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과 이름을 모르는 사람의 죽음을 추모하는건 어떤 의미일까. 무수한 죽음과 탄생들이 매일, 매순간 교차하지만 우리는 누군가의 상실을 위로하고 어떤 식으로건 공감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지만 감히 그 고통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쉽사리 위로의 말을 꺼내지 못하고 혼자 묵혀두는 때가 더 많다. 어제는 운명치곤 혹독한 하루였다. 나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를 준비하며 가장 친한 친구 어머니의 작고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생일 축하하는 자리를 친구집에서 갖기로 해 이미 열댓명의 사람들을 초대한 후였다. 파티를 취소할까도 했지만 친구는 어차피 친척집에 가게 되어 자리를 비울 것이기에 그러지 말라 했다. 5일간의 출장 끝에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소식을 접한 다음날이자 내 생일잔치인 날 아침 친구 집에 갔다. 혼자 사는 친구 집에 다행이 친척 한 명이 와 있었다.

적막이 가득한, 슬픔에 잠긴 그 공간은 몇 시간 내로 누군가의 삶이 계속되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자리로 채워질 참이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몰라 너무 괴로웠지만 일상이란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파티를 하며 새로 이사 온 도시에서 관계를 맺게 된 한 명, 한 명에 스스로를 비추어보면서 어느 때보다도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꼈다. 죽는다면 그 감각은 소멸되는 것인지 ‘죽는다는 감각’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다.

파티 다음날 친척과 친구집에서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온 친구를 기다렸다. 그는 어제부터 줄곧 나를 볼 때마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하며 미안하다 했다. 방금 엄마를 잃은데다 그와 혈육들 누구도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상태인데 어떻게 나를 챙겨줄 수 있는지.. 놀랍도록 침착한 그의 상태에 당혹스러웠다. 친구를 포함해 누나가 두 명이 더 있지만 자녀 누구도 장례에 참석하지 못해 아버지 혼자 모든걸 준비하고 있었다.

나의 생일은 다음이고 내일이고 언제든 축하하면 되지 지금 너가 나를 챙겨줄 그게 아닌데.. 싶으면서도 마침 돌아온 세월호 9주기가 떠올랐다. 재난은 일상을 여러모로 송두리째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당연히 올 줄 알았던 미래도 계속 될 것이라 여겼던 평범함들도 모두 앗아가버린다. 그 아이들과 어른들은 알았을까. 내년 그들의 생일엔 본인들이 자리할 수 없을 거란걸. 

1년 새에 두 국가와 도시를 경유해 겪은 우울과 고독 끝을 지나오며 스스로가 '생존'해내고야 말았다고 느낀다. 그래서인지 올해 이렇게 생일을 맞이 할 수 있음을 축하하고, 받고 싶었다. 내년 생일도 이렇게 무사히 맞이할 수 있을까? 왜 우리는 이토록 일상과 재난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사회를 살아가게 된 걸까.

얼마 전 이슬아 작가의 수필집에서 그가 학생들과 세월호를 기억하는 자리에서 바다에 가라앉은 모든 이들의 이름을 적는 작업을 했다는 걸 읽은 적 있다. 누군가에게 평생에 걸쳐 불려왔을 이름들. 이름으로 불리고 기억될 그들의 존재.

9년이 지난 후에야 제대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읽어보았다. 모니터 화면으로 스크롤을 자꾸 내려도 삼백명이 넘는 이름이 조금도 줄지 않았다. 한 학교의 한 학년 학생들이 통째로 사라지는 말도 안되는 사고였다. 그 외 설레는 마음으로 배에 몸을 실었을 여행객들과 일하러 다녀온 뒤 다시 만나게 될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을 세월호의 선원과 직원들. 칠흑같이 어두운 두려움과 죽음 속으로 헤엄쳐 들어간 잠수사와 죄책감을 견뎌내지 못해 사고 이후 운명을 달리한 이들도 있다.

오늘 온종일 친구 곁을 지키며 어머니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셨는지 물어 함께 듣는 시간을 가졌다. 배고프다하면 밥을 먹고 울다가 낮잠도 자고 다시 차를 끓이는 일상이란 시간이 무엇인지 애도가 무엇인지 연습하고 수행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의 이름은 타라. 타라가 부디 고통 없이 잠들었기를 그리고 나의 친구 알리가 너무 힘들어하지 않도록 보살펴주시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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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X 월드>

암중모색 2020. 10. 29. 17:20

출처 :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etc&mra=bkEw&pkid=68&os=10240485&query=%EC%9B%B0%EC%BB%B4%20%ED%88%AC%20X-%EC%9B%94%EB%93%9C%20%ED%8F%AC%ED%86%A0

 

영화가 시작하며 '시월드'라는 얘기에 시어머니로부터 고통 받는 여성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여기서 '시어머니'와 '여성'이라는 단어를 선택하게 된 순간적인 의식의 흐름을 짚어보고 싶다. 엄마는 즉 나를 낳고 기르고 보호해주는 데에 헌신한 이로서 '여성'과 '개인'이라는 정체성보다 '엄마', '모성'이란 것으로 대체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몇 년전부터 엄마 대신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반면 시어머니는 어떠한가. 한국 드라마에서 그들은 홧병의 근원이자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는데 한 역할하는 이들이다. 우리 엄마의 시어머니만 해도 내가 태어났을 때 '여자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눈물을 보이셨다고 한다. 당시 엄마가 받으셨을 상처에 비할 데 없지만 이는 이따금씩 잊을만하면 나를 울컥하게 한다. 내 탄생이 축하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런 대우를 받아야 했을 엄마 곁에 '지금의 내가' 있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서다. 보통 시월드에서 나쁜 역은 시어머니가 도맡아 하는 데다 시아버지는 '며느리 사랑'을 시전하거나 막상 중요한 때에는 꽁무니 빼버리는 얄미운 대상이기에 이 빗나감에 당황했다. 언제, 어디까지 여성들은 악역을 자처해야 하나. 주입 된 K-드라마 공화국의 서사에 물든거 같아 괜히 민망하고 화가 났다.

