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중반부

rewind 2014. 5. 22.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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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uxhall bridge에서 길을 헤매는 동안 흡사 해운대 신시가지 일대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순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내게 런던은 이런 곳이야 아니 이래야해라는 생각이 들어와있던 것일까. 하늘을 치고 올라오는 빌딩들을 보지 않아 좋았던 도시였는데 꿈틀거리는 이 도시의 미래의 안위까지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오지랖. 서울은 그러니까 한국은 지금 2014년의 시간을 통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까. 상상하기 무서울 정도다. 어제는 페이스북에 어떤 여자의 옷차림을 두고 비난과 조롱을 퍼붇는 댓글과 좋아요 갯수가 수 만개를 넘었다. 그냥 청바지에 날개 모양 스티치가 붙어있었고 그저 타이트한 스키니진이었을뿐. 런던 어디에서도 누군가의 옷차림이나 행색을 두고 신경 쓰는 걸 못 봤기 때문에 그런 한국의 병적인 태도들이 더욱 끔찍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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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발 딛고 있는 이 도시를 온 몸으로 체감하려고 했던 것인지 신기하게도 지난 며칠간 익숙했던 한국에서의 모습들이 거의 떠오르지 않았다. 처음부터 난 친숙한 부모란 사람들도 없이 온전히 여기에 존재해 살아왔던 것처럼. 힘들었던 것들도 생각나지 않고 그렇게 1년 만에 꼬박 7-8시간을 자며 평균적으로 행복한 일상을 살았다.

