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 마지막 날

rewind 2014. 6. 5. 20:21
Grand Palace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광장이 하나 나온다. 여기에서는 그 어떤 것을 비싸게 팔아도 사람들 그러니까 관광객들이 주저 없이 지갑을 열 것만 같다. 기회가 된다면 여기서 반짝 시즌으로 팥빙수를 팔아보고 싶다.

가게의 이름은 모르겠지만 레페 한 잔을 주문하고 30초도 되지 않아 황금빛을 띈 무언가가 잔에 담겨 나온다. 4,80유로로 역시 한 잔은 턱도 없다. 한 두입 마셨더니 이미 잔은 바닥을 드러냈고 옆 테이블의 부부로 추정되는 이들은 정말 한 두 입씩 홀짝홀짝 맛을 보나보다. 그래도 잔을 비운채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나도 눈치껏 남겨두었던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켰다. 햇볕에 미지근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목넘김은 도리어 더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끝맛이 약간 초콜렛 향이 난다. 바삐 움직이는 웨이터들을 보며 서울에 돌아가면 술이나 음식을 파는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1년간 책상 머리 앞에 앉아 컴퓨터로 눈을 혹사시켰기 때문에 이번에는 몸을 좀 움직여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맥스 가게에서 한 달간 일했던 경험을 떠올려보건데 다리는 좀 아팠을지언정 늘 멀찌감치 떨어져 사람들 바라보기를 좋아했었다. 문득 함께 스치는 생각이건대 나는 항상 사람들 지켜보기를 즐겼던 거 같다. 공연이나 어느 술자리에 가도 늘 반쯤 뒤로 물러서있는 느낌이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여튼 몸을 좀 바쁘게 움직여보고싶다. 당시엔 영어를 그나마 좀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외국인 손님만 오면 내가 나서곤 했으며 운이 좋으면 팁을 받기도 했었더란다. 아까 남은 돈을 팁으로 넘기지 않고 일일이 세어 지갑에 고이 넣은게 조금 죄송했지만 웨이터가 잔을 비운 이에게 자리를 비켜달라는 식의 얘기를 하는 듯 하다. 그래도 마지막 날이니 호사스럽게 감자튀김에 커리 케챱을 찍어 먹으러가야겠다. 그래. 결국 돈이지 뭐... 돈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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