 

주인공 최미경은 오래 전 사고로 남편을 여의고 12년째 '시아버지'를 보필하고 있다.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어렸을 때 매일 같이 "엄마, 그냥 아빠랑 이혼하면 안돼?"라며 마치 구멍가게에 가서 과자 사오는 일처럼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양 묻곤 했던 그 때의 마음 같았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그를 보필 할 시가 친척이 미경만이 아님을 안 순간에는 배신감마저 느꼈다.

 

'큰며느리의 업보'였다.

 

나의 큰엄마도 이모도 최근까지 그 굴레에 있었다. 남편을 잃고도 '도련님들'을 도와 제삿상을 차리고 설겆이 일을 했던 큰엄마는 최근에 먼 교외로 이사를 가셨고, 시댁 근처에 살며 도통 집 근처를 벗어나지 못했던 이모의 시아버님은 불과 몇 달 전 돌아가셨다.

 

미경의 시월드는 시아버지의 갑작스런 '독립 통보'로 흔들린다. 12년을 함께 살아 온 한 식구인데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었을 지는 상상할 수 밖에 없다. 시아버지는 방 안 냉장고에 생라면을 넣어두고는 곳곳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며 본인만의 세상을 구축하신 듯한 분이다. 면의 숙성도와 쫄깃함을 높이기 위한 고단수의 노하우이신걸까. 때때로 '창문'을 넘어다니는 모습을 보노라면 여러 세상을 넘나 드는 듯한 기이함까지 느껴진다. 요양원에 계신 우리 할아버지는 아흔 다섯의 나이에 치매를 앓고 계시다. 사랑하는 손녀인 나를 때때로 기억해내시기도 하지만 대게는 늘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그 때 그 때 떠오르는 파편들을 헤집고 다니신다. '노인'이 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나는 과연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어른이 되면>을 연출한 장혜영 감독의 노랫말이 습관처럼 생각나는 요즘이다.

 

딸 한태의는 방문 하나 없는, 열린 공간에서 그 둘과 함께 기거한다. 여지껏 평생 내 방 한 칸 가져보지 못한 이로서 그 고충을 알기에 할아버지가 '방 문'을 떼어버렸다는 대목에서 나는 거의 발작 직전 수준이었지만 막상 그는 크게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미경이 말하는 것처럼 그녀는 참 낙천적이다. 카메라 뒤에 숨어 그 고민들을 안 보여주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갑작스런 '독립'에 대해 여러가지 경우를 떠올려보다가도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라며 카메라를 돌려버리는 그의 행보에는 머뭇거림이 없다. 여리고 힘든 미경이 기댈 수 있도록 하고자 함일까. 두 모녀의 관계를 보며 어느 때 보다도 '반려자'라는 단어가 또렷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 수록 눈물이 많은 엄마를 어느 순간부터 안아주게 된 나의 모습도...

 

영화에서 둘은 두 번의 결혼식에 동행한다. 카메라를 든 딸 태의는 엄마의 모습을 멀찌감치서 바라본다. 여전히 결혼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는 소녀처럼 맑고 진심을 다해 축하해주고자 하는 그녀의 눈망울을 클로즈업한다. 두 번째 결혼식에서 미경은 부부가 된 이들을 보며 "둘이 닮으면 오래 산다던데"라고 말한다. 영화 초반에 미경과 그의 남편의 범상치 않았던 신혼 시절 사진들이 순간적으로 오버랩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두 사람, 참 예쁘고 근사했는데 그러면서 말이다.

 

카메라는 대게 집 안 곳곳에 놓이거나 엄마를 밀착해 따라 다닌다. 워낙 연예인들의 일상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이 일상이기에 누군가의 집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카메라는 집의 전경을 담기 위해 높이 매달리지도 그렇다고 삼각대 위에 균형을 잡는 등의 계산이 느껴지지 않는다. 무심코 밥상 위에 올려놓는 핸드폰처럼 그들의 일상의 일부처럼 놓일 뿐이다. 그러나 엄마의 뒷모습을 비추거나 프레임 안에 감독이자 등장인물인 딸 한태의가 '들어가' 대화를 시도함으로 서사가 전개될 때에는 감정적인 '사건'과 '시선'이 발생한다. 마치 이것이 부재한 아버지의 시선인 듯 말이다. 카메라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며 감독이 카메라를 들게 된 시작점이 궁금해진다.

 

둘은 낙관의 힘으로 결국 새로운 보금자리를 갖춘다. 그리고 함께 처음 '선택한 가족'으로 강아지 '호주'를 맞아들인다. 타지에 사는 오빠와 빔 프로젝터로 화상 통화를 나누며 새로운 방식의 유대를 찾아가기도 한다. 시월드로부터 성큼 걸어 나와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미경에게 태의는 더 없이 근사한 동반자다. 나의 엄마 그리고 이모, 큰엄마. 더 많은 이들에게 이 영화가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다양한 여성 개인들의 서사가 더 많이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도 든다.