볕드는 버스 2층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어제부터 시작된 생리에 통증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항상 극심한 생리통으로 고생하는 우리 모녀이기 때문에 순간 이 사실을 엄마에게 가장 먼저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는 지금 핸드폰을 정지해 와이파이만이 가능한 상태고 엄마는 인터넷이 되지 않는 핸드폰을 사용 중이다. 떠나기 이틀 전에야 비로소 이메일 계정을 만들어주고 컴퓨터를 끄고 켜는 것 정도만 알려드리고 왔지만 확신할 수 없다. 이따금 동네 단짝 친구가 내가 카톡으로 보낸 사진을 멀티메일 문자를 통해 받는 것 정도로 내 생사를 확인하실 터. 갑자기 엄마의 얼굴과 집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겉잡을 수 없는 것들이 몰려들었다. 혹시나라도 전화 할 기회가 생겨 엄마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나와 이 엄마는 주책없이 누가 죽기라도 한 마냥 울음과 그리움을 쏟아낼 것이다. 잔뜩 어지럽혀져 있는 방 안에 이따금 밤이 되서나 어슬렁거리던 큰 덩치의 딸내미 하나가 부산영화제보다 더 멀고 긴 여행을 떠났으니 지금 정도면 허전함 이상의 것들이 그녀를 찾았을 지도 모르겠다. 투어 버스에 몸을 싣고 도심 곳곳을 촬영하는 무리를 건너편 시야에 둔 채 2층 버스에서 혼자 조용히 썬글라스를 끼고 훌쩍거렸다. 너무 갑작스런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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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그런 삶을 사는 건 아닐테지만 이 여행에서 나는 어떤 행복한 가정들의 표상을 그려본다. 면면이 살펴보기로는 여행자의 시선에 비춘 그들은 명절에 다같이 모여 칠면조를 구워 먹고 난 뒤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올이 잘 풀리지 않는 스웨터를 입고 하하호호. 부모에 대한 예의를 지켜나가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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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들 중 하나는 내셔널 갤러리에서 방마다 "No photography!"하며 지키고 있는 사람들. 빛이 움직일 때마다 그림들이 제각기 다른 모양새를 띄게 되는데 어떤 그림은 너무도 선명해서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속이 메스꺼워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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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uxhall bridge에서 찬바람 얼굴로 맞아가며 길을 헤맸던 건 1800년대에 지어진 배터씨독스 앤 캣츠 홈 보호소를 찾아가기 위한 여정이었다. 이 곳은 대부분 대형견들을 주로 키우는데 공원이 곳곳에 자리해있으니 전철과 같은 대중교통에 케이지 없이 탑승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많이 크지 않고 털 안 빠지는 브랜드의 개를 원해요"라고 묻던 한국을 생각하니 또 한 번 갑갑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환경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퇴근 후 나를 허전하지 않게 반기거나 기다려 줄 장식물을 집 안에 꽁꽁 숨겨 놓는게 아니라 언제든 맘 먹고 산책 나가려하지 않아도 거주지 일대에 그런 공간이 놓여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광활한 리젠트 파크에서 지나가던 개를 보고 반기며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본 것도 굉장히 인상에 남는다. 우리는 그들을 보살 필 기회를 얻었으면 모든 책임감을 다하되 그만큼 의사를 존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모든걸 통제 하에 두어야 한다는 그 얄팍한 지식과 생각들은 내려두자. 다 마음으로 통하기 마련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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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명 오빠의 부탁으로 모즈 커틀링을 찾으러 캠든 타운으로 향했다. 어차피 핀 뱃지 하나 사기 위해 찾아가려던 참이긴 했지만 뭔가 임무를 부여 받으니 기행이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캠든 타운을 속속들이 다 뒤져 모즈 파더를 찾아냈지만 그는 Curnerby street?에 가보라고 조언해주었다. oi 모시기 하는 가게를 또 찾았으나 문을 닫아서 결국 모즈 파더 아저씨가 알려준 대로 그 힌트 하나만 가진 채로 무작정 찾아나서 face라는 문 닫은 모즈 가게를 하나 또 지나 마침내 찾은 sherllys!! 그런데 알고보니 이 곳은 마침 폴 웰러가 단골이라는 성지였었다.... 우리나라 중년배 가수가 음식 가게 찾아가서 사인 한 번 해주고 걸어 놓는 것마냥 그랬는지는 몰라도 관광객인 나야 뭐 별 수 있나. 순간 흥분해서는 나 폴 웰러 겁나 좋아한다며 아저씨에게 묻지도 않은 말들을 줄줄줄 쏟아냈다. 그리고는 커틀링을 발견하자마자 i've been looking for this all day long이라며 시가도 모른 채 무작정 거금을 털어 구입. 그래. 심부름이니까..하며 감격에 겨워 집으로 돌아왔지만 얼씨구.. 오빠가 찾았던 것은 커틀링 이미지이긴 했지만 그냥 모즈 핀 뱃지였던 것. 결국 그 다음날 찾아갔더니 환불이 안된다고 해서 결국 45유로 가까이를 모두 핀뱃지로 바꿔야만 했다. Small Faces같은 헤어 스타일을 하고 어벙벙하게 있던 알바생과 사장님.. 저의 실수와 변덕에도 끝까지 미소 잃지 않아주셔서 감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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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 생각해보니 10시간을 가까이 걸어다녔다. 애비로드에서 비를 흠씬 쳐맞고 포르토벨로마켓으로 피신했다가 거기서만 왕복 2시간을 돌아다닌 듯 하다. 준명 오빠가 바버 쟈켓 꼭 사라는 말 한 마디를 던져두어 보는 것마다 눈독을 들였지만 결국 참고 참다가 브릭레인 마켓에서 그 다음 날엔가 샀다.

애비로드도 그렇고 유명하다 싶은 곳들을 우연히 혹은 부러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놀랍고도 그렇지 않은 사실은 그저 누군가가 살아가는 곳들이라는 것. 이미지에 현혹되어 내가 만들고 상상해온 아우라라는 것은 그 곳에 없다는 이야기다. 카메라를 챙겨왔음에도 불구하고 떠나기 전 날에서야 꺼내든 것은 그 때문이기도 하다. 나와 함께 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 그 곳을 어떠한 애정의 시선으로 닮을 수 있을리는 만무. 볼 것들이야 많지만 사실 아이폰으로 찍는 것들은 대게 기억을 소환해내기 위한 지표에 불과하지 한국에 있던 것처럼 마음을 다해 찍는 사진은 거의 없다. 몇 년만에 이렇게 사진 찍는 것이 아무 감흥 없기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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