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정범>은 공동정범이란 이름 아래 국가폭력에 희생 당한 이들의 이야기를 끈질기게 쫓아간다. 용산 참사 당시 우연히도 바로 두 블럭 옆 건물에 출근을 하던 때였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던 이들이 돌맹이를 던지며 경찰과 대치 중인 모습을 목격 했었다. 하룻밤 사이 그 곳에서 사람이 죽어나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시 기사로도 작성했으며 기회가 될 때마다 남일당 건물에 들렸지만 나는 이것을 어떻게 기억하고 가져가야 할 지 막막했다. 망루에 올라갔던 이들이 출소 후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가늠해 본 적 없었고 영화를 통해서야 그들이 지나왔을 처절하고 잔인한 시간들에 대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망루에 올랐던 이들 중엔 용산 재개발 구역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들도 있었지만 다른 지역에서 철거 연대 운동을 하던 이들이 더 많았다. 사고 후 살아남은 이들은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공동정범'이란 이름으로 한데 묶여 5년간 감옥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들이 서로의 얼굴을 대면할 수 있었던건 출소 후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마련한 자리를 통해서다. 개인들의 인터뷰에서 일부는 왜 그들이 서로 만날 수 없었는지 그리고 망루 안에서 마주했던 공포에 대해 이야기 나눌 기회가 없었음에 한탄했다. 일부는 망루 농성을 주도했던 이충연 위원장을 향한 서운함도 드러냈다. 공통된 기억과 트라우마를 가지고도 거기서 비롯된 개인이 일상으로 가져갔을 무게는 다 달랐겠지만 (국가에 의한) '고립'으로 인해 겪었을 상처는 모두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당시 망루에서의 이충연 위원장의 선택을 두고 누구 하나 비난하는 이 없었고 오히려 '나라도 그 상황에 처해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며 위로를 해준다. 이는 5년간 이 위원장을 가장 힘들게 괴롭힌 상처였다. 이들이 와해되지 않고 그 위로의 몇 마디를 주고 받을 기회만 있었더라도 그는 그렇게까지 인고의 시간을 견디지 않았어도 될지 모른다. 물론 사건 직후 모든 것을 풀어내긴 어려웠을 지라도 조금은 덜 외로웠을거다. 영화 <공동정범>은 이 외로운 이들을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영화 초반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접했던 불길이 치솟은 용산 참사의 모습은 지금도 마주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이들의 목소리를 잊지말고 들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연대의 시작이리라. 1월 25일 개봉!



* 영화 말미에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이명박과 김석기의 얼굴 (쌍판)을 보면 없던 호랑이 기운도 솟구친다는 ^*^

(당시 작성했던 기사는 신문사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유실되었고 내 개인 블로그로 공유했던 기록만으로 남아있다 : 용산 철거민이 옥상에 올라갈 수 밖에 없던 이유 / 지난 20일 새벽 망루에 올라갔었던 박모 씨 사연 https://blog.naver.com/choi5765/90041334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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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페북에 올렸던 가편집 기사 구인 공고 게시물을 삭제했다. 제작 이사에게 전달 받은 단가로 100만원 선인 작업이었고 처음 내게 제안이 들어왔으나 기한이 맞지 않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사실 드라마 편집 경력이 없는 나로선 프로덕션 측에서 제시하는 가편집이 얼마만큼의 노동력을 얘기하는지 디테일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러치만서도 매우 적은 금액이라 생각했다. 주위에 편집 일을 하는 사람 인프라가 적기도 해서 이게 가능한 금액인지라는 질문을 포함해 지인 몇에게 물어본뒤 페이스북에 글을 게시했다. 말도 안되는 금액이라며 최소한 얼마는 받아야한다는 얘기라도 듣고 제작사에 전달해야겠단 생각도 있었지만 그만큼 마음을 쏟아 부을 여력도 시간도 없어 그러고 말았다.

