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X 월드>

암중모색 2020. 10. 29. 17:20

출처 :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etc&mra=bkEw&pkid=68&os=10240485&query=%EC%9B%B0%EC%BB%B4%20%ED%88%AC%20X-%EC%9B%94%EB%93%9C%20%ED%8F%AC%ED%86%A0

 

영화가 시작하며 '시월드'라는 얘기에 시어머니로부터 고통 받는 여성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여기서 '시어머니'와 '여성'이라는 단어를 선택하게 된 순간적인 의식의 흐름을 짚어보고 싶다. 엄마는 즉 나를 낳고 기르고 보호해주는 데에 헌신한 이로서 '여성'과 '개인'이라는 정체성보다 '엄마', '모성'이란 것으로 대체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몇 년전부터 엄마 대신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반면 시어머니는 어떠한가. 한국 드라마에서 그들은 홧병의 근원이자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는데 한 역할하는 이들이다. 우리 엄마의 시어머니만 해도 내가 태어났을 때 '여자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눈물을 보이셨다고 한다. 당시 엄마가 받으셨을 상처에 비할 데 없지만 이는 이따금씩 잊을만하면 나를 울컥하게 한다. 내 탄생이 축하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런 대우를 받아야 했을 엄마 곁에 '지금의 내가' 있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서다. 보통 시월드에서 나쁜 역은 시어머니가 도맡아 하는 데다 시아버지는 '며느리 사랑'을 시전하거나 막상 중요한 때에는 꽁무니 빼버리는 얄미운 대상이기에 이 빗나감에 당황했다. 언제, 어디까지 여성들은 악역을 자처해야 하나. 주입 된 K-드라마 공화국의 서사에 물든거 같아 괜히 민망하고 화가 났다.

 

주인공 최미경은 오래 전 사고로 남편을 여의고 12년째 '시아버지'를 보필하고 있다.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어렸을 때 매일 같이 "엄마, 그냥 아빠랑 이혼하면 안돼?"라며 마치 구멍가게에 가서 과자 사오는 일처럼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양 묻곤 했던 그 때의 마음 같았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그를 보필 할 시가 친척이 미경만이 아님을 안 순간에는 배신감마저 느꼈다.

 

'큰며느리의 업보'였다.

 

나의 큰엄마도 이모도 최근까지 그 굴레에 있었다. 남편을 잃고도 '도련님들'을 도와 제삿상을 차리고 설겆이 일을 했던 큰엄마는 최근에 먼 교외로 이사를 가셨고, 시댁 근처에 살며 도통 집 근처를 벗어나지 못했던 이모의 시아버님은 불과 몇 달 전 돌아가셨다.

 

미경의 시월드는 시아버지의 갑작스런 '독립 통보'로 흔들린다. 12년을 함께 살아 온 한 식구인데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었을 지는 상상할 수 밖에 없다. 시아버지는 방 안 냉장고에 생라면을 넣어두고는 곳곳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며 본인만의 세상을 구축하신 듯한 분이다. 면의 숙성도와 쫄깃함을 높이기 위한 고단수의 노하우이신걸까. 때때로 '창문'을 넘어다니는 모습을 보노라면 여러 세상을 넘나 드는 듯한 기이함까지 느껴진다. 요양원에 계신 우리 할아버지는 아흔 다섯의 나이에 치매를 앓고 계시다. 사랑하는 손녀인 나를 때때로 기억해내시기도 하지만 대게는 늘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그 때 그 때 떠오르는 파편들을 헤집고 다니신다. '노인'이 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나는 과연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어른이 되면>을 연출한 장혜영 감독의 노랫말이 습관처럼 생각나는 요즘이다.

 

딸 한태의는 방문 하나 없는, 열린 공간에서 그 둘과 함께 기거한다. 여지껏 평생 내 방 한 칸 가져보지 못한 이로서 그 고충을 알기에 할아버지가 '방 문'을 떼어버렸다는 대목에서 나는 거의 발작 직전 수준이었지만 막상 그는 크게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미경이 말하는 것처럼 그녀는 참 낙천적이다. 카메라 뒤에 숨어 그 고민들을 안 보여주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갑작스런 '독립'에 대해 여러가지 경우를 떠올려보다가도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라며 카메라를 돌려버리는 그의 행보에는 머뭇거림이 없다. 여리고 힘든 미경이 기댈 수 있도록 하고자 함일까. 두 모녀의 관계를 보며 어느 때 보다도 '반려자'라는 단어가 또렷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 수록 눈물이 많은 엄마를 어느 순간부터 안아주게 된 나의 모습도...

 

영화에서 둘은 두 번의 결혼식에 동행한다. 카메라를 든 딸 태의는 엄마의 모습을 멀찌감치서 바라본다. 여전히 결혼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는 소녀처럼 맑고 진심을 다해 축하해주고자 하는 그녀의 눈망울을 클로즈업한다. 두 번째 결혼식에서 미경은 부부가 된 이들을 보며 "둘이 닮으면 오래 산다던데"라고 말한다. 영화 초반에 미경과 그의 남편의 범상치 않았던 신혼 시절 사진들이 순간적으로 오버랩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두 사람, 참 예쁘고 근사했는데 그러면서 말이다.

 

카메라는 대게 집 안 곳곳에 놓이거나 엄마를 밀착해 따라 다닌다. 워낙 연예인들의 일상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이 일상이기에 누군가의 집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카메라는 집의 전경을 담기 위해 높이 매달리지도 그렇다고 삼각대 위에 균형을 잡는 등의 계산이 느껴지지 않는다. 무심코 밥상 위에 올려놓는 핸드폰처럼 그들의 일상의 일부처럼 놓일 뿐이다. 그러나 엄마의 뒷모습을 비추거나 프레임 안에 감독이자 등장인물인 딸 한태의가 '들어가' 대화를 시도함으로 서사가 전개될 때에는 감정적인 '사건'과 '시선'이 발생한다. 마치 이것이 부재한 아버지의 시선인 듯 말이다. 카메라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며 감독이 카메라를 들게 된 시작점이 궁금해진다.

 

둘은 낙관의 힘으로 결국 새로운 보금자리를 갖춘다. 그리고 함께 처음 '선택한 가족'으로 강아지 '호주'를 맞아들인다. 타지에 사는 오빠와 빔 프로젝터로 화상 통화를 나누며 새로운 방식의 유대를 찾아가기도 한다. 시월드로부터 성큼 걸어 나와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미경에게 태의는 더 없이 근사한 동반자다. 나의 엄마 그리고 이모, 큰엄마. 더 많은 이들에게 이 영화가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다양한 여성 개인들의 서사가 더 많이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도 든다.

 

 

 

* 표현이 다소 완화된 부분의 버전으로 오마이뉴스에 기고

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688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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