나중에 덧붙이는 거죠. 그리고 감정을 성찰한다는 것은 그것을 다 표현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게 어떤 감정이든 나에게 있다는 것을 허용하라는 거예요. 화가 난다고 무조건 화를 폭발시키라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화가 난다는 것을 느끼고 머무르면서,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를 충분히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죠. 대부분 화가 나면 어떤 사람 때문에 화가 난다고 생각하는 데, 내 욕구가 좌절되었다든지, 내가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 게 괴롭다든지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런 세밀한 결로 자기를 만나는 게 필요한 거죠.
 
불안 같은 경우도 그래요. 불안이 없으면 우린 생존할 수 없잖아요. 불안을 떨치려 하는 것보다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불안한 건지 살펴보는 게 더 중요해요. 외부의 대상이나 목표에 집중하듯이, 그만한 시간과 열정과 에너지로 자기에게 머물러야 해요. 이것이 심리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자기 성장이 일어나게 하는 동력이기도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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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유일하게 죄의식 느끼지 않고 사치를 부리던 곳이 있었으니 향음악사 오프라인 매장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앨범을 4개씩 산 뒤 며칠간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떼우기가 일쑤였다.

폐점(..) 하루 전에야 갔더니 이미 내 선에서 알만한 앨범은 거의 빠져있었다. 저스틴 비버와 이브 몽땅, 동방신기만을 발견하고 절망했다가 1시간동안 허리와 목을 꺾어가며 빈 칸에 흐트러진 음반들을 훑어보았다. 평소에도 찾는 앨범을 바로 묻지 않고 매장 내 음악을 들으며 내가 기어코 찾아내고야 마는 세월아네월아의 시간을 즐겼었다. 오늘은 매장 내에 검정치마, 3호선 버터플라이, 산울림 등의 익숙한 노래들이 나오는데 바닥에 앉아 캔맥주라도 까야할 것만 같았다.

몇 년전 매장에서 Greatful Dead의 음악을 처음 듣고 너무 충격 먹었었다. 때마침 매장 한 켠에 6-7만원 가량의 박스세트가 전시되어있었고 반 년동안 갈 때마다 '곧 데려갈게'라는 눈빛을 보내며 돌아서곤 했었다. 결국 못 샀다.

오늘 이른 오후 조그만 공간에는 15-20명 가량의 사람으로 가득 차 기이한(!) 풍경들을 연출했다. 서로 한 섹션을 다 봤다 싶으면 매끈한 제스쳐로 자리 이동을 하고 부딪힐 가능성들을 줄여나갔다. 쭈그려 앉아있다가 일어나거나 고개를 돌릴땐 사방을 살펴봐야만 했다.

향뮤직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신촌을 찾을 일이 없었던 나로서는 오늘 맘이 너무 공허하다. 그래도 온라인 및 개인 주문은 계속 하실 거라 하니 조금은 안심되지만 왜 이런 조그만, 최소한의 공간조차도 버티는게 힘들어지는건지 모르겠다.

+ 같은 앨범을 동시에 집다가 이상형과 눈맞아 향음악사 옆 베스킨에서 아이스크림이나 먹고 갈래요?하는 환상과도 빠이빠이다. 언젠가 이름도 모를 어느 누추한 레코드샵에서 알바생이 내가 들어서는 순간 펄프나 킹크스를 틀으며 '어디있다 이제 나타난거니'하는 눈빛을 보내주길 바랄 뿐이다. 환상은 환상대로 아름다우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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