오늘 새벽 마지막 촬영 때 감독과 제작팀원이 나누는 얘길 들었다. 아직 가편집 기사를 구하지 못한 상태였고 제작팀원이 지인을 소개해주려는 참인거 같았는데 그 지인은 평소 3분짜리 영상 제작에 20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했다. 포맷이나 후반 작업의 디테일은 모르지만 60분짜리 웹드라마 가편집 100만원이 단단히 잘못된 금액이라는 것만은 다시 한 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내가 프리랜서로 작업을 시작하게 된건 비영리 시민단체들이었다. 먹고 사는 일이 촬영과 편집 일이라고 말하게 될 정도로 내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나는 근래까지만 해도 영상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한 일이었고 그냥 할 줄 아는 기술 이상으로 생각지 않으며 늘 스스로를 전문가 범주에 끼우기를 주저하고 실제로도 연마하지 않았다. 운이 좋게도 일은 지인들을 통해 계속 들어왔고 그 중에는 내가 없는 돈을 주고서라도 (격한 마음을 표현키 위해 과장한 표현치고는 현실적으로 너무 슬프고 위험해서 농담으로 자조하기 어려우나 아무튼-) 하고 싶을 정도로 근사한 기회들이 많았다. 그리고 늘 챙겨주는 마음들이 더 예쁘고 고마웠으므로. 그치만 페북에 올렸던 공고 글 이후 제작사에게 항의하지 않은 행동이 업계에 먹칠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속한 업계가 어떤건지 사실 보이지도 않고 결속을 다질만한 다른 사람도 많지 않지만 부끄러웠다. 실제 가편집 작업을 해보고 싶지만 경력이 많지 않아 고민된다는 마음을 밝힌 친구를 소개할 뻔한건 더 창피하고 스스로에게 화난다.

그래서 내년 나의 목표는 새로울 거 없이 늘 고민하던 거지만 자기검열을 멈추고 남한테 베풀고자하는만큼 나 스스로도 존중 받도록 애쓰는 거다. (나 존중 + 타인 존중 = 상생) 좀 더 구체적이고 단단한 방식으로 말이다. 노동과 그 가치에 대한 고민의 무게로 대학 졸업 이래 개인 작업을 할 수 없었고, 만들고 난 지금도 마음이 물론 어렵다. 얼마 전엔 단순 변심으로 인한 수정 요구를 번복하는 클라이언트에게 나는 당신이 제시한 금액 내에서 그러니까 ‘딱 50만원 어치’만 작업한거고 그 외 말씀하시는 이펙트 같은건 내 영역이 아니라 잘라 말하기도 했다. 이만하면 재능기부에 착취되던 삶을 정당화하고 스스로를 괴롭히던 때보다 많이 성장했다. 나잇값이라는게 딴게 아니라 착취나 실수에 대한 경험이 있으면 그걸 번복하지 않는다는 건데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보다 나은 노동 사회! 노동 해방!!

+ 덧붙이자면 3분에 200만원이란 대목은 경종에 불과했던 것이지 작업의 특성 상 분, 초 단위로 단가를 책정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치만 적어도 ‘실 노동시간 + 노동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소요된 시간 (식사 + 이동 + 작업공간 유지 등) + 기술과 경력 + 작업으로 인해 클라이언트 측이 얻게 될 혹은 얻고자하는 효과, 파급력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기본적으로 고려하고도 남길 수 있는 이윤이 보장되어야 한다. 사실 지금 이것들보다 우선하는 것은 아무래도 하고 싶은 작업인지와 예산의 충분함을 떠나 클라이언트가 내가 작업하는데에 얼마나 ‘케어’가 가능한지다. 앞으로의 목표는 이것들을 지치지 않는 내에서 차근차근 가져나가는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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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것들

rewind 2017. 8. 10. 16:06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했던 지난 며칠은 무서웠다. 감정으로서 무서운게 아니라 그냥 인지되었다. 조금씩 넋을 잃었던 정신이 돌아오고 있고 어제 갑작스런 친구의 부름으로 작업실에 있다가 맥주를 마시러 나갔다. 인생에서 내가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맥락의 질문을 그는 던졌다. 낮에만 해도 치과에서 신경치료를 받다가 잠든 나머지 의사가 볼을 톡톡 두들기며 '설마 주무세요?'하던 반 수면 상태의 나였다. 먼 여행을 앞둔 또 다른 친구의 짐 싸는 모습을 보면서도 내내 감각이 없다가 조금씩 3년 전 2개월 여행을 떠나기 직전의 나를 떠올렸다. 끊어졌던 맥락이 다시 살아난듯 했다. 그리고 내가 그랬듯 그녀에게 정말 실감이 안 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던 기억 속에서 구체적인 이미지들을 다시 끌어냈다. 구글 드라이브에는 당시 여행을 앞두고 챙겼던 준비물들의 목록이 있었다. 그녀는 신발 네 켤레를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신발들이 만나게 될 땅의 촉감들을 그려본다. 언니는 많이 걸어다니니 아무래도 한 두 켤레로는 신발들이 무리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행이 저녁식사를 할 즈음에야 정신이 제법 돌아왔다. 저녁에 친구를 만났을 때에는 제법 또박또박 문장을 구사하기에 이르렀다. 그제만 해도 방향을 잃은 낚싯대마냥 허공을 둥둥 떠다녔는데 실체들 앞에서 조금씩 다시 살아났다. 다시 말하는 법을 배우고 표현할 줄 알던 것들을 몸이 기억해냈다. 그리고 친구의 질문에 대답하다보니 상대를 위하고 소망하는 마음이 곧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어떠한 대우를 받았으면 하며 어떠한 것들을 누리고 살기를 바라는 것. 나는 스스로가 매우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정말 좋았고 안아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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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rewind 2017. 7. 11. 22:00