 

 

 

* 표현이 다소 완화된 부분의 버전으로 오마이뉴스에 기고

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688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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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함

암중모색 2020. 3. 4. 01:04

"우리 개개인은 다 멀쩡한 사람이야. 문제가 없어. 근데 넷이 모이니까 비교가 되잖아. 너는 그냥 원래 그 시간에 일어나는데 늦게 일어나는 애가 돼버리잖아. 그리고 너는 원래 네 속도가 있는데 느린 애가 되고. 나는 성질 급한 애가 되고. 그게 우리의 문제였어. 비교."

"Each one of us is a fine person. No problem. But it becomes comparable just because the four people are gathered. You just wake up at time you usually do, but it makes you as a person who wake up 'late'. Your own rhythm becomes 'Slow person', and i become impatient person. That was our problem. Comparison."

 

요즘 들어 개개인의 표현 방식과 온도 차에 대해 자꾸 고민하게 된다. 분명 그럴 '의도'는 아니었을 텐데 너무나 다른 경험치와 배경을 가지고 자라 온 각자에게는 어떤 때에 그것이 상처가 되기도 한다. 3개월 간 심리상담을 통해 스스로를 한 개인으로서 돌아볼 수 있는, 너무나 근사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는 타인이 그리고 내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모습 간의 간극이 많이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동시에 견제하게 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나의 '기대치'다. 어디까지나 나를 기준 삼아 상황과 맥락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그 '기대치'를 줄이고자 함은 관계를 놓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타인을 내 기준과 상황에 맞추게 될까봐서다. 그냥 그러려니 넘겨짚을 줄 아는 것도 필요하고 예민하게 감각을 곧추 세울 때도 물론 필요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것을 단지 '너 너무 예민한 것 아니야'라는 말로 상대의 겹겹이 쌓여온 시간을 뭉개려고 해서도 안 될 것이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그렇게 서로 맞추어 나가고 실패하면서도 자꾸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 요즘은 그렇게 파도를 타고 있다.

 

These days, I think of how people express themselves and what the temperature difference is. It certainly wasn't an intention, But sometimes it hurts each one who has grown up with so many different experiences and backgrounds. For last three months, getting the psychological counseling, I had wonderful time looking back on myself as an individual. Now, the way people and I find myself seems to stop a gap step by step. At the same time, I try to keep my ‘expectation’ of others in check. We can only realize the circumstances and context based on ‘myself’. The reason why I try to lower that ‘expectation’ is not giving up the relationship. I got to know I sometimes put the others to my standard and circumstances. (Well. I know we can’t help it, but..) We need to let it go and also keep our sensitivity at the same time. But we should not flatten someone’s layered times by just saying “You’re too Sensitive”. We try to coexist and fail all the time. But the mind want to keep it. That’s how I surf on the waves now.

 

2019.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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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8일 (토)요일, 녹색당 2020 여성출마 프로젝트의 연속특강으로 고은영님의 "나의 언어로 권력 창출하기"라는 강의가 있었습니다! 자신만만한 표정과 제스쳐의 이미지에서 이미 어지간한 외국어 학원 스타 강사님들의 스타성을 압도하고 계신데 강의명이 무려 '권력'을 '창출'하기! 게다가 선착순 60명! 과연 '여성출마 프로젝트'의 첫 특강으로 이만큼 적절하고 필요한 것은 없다는 생각에 공지가 뜨자마자 신청을 했더랍니다! (당일 현장에 참석하신 분 중 다수가 비당원이셨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만큼 녹색당에 대한 대중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이겠지요? :) )

우리는 정치를 얘기하면서 '생활'에 밀착한 '생활 정치' 혹은 '지역 정치' 그리고 풀뿌리, 민주주의와 같은 단어들을 갖다 붙이곤 하지만 '권력'에 대해서는 말하길 꺼려합니다. 여성과 권력을 함께 두고 얘기했을 때 우리가 사회에서 마주해야만 했던 목소리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수감번호 503번, 전 대통령 박근혜는 권력을 남용한 정치인이기 이전에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생물학적 성별로서 수식어를 단 채 온갖 성차별적인 발언들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지금까지 어느 남성 대통령도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받은 적은 없었음에도 말이죠.

 

2018년 지방 선거를 치루며 '페미니스트' 후보를 자처하셨던 고은영님의 행보를 지켜봐왔기 때문에 어떻게 '권력'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가실지 궁금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 고은영님의 열렬한 팬이기도 합니다 :)

 

작년 지방선거 이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http://www.womanpower.or.kr/)에서 [본격정치수다] 고은영x여세연의 제주도 푸른밤(http://omn.kr/160fr)이란 프로젝트를 진행하신 적이 있는데요. 고은영님에 대한 덕심으로(!) 단체 활동가들이 마련한 자리임을 전해 들었고 저도 그에 덕심을 더하고자 활동가들과 고은영님의 본격 만남 이전, 사연 신청을 받는 데에 몇 자 적어보내기도 했습니다.

 

2018년 6월 당시 저는 프리랜서로 불안정한 삶을 하루하루 이어나가고 있던 차에 덜컥! 중랑구 지역에서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게 됩니다. 막 '지역 내에서의 정치'에 대해 배워가는 시점이었던지라 본격적인(!) 활동과 생활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풀어내 사연을 보냈었습니다. 이후 단체에서는 고은영님의 답변을 손수 타이핑하여 프린트한 종이와 제주의 사진을 함께 담아 보내주는, 아주 낭만적인 정리를 해주셨구요. (이 정치수다의 내용은 위 오마이뉴스 연재 기사 링크에서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미디어로만 마주했던 고은영님, 개인이 더 궁금해지는 첫 만남이기도 했습니다.

