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rewind 2014. 12. 27. 22:36

 친구의 결혼식을 보고 다같이 어렵게 모인 자리를 애-써 뒤로 한채 집으로 돌아왔다. 식을 올리기 며칠 전 청첩장을 주고자 만났던 그녀는 집에 자기보다 큰 냉장고가 오늘 들어왔는데 그걸 앞에 두고 어찌할 바 몰랐더라는 이야기를 조근조근 내뱉었었다. 아직 살림살이가 채 모두 들어오지 않은 그 방에 새하얗고 작은 언니와 냉장고의 모습을 나란히 그려보는데 그게 참 낯설지만 설레고 좋았다. 모두가 입 모아 말했던 것처럼 정말 이 사람만은 행복했으면 좋겠다 싶은게 그녀였다. 그녀를 닮아서인지 모여든 친구들 모두가 어여쁜 미소들을 흘려댔고 아침 댓바람부터 몸살 기운에 악몽을 내리 꿨던 것도 잊을 수 있었다. 결혼한 이들이 신랑 신부를 데려다놓고 함께 얘기하는 유부 토크라는 재미난 자리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분의 말이 참 기억에 남는다.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혼자 있고 싶은게 당연한거다. 결혼이 좋을 때는 참 좋은 거고.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말고 편하게 그 흐름을 따라라'와 같은 맥락의 이야기였다. 잘 살고 싶어진다.

 31일이 마감 기한인 일을 마치기 위해서 터덜터덜 뾰루퉁해진 채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만원 전철인 분당선에 몸을 밀어 넣었는데 무리해서 타려고 했던 어느 승객의 손목이 문 사이에 낄뻔 하여 그것을 붙들고 한참을 있었다. 주머니에 넣었던 양손을 빼낼 틈도 없이 그대로 인산인해에 갇혀버렸는데 순간 머릿속으로 이 생각이 지나갔다. '아. 이런게 너무 힘들고 싫어서 직장을 그만둔거였는데...' 그런데 여전히 어려움은 지속된다. 운이 좋게도 일거리는 끊이지 않고 들어오지만 생활의 균형을 잡는데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이 균형은 줄곧 위태위태할 것이다. 그치만 분명 좋은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것을 감수하는 것일테지. 지금 이 시간에는 집에 돌아가 일을 해야겠지만 이를테면 오후 3-4시 사이에 해지는 시각 길을 걸을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누리고 있지 않나. 나이 들어가며 알겠지만 모든걸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없다. 다만 내 스스로 선택을 함으로 최대한의 군말들을 아낄 뿐이다. 

선택인 것을 진짜 믿을 수 있게 되면 괜한 짓이 줄어들고, 지금에 감사하게 되고, 그러면 가깝고 편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집중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요즘 이 말만치 내게 확신을 가져다주는 것도 없다. 물론 믿기까지 군말들은 여전히 다닥다닥 달라붙는다만.

만원 지하철에 기가 모두 빨려나가기 직전 내릴 준비를 하며 왼쪽 문으로 몸의 방향을 틀었는데 등쪽으로 누군가의 손길을 느껴졌다. 어느 아주머니가 "내릴거에요?"라고 물으며 몸을 들이미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네. 그런데 만지지 말아주세요"라고 굉장히 힘없지만 분명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나도 깜짝 놀랐고 아주머니도 놀란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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