텅 빈 거 같았던 그 때와 지금의 시간. 스스로에게 무엇을 가장 해주고싶은 지 그리고 찾아다니고자하는 지 (띄어쓰기 너무 어렵다..) 사진들을 보며 떠올렸다. 나는 한없이 푸르게 펼쳐진 시내의 그 공원들이 너무 좋았고 후무스와 샐러리 그리고 각종 종류의 요거트와 말린 과일들을 마트에 사다니는 것을 좋아라했다. 어떤 날은 특별한 일정 없이도 무작정 가보지 않은 동네의 마트에 가서 달걀 한 판 사오는 것을 임무처럼 완수하기도 했다. 한국에 오기 전 2주 가량은 달걀 한 판과 감자 1Kg로 버텼으며 일주일 조금 안되게 머물었던 벨기에에서는 커다란 깜빠뉴와 감자샐러드를 매일 아침으로 때웠다. 어느 성당에 들어가 졸다 나오기도 했으며 말도 안 통하는 파리 시내 중심에 있는 수영장에 가 혀꼬인 남자도 만났다. 먹고 걸으며 온 몸에 바람을 스치고 마음이 살랑살랑. 누가 뭐래도 나는 여름밤이 좋아좋아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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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되는 여성과 동물의 이미지에 대하여
[페미니스트 정치포럼] ⑤ 혐오의 연결고리, 여성과 동물
2017.06.27 17:59:56

얼마 전 일본 앞바다에서 불법 포획되어 10여년간 돌고래쇼에 동원된 '태지'의 향후 거처를 두고 이야기가 오갔다. 함께 지내던 돌고래들이 자연으로 방사되면서 종이 다른 태지만이 동물원에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태지는 우울증 증세로 수면 위로 올라오는 자살 시도를 반복했다. 동물원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물들이 불법으로 잡혀 온 사실을 몰랐을 것이며 누구도 그들의 고통을 구경하고자 부러 쇼를 관람하고자 하는 이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돌고래를 좋아해서 직접 보기 위해 쇼에 갔을 뿐인데 이걸 '혐오'라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여성으로서 그리고 동물보호단체에서 일했던 경험을 두고 혐오란 무엇인지 사회에서 여성과 동물을 두고 소비하는 이미지들을 통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둘의 연결고리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국내에서의 '동물 보호 운동'에 대해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가장 대중적인 캠페인은 아무래도 유기동물 입양 캠페인이다. 많은 셀러브리티들이 '사지말고 입양하세요'라는 문구를 내세우며 반려동물 사랑을 보여주는 이미지는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어렵지 않게 호감을 사기 마련. 그러나 오랫동안 국내에서 '동물 보호'를 한다고 하면 '개나 고양이를 유난스레 좋아하는 사람들' 즉 동물 애호가 정도로 치부되기도 했다.

몇 년 전에 비해 지금은 해양 동물 보호 단체나 해외 단체들의 국내 지부 또한 생겨나면서 동물 보호 운동의 범주가 전보다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은 큰 성과다.('시 셰퍼드(Sea Sheperd)'라는 해양환경동물보호단체는 얼마 전 내년 출범을 목표로 한국 지부 설명회를 가졌으며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umane Society International)은 몇 년 전 부터 한국에 지부를 두고 식용으로 길러지는 개들을 농장에서 구출해 해외로 입양 보내는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나가고 있다.)


소젖 섭취가 인간이 비인간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착취, 억압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비건 페미니스트 네트워크'라는 모임도 생겨나 먹거리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서의 채식에 대한 이야기도 좀 더 풍부하게 다루어 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있다.  