 

녹색당은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대통령을 꿈꿨던 여성 100명을 찾습니다"라는 프로젝트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4월 15일, '2020 여성출마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녹색당과 함께 정치인 되기!'가 본격 가동되었지요! (http://werun2020.kr/)

 

제가 녹색당에서 공동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가까이 느꼈던 점은 누구나가 이 곳에서 '주체'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원 가입을 한 지 한 달만에 첫 총회를 나왔다가 운영위원회에 합류하게 되신 분! 모임이 열리고 있던, 공간을 지나가던 분께서 저희 지역에서 준비하던 캠페인의 취지에 공감하여 그 자리에서 당원 가입을 하시고 캠페인 팀에 참여하신 적! 시민이자 당원들 개개인이 모두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녹색당의 미래가 가장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2020 여성출마 프로젝트'는 제 개인이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더 많은, 다양한 목소리가 모이고 있구나를 실감하게 만들며 내년 선거를 어느 때보다도 기다려지게 만들기도 하는데요.

 

 

오늘의 이 특강은 앞으로 그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연속특강의 제 1탄입니다!!

 

'특별한 선물'이 무엇일지 너무 궁금하여 일정을 고민해보기도 전에 강의에서 돌아온 후 다음날 제 2탄 강의를 신청(..)

 

오늘의 특강, '나의 언어로 권력 창출하기'에서 고은영님이 질문하고자 하셨던 것은 이렇게 4가지입니다.

 

1. 나는 누구인가?

2. 나는 누구의 곁에 있을 것인가?

3. 나는 어떤 태도로 경청할 것인가?

4. 나는 나의 언어로 응답할 수 있는가?

 

청소년기를 줄곧 재개발되는 도심의 배경에서 성장한 이야기로 고은영님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20살 즈음이 되서야 아파트는 완공이 되었고 그의 친구들은 하나 둘씩 마을을 떠나갔다고 합니다. 어느 공간에 남아 떠나가는 이들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청소년기의 고은영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지금까지 고은영님의 '인생 그래프'입니다! 

 

대학을 졸업 후 홍보대행사에서 본인을 '갈아넣는' 시간을 보내신 뒤에 인체조직기증 단체에서 2년의 경력, 경실련 인턴까지 다양한 시기와 순간들에 존재했던 스스로의 삶을 모두 '그것 또한 고은영'이라고 칭하시며 1번째 질문이었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때때로 상기시켜주셨습니다.

 

외면하고자 했던 순간들의 나도 결국은 '자신'이라는 것.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에 들이셨을 고민을 어림 짐작하며 스스로에게도 강연 내내 "그래서 나는 누구이지?",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지?"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던 기회가 되었어요.

 

고은영님은 제주도지사 후보이셨지만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제주도민이 아닙니다. 그런 그가 제주로 '도망' 가듯 이주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이 선택의 이전에는 '세월호'라는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낭만적 여행자의 시선'으로 제주를 찾았다고 한 그였지만 실제 고은영님이 제주에서마저 마주해야했던 것은 청소년기 내내 경험해야만 했던 '개발'의 풍경이었습니다. 강정에는 해군기지가 들어서고 있었고 2018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은 강정마을을 찾아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한 일에 대해 사과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민들이 이를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사과하는 자리'는 강제로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서 그의 두번째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나는 누구의 곁에 있을 것인가?"

 

6,70년대 제주가 이른바 '관광화'가 되면서 섬에서는 '여성들'을 물자로 내세운 관광들이 성업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현재 강정에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병영체험'이 운영되고 있으며 신도시 개발 광풍 속에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항공 모함 클럽'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세워진 대형풍선 설치에 적힌 글귀

 

"서귀포 아가씨 100명 대기"

 

고은영님은 2017년 '오라관광단지 반대 피켓팅'을 하며 도민들 90%가 모르는 '제주 녹색당' 알리기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스스로를 '늪에 빠졌다'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3번째 질문인 "나는 어떤 태도로 경청할 것인가?"를 통해 더 이상 외지인이 아닌 제주도를 사랑하고 아끼는 이로서 제주 녹색당을 통해 도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차츰 대변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제주퀴어문화축제의 '장소 승인'은 싸워서 이긴 '판례이자 선례'로서 그에게 "우리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 "모두가 마이크를 나눌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고도 하네요!

 

이 때 고은영님은 "누구 곁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 지 알고 있었던 거 같다. '제주'만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사람들을 만나며 스스로 무엇을 해야할 지에 대해 더 명확해졌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제주 제2공항 반대 시위를 벌이는 중에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의 면담으로 더욱 마음을 굳히게 되는데요. 스스로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왜 묻지 않았냐고" 따졌던 경험이었다고도 합니다.

 

([기고] 당신은 왜 제주에게 먼저 묻지 않았나 : http://www.vop.co.kr/A00001378385.html)

 

[기고] 당신은 왜 제주에게 먼저 묻지 않았나

 

www.vop.co.kr

 

4. 나는 나의 언어로 응답할 수 있는가?

 

"왜 영향력을 끼칠 수 없을까? 저들이 쥔 권력을 시민이 되찾아야 해"

 

강한!!! 출마!!! 예감!!!!

 

이미 그녀의 욕망은 이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이죠.

누구의 곁에 있을 것이며 나는 어떤 태도로 경청할 것인가!