반려동물, 실험 동물, 야생 동물 이외의 범주에는 우리가 동물원이나 관광지에서 마주하게 되는 쇼 동물 그리고 빠르고 많은 먹거리 공급을 위해 공장식 축산 시스템으로 길러지는 농장 동물 등이 있다. 범주의 기준을 살펴보면 대개 인간의 '필요'에 의한 것들이다. 우리가 사회에서 동물을 두고 강요하거나 소비하는 이미지는 대체로 귀엽거나 혹은 맛있거나이다.

동시에 여성에게는 어떤 이미지들이 요구되는가. 미디어 속 엔터테이너 여성들은 성적인 매력을 어필하는 동시에 애교를 겸비해야만 한다. 외모를 두고 강아지나 고양이에 비유하며 귀여움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주체로서 존중 받기보다 대중, 대부분 남성의 입장에서 강요하는 이미지일 뿐이다.  


결혼 적령기를 벗어나면 '임신'을 하기에 너무 늦은 '노처녀'라는 낙인이 붙기 마련. 동물들 또한 인간 소비자의 수요에 맞춰 한 평생 '출산'만을 하기도 한다. '작고 털이 빠지지 않는 종류의 개를 원해요'라고 하면 펫샵으로 오기까지 농장에서 그리고 이후 길거리에서 수 백마리의 생명이 낙오된다. (돈 주고 산 강아지, 어디서 왔을지 생각해보셨나요?인간 여성은 대를 이어나가기 위해 '남자아이'를 낳을 때까지 임신과 출산을 요구 받는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남아선호사상을 두고 여태 이야기하느냐고 한다면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그런 시대이다. 국가에서는 출산율을 높이겠답시고 가임기 여성 지도까지 만들지 않았었나. 결혼을 하기에 그리고 생명을 잉태하기에 적정한 연령은 없다. 본인이 스스로 선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한정된 프레임에서 동물과 여성에 대한 혐오는 다양하게 드러난다. '여성스럽다', '여자 같다', '동물적이다', '짐승 같다' 이 나열된 단어들의 뉘앙스를 짚어보면 어느 것 하나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한 것이 없다. 여성스러움 안에는 상대의 비유를 거스르지 않는 내에서의 순종적인 이미지가 숨어있기 마련이며 누구도 수치스러움을 내세우기 위해 '남성성'을 가져와 이야기하진 않는다. 오히려 남성답지 못함은 곧 여성스러운 것으로 치환된다. 

또한 우리는 인간으로서 저지른 잘못을 '짐승'들에게 돌려버린다. 언행에 두고 반격 할 요량이 없기 때문에 손쉬운 방법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영화나 소설에서 인물이 부당한 폭력을 당했다고 하면 대부분은 이런 대사를 친다. '너는 나를 짐승만도 못하게 대했어', '그는 나를 복날 개 패듯 두들겨 팼어'와 같은 레퍼토리들 말이다. 일상에서는 만연하게 '개 같다'라는 표현도 쓰지 않나. 개가 대체 뭘 잘못했길래. 그리고 짐승만도 못하게 대했다면 짐승은 그렇게 대해도 된다는 것인지?

동물보호단체 PETA에서는 'I'd rather be naked than wear fur'라는 캠페인으로 많은 여성단체들로부터 질타를 받은 바 있다. 모피를 입느니 차라리 벗고 말겠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셀레브리티들이 누드로 나서기 시작한 것. 그러나 이 메시지 이전에 우리에게 1차로 노출되는 것은 벗은 여성의 몸이다. 메시지를 전파하는 데 있어 이 이미지가 매체에서 '상품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걸 그들도 알고 있던 것이다. 모피 시장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이번엔 '누가 벗었다'를 두고 먼저 이야기한다. 여성과 동물은 이렇게 전시되고 소비된다. 

더욱이 많은 뉴스에서 보았듯 동물에 대한 혐오는 인간에 대한 폭력으로까지 이어진다. 잔혹한 사례들을 열거하지 않더라도 멀지 않은 일상에서 매일 같이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들은 어떤 대상이기 이전에 모두 각 개별적인 존재들이다. 동물권이 아닌 '생명권'. 우리는 이렇게 감수성의 범위를 더 넓혀가야만 한다. 혐오는 어떤 것을 맹렬히 밀쳐내는 것만에 해당되지 않는다. 알고 싶지 않다는 데에서 혹은 단순히 싫다는 데에서 출발하는 폭력이야말로 곧 '혐오'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 것, 여성과 동물은 이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을 필요가 있다. 단지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만이 다가 아니라 그들에게도 '삶'이란게 있기 때문이다. 


(필자 최미연 씨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활동가로 일했었습니다.)


출처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6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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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며 우리에게 보장되는 것은 무엇들이 있을까. 국가? 사회? 가족?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나의 가치를 인정 받고자 증명해야만 한다. 대학만 가면 어떤 삶이든 보장될 것처럼 말하던 이들도 있었다. 물론 살아보니 그것들은 높은 산을 오르며 ‘거의 다 왔어'라고 나를 어르던 것과 다르지 않음을 안다. 산을 오르고 나면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갈 일이라도 있지. <컴, 투게더>의 가족 앞에 기다리는 것은 흙탕물에 낭떠러지다. 많은 것을 바란 것도 아니었고 단지 평범하게 사는 것, 그 뿐이었는데 가장 어려운 일이 되버렸다. 이것은 재앙이다.

혹독하고 처절한 시간들을 통과하는 이 가족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자, 함께'라고 말하는 감독의 시선은 굳건하고 묵직하다. 그들의 감정을 시선으로 압도하거나 휘두르지 않고 줄곧 응시한다. 입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딸 한나와 돌연 실직자가 된 범구 그리고 신용불량자 처지에 카드 회사에 다니는 미영. 영화는 각자의 일상과 공간들을 보여준 뒤 이들이 함께 식사하는 장면으로부터 출발한다. 한데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음식을 나눠 먹는 일 그러니까 ‘먹고 사는' 일이야말로 가장 쉽지 않은 세상이다.
딸 한나는 재수를 하며 또 한 번 대기번호를 받게 된다. 대학은 입시생들을 개인이기 이전에 수치화 된 대상으로서 희망고문을 할 뿐이다. 아직 대학 이후의 삶을 꿈꿔본 적 없는 한나에게 친구 유경은 기왕이면 너처럼 살라며 다른 삶도 가능함을 알려준다. 줄 세우기 경쟁에 내몰린 딸에 이어 아빠는 졸지에 사회(회사)에서 이탈하게 된다. 성접대를 받고 싶었던 상사의 눈치를 못 알아챘다는 게 퇴직 사유라면 사유다. 그가 밀려나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젊은 신입 인턴 사원. 필요에 의해 대체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직장인으로서의 ‘질서’를 잃어버린 범구는 별안간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면서 집에 늘상 존재해 온 아내의 식물과 반찬들을 마구 엉클어 뜨리기 시작한다. 정렬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탈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려 층간 소음으로 찾아간 이웃 앞에서조차 재택 근무라는 핑계를 대며 정장 차림을 하고 있지만 그 또한 사회로부터 낙오된 범구를 알아본다.

미영이 마주하게 되는 경쟁 사회 또한 만만치 않다. 자신도 신용불량자라고 어렵게 고백하는 동료를 앞에 두고 역겹다고 돌아서는 데에서 주위를 둘러 볼 여유는 보이지 않는다. 경쟁 사회가 정말 무서운 것은 바로 이런 순간이다. 어느 순간 상대를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 미영이 죽기 살기로 마지막까지 매달릴 곳은 ‘실적'뿐이었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컴, 투게더>의 인물들은 나락으로 떨어지기 직전 우정과 연대를 통해 다시 발걸음을 어렵게 옮긴다. “조금만 더"를 얘기하는 이들 앞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며 몸부림 친다. 과도한 경쟁과 고립, 그 질서로부터 벗어나도 된다는 것. 흙탕물에서 뒹굴지언정 앞으로 가게 될 이 가족의 길은 그 어떤 것보다 의미 있을 테다. 지금 여기에 희망을 데려다 놓고 함께 가자고 하는 <컴, 투게더>가 고마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어디로든 '함께'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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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물결

rewind 2016. 11. 15.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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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우의 동생은 사람들이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좋은 일을 하면 천국에 갈 것이며 그 곳은 매일 맛있는 것과 재밌는 것들로 가득할 것이라 답하는 그. 이에 동생은 다시 묻는다. 그렇게 좋은 곳이라면 왜 다같이 한데 모여 살면 안되는 것인지. 왜 두 세계로 나뉘어 헤어져 있어야 하는지 말이다. 이에 그는 더 이상 대답을 줄 수 없다. 이를 듣고자 했던 대상도 곁에 없을 뿐 아니라 애초에 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일테다. 죽음이라는 상실 앞에서 우리는 무력해지고 두려움에 휩싸인다. 결국 돌고 돌아 어디서든 그 진실은 다른 모습으로 마주하게 되지만 말이다. 원희는 이를 피하고 있는 연우 앞에 나타나 진실을 마주하라고 다그친다. 뒷걸음 치는 그에게 끊임없이 손을 뻗는다.