그리고 '나는 나의 언어로 응답할 수 있는가?"

 

그의 선본에는 강정 활동가, 세월호 활동가, 예래 토지 강제수용 주민, 노동자, 페미니스트, 청소년, 퀴어, 엄마, 예술가, 문화기획자, 외국인, 다큐멘터리 감독, 수 많은 평범한 사람들, 비주류들, 유령의 연대자와 사랑하는 자들, 비통한 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돈'이 '어디에서 오는가가' 그 '정치'를 말해준다고 생각해 시민들과 함께 1만원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하셨다네요!

 

Responsibility (책임)은 곧 Respond (응답) 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공간에 찾아가 경청하고 답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정치적 책임

 

이것이 그의 4번째 질문인 '나는 나의 언어로 응답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리고 그는 제주도지사 선거 활동을 통해 '당신의 정당 - 당신의 정치 - 당신의 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유세 발언을 듣고 어느 도민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쩜 그리 말을 잘해잉. 내 속을 꺼내서 얘기하는 거 같아"라고 말씀하셨던 순간이 가장 크게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이 대목에서 우리가 소수 기득권들로부터 빼앗겼던 '권력'이라는 단어를 다시 되찾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녹색당이라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에서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다음 특강 제 2탄은 류민희(변호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의 '법을 우리의 권력으로 활용하기'라고 합니다. '동성혼 법제화, 낙태죄 위헌소송 등 법 바깥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법을 무기로 싸워 온 희망법 류민희 변호사와 함께 여성정치의 실현을 위해 법이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봅니다.'라는 소개글에서 알 수 있듯 '권력을 창출하여 어디를 향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좀 더 스스로의 목소리를 발현하기 위한 힘을 기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 기대됩니다! :) (강연신청 : http://bit.ly/여성권력_2)

 

더 많은 여성들이, 시민들이 녹색당의 이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저마다의 '마이크'를 쥐고 '목소리'를 모을 수 있는 장이 열렸으면 합니다!

 

우선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를 자신에게 말하라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해라

 - 에픽테토스

 

 

 

우리들은 자신에 [힘에 대한 욕망]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안에 있는 추악함을 인정하는 듯한 괴로운 과정이기도 한 것이지만,

지금 당신의 가장 투명한 합리적 반항심을 거기에 부딪히는 것으로,

자신 속의 맑은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양쪽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출처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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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 등장인물, 스토리, 감독 등에 대한 정보 전혀 없이 동네 친구들과 운 좋게 우연히 보게 된 심야영화였다. 정말 많이 웃었고 즐거웠다. 그리고 잘 쓰여진 대사들과 배우들의 캐릭터에 감탄했다. 그렇지만 그 웃음들 이후 불편하게 머릿 속을 헤매는 잔여들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역시나 벗어나지 않는, 고쳐지지 않는 고질적인 여성 캐릭터에 대한 편견. 이 영화에서 대사를 가진 여성은 4명이다. (연출자의 지난 작품에 비해 주연급 5명 중 무려 1명을 여성으로 넣었으니 이를 발전이라 해야 할 지 모르겠으나...)‬


1. ‪잠복 수사 중에 중년의 여성이 마약반 형사를 두고 왜 자신을 스토킹하냐며 따진다. 여기서는 사회적인 ‘여성성’(성적 대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중년’으로 설정했다는 데에서 교묘하게 비켜나가며 이를 유희로 승화시키고자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건 ‘스토킹’은 농담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몇 년전 머리 나쁜 이 모배우가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멍이 든 내 다리를 보고 십 여명의 스텝들이 있는 자리에서 “어? 데이트폭력?”이라며 깔깔 웃었던 적이 있다. 만일 그것이 정말 데이트 폭력으로 인해 얻어진 상처였다면?


‘일방적인 폭력’은 유머의 소재가 아니어야 한다.‬


2. ‪공동 주연급인 마약반 5명에 그나마 여성 캐릭터 이하늬 한 명을 끼워준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지.. 그러나 그녀의 로맨스 라인은 흡사 미녀와 야수 급이다. 외모로 비하 받기 일쑤인 상대 동료와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키스를 나누는 순간 동료들은 대번에 그들을 두고 농담으로 (총을) 쏘라고 한다. 상대가 평소 외모 비하로 놀림 받아오던 대상이 아니었어도 그런 농담이 유머로 기능할 수 있었을 지 의문이다.


3. ‪마약반 반장의 부인은 철야로 잠복 수사를 하고 들어오는 신랑의 빨랫거리를 항상 명품 종이백에 담겨진 채로 받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잠복수사로 인해 우연히 큰 돈을 벌게 되자 그 명품 종이백에는 진짜 실물의 명품백과 현금다발이 담겨온다. 부인은 이에 기뻐하며 “나 씻을까?”라며 화답한다. 연출자는 집안일(무료 가사 노동)을 하는 여성에게 ‘명품백’이 과연 그 노동들에 응답하는 선물이라 순수하게 생각하고 쓴 것인지 궁금하다. 명품 좋아하는 여자는 곧 사치스러운, 일명 된장녀라는 익숙한 서사가 떠오르지 않는가? 이에 성관계를 암시하는 것으로 응답하는 아내(안 사람-을 뜻하는 말이어서 쓰기를 지양한다). 여기서 그녀의 역할은 '안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게 전부다.‬


4. ‪마약왕을 보필하는 보디가드 여성은 우리가 킹스맨에서 열광했던, 매력적인 살인무기를 연기한다. 그녀는 무자비하게 마약왕의 오더에 따라 사람들을 처치할 뿐 어떤 감정도 표현하지 않는다. 마지막 그에게 버림 받았을 때 내뱉는 한 마디가 이 캐릭터가 가진 대사의 전부다. 살인무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남성들은 이에 대한 어떤 지배 받는, 압도 되는 이상한 판타지가 있는 듯 하다. (하도 어이 없어 장문의 글을 쓰다 멈춘 <마녀>에 대한 이야기에서 추후 이것을 더 이어갈 수 있을 거 같다.)‬


‪한국 영화에서 제대로 된 여성 캐릭터를 보고 싶었던 마음은 역시 웃음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다. 다행이 이것이 올해 첫 영화가 아니었다는 것에 덜 허망해해야 할지...