 동생과의 마지막 대화를 상기시켜보면 연우가 아버지에게 묻는 질문에서 두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왜 우리 여기 살죠?"라는 말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자들이 머무는 그 곳. 단양이라는 동네인 동시에 이승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다른 이유 없이 그냥 와서 사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답은 이전에 여기서 공장을 다니려고 했다며 '단양'이라는 데에 가깝게 들린다. 그러나 '이승'인 이 곳에 왜 사느냐고 묻는 의미로 읽는다면 동생의 죽음 이후 그녀의 질문에 대해 내내 고민했을 그의 시간들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오토바이로 병원과 집을 오가는 것 이외 달리 만나는 이도 없어 보이는 한적한 그의 삶에 죽음이라는 질문이 끈질기게 따라다닌 것이다.


 죽음을 앞둔 원희가 그런 연우 앞에 나타났다는 것은 슬픈 운명을 암시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가 어떤 답을 내릴 것인지에 대해 주목하게 한다. 그가 처음으로 오토바이에 원희를 태워주는 순간. 그 동행을 잊을 수 없다. 카메라는 오토바이에 탄 두 사람의 행로를 오랫동안 보여 준다. 탈 것의 특성 상 두 사람이 밀착되어야 함은 물론 한 번 시동을 걸고 도로로 나가면 멈추기가 어렵다. 거리를 두어 온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취미라 할 것도 없어 보이는 연우에게 유일한 사치라곤 세련된 오토바이 하나로 보인다. 그것에라도 몸을 싣지 않으면 스스로 나아갈 추진력을 받지 못해서일까. 연우가 오토바이를 몬다기보다 오토바이가 그를 태우고 다니는 느낌이다. 좀처럼 가까워 질 수 없을 거 같았던 두 사람이 소나기 앞에 나란히 서고, 마주 앉아 밥을 먹고 그렇게 조금씩 거리를 좁혀나가는 동선이 제목을 닮아있다. 수면은 흔들리며 머물기도 나아가기도 한다. 잔잔한 움직임 안에서 삶은 역동하고 조금씩 모습을 바꾸어 나간다. 일렁이는 수면은 다 같은 풍경인 것 같아도 오랜시간 지켜보면 매 순간 바뀌고 있는 것들이 합해진 잔상들로서 인식된다. 그런 물결을 거스르고 원희가 가고 싶어 했던 장소를 향해 가는 연우의 모습은 그래서 오랫동안 지켜보고 싶어진다. 따뜻해지며 꽃이 필 것이기 때문에 연우 안에서도 작지만 큰 생명력이 일어나길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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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 love is dead, love is a fantasy, little girl have.

Sarah : love is a stream. it's continuous, it doesn't stop.


[Love Streams, John Cassave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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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보다] 활동가들이 겪는 심리적 문제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http://todayboda.net/article/7088


라다   우선, 감정은 좋은 감정 나쁜 감정이 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감정일 뿐이에요. 가치판단은 우리가 나중에 덧붙이는 거죠. 그리고 감정을 성찰한다는 것은 그것을 다 표현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게 어떤 감정이든 나에게 있다는 것을 허용하라는 거예요. 화가 난다고 무조건 화를 폭발시키라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화가 난다는 것을 느끼고 머무르면서,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를 충분히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죠. 대부분 화가 나면 어떤 사람 때문에 화가 난다고 생각하는 데, 내 욕구가 좌절되었다든지, 내가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 게 괴롭다든지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런 세밀한 결로 자기를 만나는 게 필요한 거죠.
 
불안 같은 경우도 그래요. 불안이 없으면 우린 생존할 수 없잖아요. 불안을 떨치려 하는 것보다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불안한 건지 살펴보는 게 더 중요해요. 외부의 대상이나 목표에 집중하듯이, 그만한 시간과 열정과 에너지로 자기에게 머물러야 해요. 이것이 심리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자기 성장이 일어나게 하는 동력이기도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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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유일하게 죄의식 느끼지 않고 사치를 부리던 곳이 있었으니 향음악사 오프라인 매장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앨범을 4개씩 산 뒤 며칠간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떼우기가 일쑤였다.

폐점(..) 하루 전에야 갔더니 이미 내 선에서 알만한 앨범은 거의 빠져있었다. 저스틴 비버와 이브 몽땅, 동방신기만을 발견하고 절망했다가 1시간동안 허리와 목을 꺾어가며 빈 칸에 흐트러진 음반들을 훑어보았다. 평소에도 찾는 앨범을 바로 묻지 않고 매장 내 음악을 들으며 내가 기어코 찾아내고야 마는 세월아네월아의 시간을 즐겼었다. 오늘은 매장 내에 검정치마, 3호선 버터플라이, 산울림 등의 익숙한 노래들이 나오는데 바닥에 앉아 캔맥주라도 까야할 것만 같았다.

몇 년전 매장에서 Greatful Dead의 음악을 처음 듣고 너무 충격 먹었었다. 때마침 매장 한 켠에 6-7만원 가량의 박스세트가 전시되어있었고 반 년동안 갈 때마다 '곧 데려갈게'라는 눈빛을 보내며 돌아서곤 했었다. 결국 못 샀다.

오늘 이른 오후 조그만 공간에는 15-20명 가량의 사람으로 가득 차 기이한(!) 풍경들을 연출했다. 서로 한 섹션을 다 봤다 싶으면 매끈한 제스쳐로 자리 이동을 하고 부딪힐 가능성들을 줄여나갔다. 쭈그려 앉아있다가 일어나거나 고개를 돌릴땐 사방을 살펴봐야만 했다.

향뮤직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신촌을 찾을 일이 없었던 나로서는 오늘 맘이 너무 공허하다. 그래도 온라인 및 개인 주문은 계속 하실 거라 하니 조금은 안심되지만 왜 이런 조그만, 최소한의 공간조차도 버티는게 힘들어지는건지 모르겠다.

+ 같은 앨범을 동시에 집다가 이상형과 눈맞아 향음악사 옆 베스킨에서 아이스크림이나 먹고 갈래요?하는 환상과도 빠이빠이다. 언젠가 이름도 모를 어느 누추한 레코드샵에서 알바생이 내가 들어서는 순간 펄프나 킹크스를 틀으며 '어디있다 이제 나타난거니'하는 눈빛을 보내주길 바랄 뿐이다. 환상은 환상대로 아름다우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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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캐롤>을 보고 나서 좋았던 장면들을 몇 시간에 걸쳐 열거해보았다.

1. 첫 장면에서 길거리 신문 가판대를 보고 예기치 못하게 종로에서 광화문으로 가는 길목에 있던 지금은 사라진 군밤 장수가 생각났다. 그 길과 느낌이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2. 테레즈가 창가를 내다보는 장면이 유독 많이 나오는데 그게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내다보는 모습들 같아 볼 때마다 설렜다. 매번 창문들에 빗물 자국과 같은 얼룩들이 묻어있어 더 좋았다.

3. 테레즈에게 키스를 시도했던 남자. 다른 영화에서라면 주인공에게 트라우마를 주입시켜야 한다는 왜곡된 열망(!)으로 더 밀어붙였을 것 같은데 그러지 않고 거기서 끝내는 선택이 마음에 들었다. 이 부분에서부터 영화 끝까지 주인공 둘을 연출자가 든든하게 지켜주는 느낌이 든다.

4. 캐롤이 테레즈를 집으로 초대하고 나서 남편이 들이닥치자 갑자기 집안임에도 불구하고 신발을 신는 장면. 주체적인 사람으로 보이면서도 오랜 결혼 생활에서 그런 것들이 몸에 배여있다는 디테일이 돋보였다.

5. 캐롤과 떠나는 차 안에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도 모르고 좋다고만 해왔던 것들에 눈물을 흘리는 테레즈.

6. 어느 부유하고 지루하던 상류층의 파격적인 도발이 아닌 누구나 그러하듯 사람 좋아하는게 그런거지하는 감정선의 자연스러움

7. 캐롤과 테레즈의 첫 식사에서 무얼 고를지 몰라하던 테레즈가 '같은 걸로요!'하는데 당황한 기색 없어 보이려 하던 것.