그리고 채식을 하는 이로서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아는 사람이었다면 저런 포스터 속 카피(닭을 잡을 것인가 범인을 잡을 것인가)는 감히 생각도 못해냈을 것이다. 애초 닭이 곧 '서민'이라고 명명하는 영화의 전반적인 가치관 아니 대한민국 사회의 치맥으로 단결 된, 지나친 소비는 이를 당연한 전제로 깔고 들어간다.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생닭을 토막내고 조리하는 장면들은 정말 보기 매우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치킨 소비'가 팽배한 모습들 사이에서 나는 종종 침묵으로 빠져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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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딸애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멀리 가 버린 걸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뭔가를 바로잡아야 할 시기를 바보처럼 그냥 흘려보낸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한 거라곤 연단이 올려다보이는 이곳에 앉아 남들이 엿들을지도 모를 말들을 가만히 손으로만 매만지면서 침묵을 키운 것뿐이다. 하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 할 수 없는 말, 해서는 안 되는 말. 이제 나는 어떤 말에도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이런 말을 도대체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 누가 들어주기나 할까. 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말. 주인이 없는 말들.

김혜진, 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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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8. 4. 8. 20:23

올해 들어 두번째 공황장애다. 온 몸의 근육이 녹아내리고 1초 단위로 모든 신경이 수축되는 느낌이다. 너무 힘들어서 전철의 모르는 사람에게 자리 양보를 부탁했다. 요 며칠 스트레스로 과호흡 증세가 줄곧 있었고 엊그제 즈음 어떤 일을 계기로 증세가 악화됐다. 힘든 일 말하지 못하고 혼자 앓다가 말도 안되게 먼저 세상을 떠버린 가족을 요즘 들어 유난히 매일 생각한다. 어젯밤엔 다행이 친구와 한 시간 가량 통화를 했고 통화 전보다 말도 안되게 마음의 상태가 나아졌다. 오늘 보지는 못했는데 함박눈이 내렸다며 화이트 버스데이라는 축하를 들었다. 서른번째 해의 액운은 부디 이쯤으로 끝나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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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고양이들이 그렇듯 우리가 그들을 찾아간게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찾아왔다. 그리고 귀여운 생김새로 막 작업실을 얻은 성인 여성 넷의 마음을 흔들더니 우리로 하여금 생각할 겨를도 없이 먹을 것을 내놓게 만들었다. (작업실을 함께 사용하는 친구는 총 다섯이지만 당시 한 명은 먼 여행길에 떠나있었다.) 예정에 없던 내 자리 옆 창가 문은 곧 그들의 출입구가 되었다. 애초 영상 편집을 위해 모니터 한 대를 더 둘 것을 염두하며 티테이블로 쓰던 것을 가져다 확장한 자리였지만 보기 좋게 캣타워와 급식대로 변모하고 말았다.


첫 한 두어 달은 창문 앞에서 건네주는 사료를 먹고 그릇을 꺼내려 손만 뻗으면 부리나케 도망가기가 일쑤였다. 길고양이고 혹여나 혐오하는 이들로부터 해코지를 당하지 않으려면 손을 타지 않는, 내외하는 사이로서의 거리가 필요하리란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을 품에 들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정들면 어쩌려느냐며 걱정하는 지인에게도 우리는 단지 밥만 주고 받는 사이일뿐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리 말하면서도 스스로가 납득되진 않았다. 짧게나마 동물보호단체에서 일한 경력이 있고 집 베란다 밖에 찾아오는 동네 야옹이들에게 밥을 준 지도 어연 5년이 넘었다. 오면 오는 가 보다란 마음으로 이름도 붙이지 않는다.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으로 단체를 그만두면서 지치지 않는 선에서 가능한 긴- 시간 그들을 돌보자는게 나와의 약속이었다. 작업실 동료들은 어느 날부터 그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었고 일종의 철칙을 갖고 있던 나로선 마음이 덜컹했다. 마음 먹고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으로 버텼지만 그래봤자 매일 찾아오는 네댓 마리를 보며 이미 붙여진 이름을 지워내기란 어려웠다. 한 마리, 한 마리에 마음을 두기 시작하는 그들을 보면서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어떤 식으로든 고양이들은 이 곳을 다시 찾지 않거나 못하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무방비 상태로 그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친구들을 보며 나만은 의연해야지란 생각으로 표현을 아끼기 시작했다. (표현을 안 한 것이 아니라 사진을 한 30장 찍으면 그 중에 3장 정도만 공유하는 식으로 균형 아닌 균형을 잡아갔다.) 초반 몇 주, 몇 달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그들의 행동 거지 하나 하나에 시선이 붙들리고 어쩔 줄을 몰라 했지만 3, 4개월 차가 되니 고양이들도 우리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출근해서 문을 열면 창문 가로 돌진하듯이 달려왔다가도 우리와 눈이 마주치면 ‘아, 우리 이런 사이 아니였지'라며 순간 주춤하기를 내내 반복하면서도 그 순간이 매일 새롭고 재밌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 도심에서 작고 귀여운 짐승들이 지들 헤치지 않고 챙겨주는 줄 알고 시간만 되면 찾아와 창가 앞에서 ‘야옹, 야옹' 울어대는 것도 늘 익숙해지지 않고 신기하며 마냥 고마웠다. 동료는 겨울 채비를 위해 기존에 만들었던 고양이 집이 부족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인터넷으로 스티로폼 상자 큰 것 2개를 주문했다. 친구들의 마음 덕분에 몇 주전 새끼들이 터를 잡은 것을 보고 안심한 것인지 무리를 떠난 어미 고양이를 제외한 새끼 셋은 그 안에서 첫 눈을 맞이했고 영하의 한파 날씨도 무사히 잘 견뎌내주었다.