8. 부유한 캐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그런 듯 보이는 테레즈이지만 둘이 함께 하는 여행에서 누구도 그런 부분에 대해 불편함을 내보이지 않을 정도로 서로에게 맞춰간다.

9. 일례로 캐롤에게 받은 값비싼 카메라 선물에 부담만을 앞세우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의 선물을 하는 테레즈.

10. 둘이 탄 차를 미디엄 숏으로 빼서 차도에 지나가는 다른 차들에 가려졌다 나타났다하며 함께 찍은 장면이 있는데 약간 세트 같기도 한게 자크 타티 영화의 한 모습 같았다. 요즘에 보기 드문 앵글의 숏이라 느꼈다.

11. 여행에서 다녀온 후 캐롤과 애비가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이야기를 나눈뒤 계단을 내려가면서 캐롤의 한 손이 그녀의 목덜미를 잡고 나머지 손으로 등 뒤에서 애비의 손을 잡았던 제스쳐가 기억에 남는다.

12. 캐롤과 테레즈가 여행 이후 재회하는 장면에서 잭이란 남자가 들어오자 "You two have good evening"이라고 인사하며 테레즈의 어깨를 지긋이 누르고 나가는 캐롤. 그리고 이어 반대편의 어깨를 가볍게 치고 나가는 잭의 제스쳐. 이 장면이 처음과 후반부에 두 차례 나오면서 그 제스쳐가 반복되는데 이게 너무 좋았다.

13. 양육권 문제로 캐롤이 남편에게 자기를 부정할 생각이 없다며 이야기하고 나서자 더 구구절절 연장되지 않고 남편의 멍한 표정으로 문이 닫히고 끝나는 씬의 정리.

14. 테레즈가 잭이란 친구와 함께 찾아간 친구의 파티에서 전 남자친구를 마주했을 때 그와 더 맞닥뜨리지 않게 한 것.

15. 이어 키스하려고 했던 타임즈의 친구가 (벽 칠하던 날) 내가 무섭느냐고 물었을 때 "아니 나 너 안 두려운데"라고 대번에 대답했던 테레즈의 결기.

16. 테레즈가 잭과 찾아간 파티 이후 캐롤에게로 가기로 마음 먹었을 때. 캐롤이 앉아있던 식당에서의 위치와 테레즈의 시선이 트뤼포의 <부드러운 살결> 마지막 장면과 오버랩되서 순간 긴장되었다. 테레즈의 동선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샷도 없었어서 무언가 불안했는데 이어 미소 띄는 캐롤의 모습. 둘이 따라 나가서 포옹하는 것도 좋았겠지만 그러지 않고 개방된 공간에서 캐롤이 (내 세계로) '어서 와'하는 느낌의 반김 같아서 그 선택이 좋았다.

17. 전 남자친구가 여행 가기 전 테레즈에게 지금 그래서 헤어지기라도 하자는 거야? 라고 묻자 이런 식의 너와 내가 만날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고 답하던 그녀.

18. 캐롤과의 여행 이후 전화 한 통말고는 그녀를 찾아가거나 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일상을 구축하는데에 집중했던 테레즈

19. 그런데 여행 이후 다시 만난 자리에서 캐롤이 자기 밉냐고 묻자 '당신을 어떻게 미워하겠어요'라고 답하던 테레즈

20. 처음에 트리 사는 시장에서 자신을 사진 찍은 것을 나중에 '넌지시' 물어보던 캐롤. 이에 당황해하지 않고 '친구 말처럼 인간에 호감을 좀 가져보려고요'라며 대답하던 테레즈.

열거해놓고 보면 분명해지는게 연출자가 인물들을 대하는 숭고한 태도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요즘 같이 스스로가 그려내는 인물들이 뭐하는 지도 모르고 후려치듯 찍어내는 시대에 오랜만에 이런 작품을 만나니 오히려 낯설다. 설마 했는데 이게 <아임 낫 데어> 이후 근 7-8년만의 작품이더라. 토드 헤인즈 감독님 같은 분들이 오래 오래 영화 찍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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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밍량

책갈피 2016. 1. 4. 23:04

Things like plot and genre are concepts that I want to subvert, but I can’t just be “a lone flower admiring itself” [i.e., take pleasure in work only by myself]. I want to be seen. That’s why I create constantly. The goal is to increase the likelihood of being s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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