팔불출 마음에 SNS 등지에 그들의 사진과 영상을 뿌린 것을 보고는 고마운 귀인들이 사료를 포댓 자루로 보내주거나 일부는 찾아와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들도 안 갖고 노는 것이라며 장난감과 방석 등을 챙겨다주기도 했다. 처음엔 손바닥 한 줌만했던 것들이 지금은 기지개를 쭉 피면 그 길이가 제법 4-50센치에 달하는 어엿한 청소년 고양이가 되었다. 몇 차례 설사를 한다거나하는 고비가 있었지만 한파도 곧 지나갈 것이고 이제 곧 녹은 눈들 위를 뛰어다니며 꼬질꼬질하고 축축해진 그 작은 발바닥으로 작업실 바닥을 더럽히는 일만 남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요 근래 들어서는 언제고 올 지 모르는 이별에 대한 경계심을 놓아두고 있었다.


새끼는 쌍둥이라고 할 수 있는 치즈 2마리에 검은 털을 가진 친구 한 마리다. 어미 고양이를 똑 닮은 삼색 성묘가 늘 붙어다니는데 우리는 그를 이모라고 부른다. 최근 들어서는 이모의 배가 눈에 띄게 불룩해진 것을 보고 비상 사태라고 생각하기도 했으나 아직은 그 어떤 확신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치즈 2마리는 덩치가 커지면서 장난도 그에 못지 않게 과격하고 훨씬 과감해졌지만 검은 털을 가진 친구는 항상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당시 아트시네마에서 장- 피에르 멜빌의 회고전이 열렸고 우리는 검은(noir) 털을 가졌다고 해서 그를 ‘멜빌'이라 불렀다.


창문을 열면 늘 코 앞에서 기다렸다는 듯 앉아있었던 멜빌. 작업실 안에 두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겨우 내내 퇴근할 때면 고양이들을 창 밖 스티로폼 집으로 내쫓다시피 해야만 했다. 그 중에서도 멜빌은 유독 추위를 많이 탔던지 가장 끝까지 버티곤했다. 요 며칠은 기력이 너무 없는 나머지 밥 먹으러 올 시간에도 나타나지 않아 창을 넘어 지붕 위에 놓아둔 스티로폼 집에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혼자 웅크리고 있었고 집채로 데려와 평소처럼 난로를 바로 옆에다 놓아주고 미지근한 물에 캔 사료를 섞어다 주었다. 그 날은 어찌나 힘이 없는지 평소엔 손만 다가가도 도망치는 아이가 내가 손가락에 물을 묻혀 입가에 갖다주는 데도, 몸을 쓰다듬어 주는 데도 가만히 있었다. 사실 그 때 병원에 데려갔어야 했나 보다. 지금에 와서나 짐작해 보건데 물 한 방울 떠마시지 못할 정도로 몸을 못 가누는 상태였다면 그 작은 몸집이 감당하기에 얼마나 아팠던 것일까. 이전에도 이따금씩 기운이 없다가도 곧잘 다시 괜찮아졌기에 그 날은 곧 지나가고 말, 유독 컨디션이 안 좋은 날 중 하나겠거니 했다. 늘 시야에 두고 살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니 상태의 심각성을 알기가 어려웠던 것이라고 자책을 조금이나마 거두어 보지만 그렇기 때문에 또한 혹시나하는 불안이 늘 깔려있을 수 밖에 없었다. 목요일 밤, 친구에게서 멜빌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전화를 받고 작업실로 향했다. 가는 내내 지인에게 24시 병원을 묻고 혹시나하는 상황들을 생각해냈지만 어떤 일이 벌어졌건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한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었다. 서울 도심 내에서 움직이게 될 경로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댔지만 그 외에 것은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었다. 전화 상으로 친구는 말을 아꼈다.


나보다는 고양이들을 가까이서 지켜봐 온 경험이 많지 않은 친구들이고 ‘죽었으면.. 어쩔 수 없지 뭐..’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방어해왔다. 그러면 상처를 덜 받을 것이라 생각했었나보다. 그게 아니란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지만..


도심 한 가운데 그리고 임대해서 들어와있는 작업실이란 상황과 공간에서 먹을 것과 잘 곳을 제공해주는 것. 거기까지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양이들을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걱정해온 순간이 결국 찾아왔고 뭣보다 친구들이 받게 될 상처가 가장 두려웠다. 침착하고 의연해야지라는 생각으로 고양이의 행방을 묻자 스티로폼 집 안에 있다고 했다. 목장갑을 끼고 집 안에서 멜빌을 꺼내려고 하니 잠든 모습이 너무 곱고 예뻐서 원망스런 마음으로 눈물이 쏟아졌다. 몸이 굳은 정도를 보아선 잠든 지 몇 시간 밖에 안 지난 듯 했다. 그렇게까지 안 좋은 상태였는데도 다음 날 일을 핑계로 작업실에 들리지 못하고 (않았고) 줄곧 거리를 두어 온게 미안했다. 내가 재정적으로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던 사람이라면 그 어떤 순간이고 주저하지 않았을텐데.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땅으로 꺼질 듯이 슬퍼서 눈물을 마구 쏟아냈다. 친구 둘 앞에서 누구보다 더 차분하게 그 상황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의지가 무너졌다.


나의 집 앞에 있는 24시 동물병원에 일괄 소각 처리를 부탁 하려 셋이 택시를 탔다. 멜빌을 담은 택배 종이 상자를 친구가 안은 채로 앞자리에 앉았고 내내 혹여나 냄새가 나서 택시 기사를 불편하게 하진 않을까 마음이 쓰였다. 마음을 바삐 움직이지 않으면 푹 잠겨버릴 것 같았다. 다른 친구는 겨우 내내 추운 작업실의 창가의 단열을 위해 샀었던- 그 쓰임새가 좋아 이후 시장에서 재구입했던 빨간색 다용도 테이프의 일부를 조금 뜯어 상자에 반창고처럼 붙여주었다. 그 테이프를 이런 때에 쓰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작업실에서 동네까지 택시는 요금으로 만 원이 채 안되는 거리였지만 그 짧은 시간은 영원처럼 느껴졌다. 멜빌을 처음 만났던 가을부터 귀여운 고양이들을 보겠다고 먹을 것을 사들고 왔던 개소식 때의 친구들. 어느 친구의 기타 연주 앞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런 날도 있구나하며 그들도 나도 어떤 잠에 취했던 시간. 그리고 붉은 적외선 난로빛을 함께 쪼이며 보낸,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근래의 겨울 날들.


병원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많은 동물들이 있어 일괄 소각 처리를 맡아주기 어렵다고 했다. 길 동물 한 마리 묻어줄 곳 하나 마땅치 않은 도심의 척박함에 마음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어렵게 일괄 소각 처리를 부탁하려 했던 것이었다. 작업실에서 멜빌을 상자에 넣고 정신을 차리자 그 시간에 우리가 갈 수 있는 (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전염성 등의 문제로 사실 묻어주는 것보다 소각 또는 화장을 하는 것이 더 옳은 처사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겨울이니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지금에 와 해본다.)


늦은 밤 집, 단지 내에 흙이 덜 얼어있는 곳을 찾아 셋이 멜빌을 묻어주었다. 길고양이를 돌보아주는 사람도 적지 않은 동시에 작년 봄, 혐오 범죄가 일어났었던 동네인지라 혹여나 누군가가 지나가다 우리를 보진 않을까 내내 마음을 졸였다. 약 4개월간 밥을 주고 따뜻한 난로 온기를 쪼이고하며 눈을 마주친 시간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서둘러 묻어주어야만 하는 시간이 너무 애처롭고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멜빌을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두서 없이 써버렸다. 불과 몇 주 전에는 식탐이 유독 많은 멜빌이 혼자 먼저 와서는 밥을 다 먹고 치즈 둘이 먹을 때 또 달려들기에 손으로 잡아 올려서 품에 안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영문 모를 표정으로 가만히 있는 것이 신기해 핸드폰으로 나의 얼굴과 함께 사진을 찍었었고 조금 지나지 않아 쏜살 같이 내 품을 달아났었다. 그 기세가 너무나 좋아서 오래 오래 봄 그리고 여름까지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했었는데. 너무도 애석하게 무언가 해볼 겨를도 없이 단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나버렸다. 친구의 말처럼 우린 여전히 고양이란 짐승에 대해 알 지 못하는 것들 투성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짐승이란 표현으로도 모자랄 만큼 너무나 특별한 존재라는 것임은 알지만 그들을 보살피기에 우리의 상황과 능력은 너무도 부족했다. 여전히 그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 지 그 균형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단언할 수 없지만 분명한건 멜빌이란 사랑스러운 존재가 우리에게 잠시나마 찾아와주었다는 것이다. 그 고마움을, 그 예쁨을 두고 두고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단 하나 너무 아쉬운 것은 멜빌이 이 겨울을 지나지 못해 봄이면 흩날릴 꽃가루 내음에 재채기 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는 것. 무지개 다리 건너 세상에서는 이번 생에 태어났던 도심 한 가운데보다 그런 꽃내음과 따뜻한 볕을 실컷 만끽할 수 있는 편안한 곳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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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Arte Cinema 페이지에 올라온 인터뷰 영상 속 아녜스 바르다와 그녀의 고양이 니니의 모습

(https://www.facebook.com/artecinema/videos/10155990605610786/)



시네 타마리스를 방문해 니니란 고양이를 처음 만나 꾹꾹이를 받았던게 2014년 6월이었으니 그로부터 약 4년이 흐른 셈이다. 니니의 소식을 알게 되서 기쁘고 반가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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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에년에 비해 휘파람을 더 잘 불 수 있게 되었다. 올해 기타를 다시 손에 잡게 된다면 그건 저 영상 속 벨로주의 아름다움의 절반이라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일테다. 휘파람도 더 잘 불거야






이 곡이 왜 이리 귀에 낯익나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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