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calling

rewind 2014. 5. 15. 01:04
새벽까지 짐을 싸면서도 엄마에게 '나 정말 가는 것이냐'고 물었듯 공항에서도 내내 그 말을 떨쳐내지 못했다. 더 이상 무슨 증명을 원했던 것일까. 평생의 숙원이었는데 왜 이리 설렘조차 없는 건지 스스로가 야속했다. 친구들이 너도 나도 정말 가는 거냐며 분위기를 몰아주는 와중에도 얼떨떨한 당혹스러움에 '응 그런가봐'로 대충 무마하곤 했다. 좋겠다고 부러움을 표하는 이들 앞에서는 나도 그만큼이나 명확한 감정이 있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사실 더 이상 깊이 생각하기 시작하면 또 청승맞게 울컥할 것이 뻔했음으로 더 집요한 고민들이 달려들기 전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떠나는 것 같은 모양새를 만들어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가늠할 수는 없지만 '2개월'의 시간은 분명 내게 엄청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출국 몇 시간을 앞두고서야 대체 왜 이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그 곳까지 가는 걸까하는 별별 생각들이 다 들었다. 내 안의 아빠가 고개를 든 모양. 아빠는 이 여행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출국 전 날까지도 정말 가는 거냐고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엔 '잘 다녀오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참 흥미로운 부모를 두고 있다. 이 여행의 시초는 사실 루프트한자 메일링을 받고 있던 내가 '유럽 특가'라는 홍보 문구를 보고 엄마에게 이런게 있다며 말 한마디를 던진 데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참으로 쿨하게 '그럼 가봐'라는 말 한마디로 딸을 움직이게 한 것. 내 평생에 외국 가서 영어를 써보는게 소원이었던지라 초등학교 때부터 알아 듣지도 못하는 영어 동화 테이프를 따라 들으며 외계어를 중얼거리곤 했었다. 어릴 때의 나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와 기호, 특징, 행동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했었다. 그 중에 하나가 브라운관 픽셀을 이쑤시개로 세고 논다거나 등교하는 길 보이는 사람들마다 그 사람의 영혼이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해보는 일 따위들이었다. 아무래도 외동이었고 나는 고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집에서 인형을 가지고 놀거나 엄마가 빌려다주시는 비디오가게 테이프들을 보는 일상이 전부였다. 그 때의 나는 참 연약했었다. 할 수 있다면 지금의 내가 지켜줄텐데.

갈증을 해소하듯 영화를 찾는 것은 이미지 자체에 대한 매혹도 있겠고 여러 복잡다단한 감흥들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내가 도착하지 못한 시간, 공간,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라도 스스로를 어느 시간과 공간에 내던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어떻게든 고질적인 반복을 끊고 삶을 흔들어보겠다고 직장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정들을 내쳐버리지 않았었나. 가능하다면 내쳤다기보다는 함께 안고 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안에서 얻었던 귀중한 시간과 사람들은 지금의 나를 있게 했기 때문에. (눈물 없이는 쓸 수 없는 글이다. 맥주를 마시는데 눈으로 나오고 있다. 나는 칼스버그를 잘 마시지 않는데 처음에는 맹맹한 물 같더니 지금 이게 눈으로 나오고 있다.) '순환'의 힘을 믿는다. 지치지 않고 줄곧 내가 믿고 지지하는 것들에 대해 힘껏 목소리를 실어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혹시나 그런 내 마음을 엿보기나 한건지 공항으로 마중을 나와 준 혜민은 탑승 수속 몇 시간 전까지 내내 옆에서 어린 아이들처럼 장난을 걸어주었다. 어떤 때는 굉장히 진중하고 어떤 때는 정말 철없는 아이들처럼 노는 이 친구와의 균형은 참 흥미롭다. 항상 서로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런 듯한데 아무래도 이 친구와 함께 있으면 내가 제법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점점 나를 지배해나가는 생각 중 하나는 아무래도 사람이란 스스로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상대를 향하는 법이다.

탑승 수속 3시간 전에 여유 있게 도착해 미처 하지 못했던 일을 하나 더 마무리해야만 했다. 공항 내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보험 회사를 찾아갔다. 데스크 너머 한 켠으로 프라다 백을 모셔 놓은 채 얼마 동안 가 있을 거냐는 질문을 이물난듯이 말하는 직원의 태도를 보았다. 아마 나와 같이 떠나는 이들을 이렇게 매일 같이 보며 그 무리에 하루 빨리 스스로를 합류 시키고 싶을 터. 세상에서 내가 하지 못할 일이 있다면 보고 싶은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동안 그 티켓을 팔고 있어야하는 처지가 되는 것인데 아마도 그 일이 그녀에겐 차마 할 만한 일이 못되는 듯 했다.

기내에서는 옆에 앉은 두 아저씨의 눈치를 보느라 7시간동안 기적적으로 화장실을 참았던 것을 제외하면 모든게 좋았다. 순전히 내 입장에서만 생각해보자면 나는 비건으로 특별 기내식을 신청했기 때문에 남들이 물기 없는 음식을 먹을 때 '과일'을 먹었다. 남이 무엇을 먹었건 관심이 없다하더라도 간식으로 나온 '치킨랩'을 나는 안 먹는다며 순순히 건네주었으면 '이보게 내가 궂이 window seat을 고집한 데에는 화장실을 가기 어렵다는 것쯤은 감수한 건 맞지만 그 치킨랩 하나 더 입에 물거든 이따가 알아서 내게 눈치껏 기회를 좀 주겠나. 당신도 밥 먹고 나면 화장실 가고 싶을 거 아니냐'

(* 첫번째 기내식은 커리, 두번째는 가지인지 쥬키니인지 가늠 안가는 채소를 쪄서 토마토 소스를 베이스로 한 것 같은데 샐러리와 피망이 섞여있는 샐러드와 함께 먹음. 이 맛 잊고 싶지 않아서 생각날 때마다 떠올리는데 승무원에게 재료 물어본다는 걸 깜빡.)

이렇게 알아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치킨랩은 사실 승무원의 실수로 내게 주어진 것이었고 나는 그냥 그것을 넘겨버릴 수도 있었거늘. window seat을 점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히드로 공항에 착륙할 때 고개를 빼꼼 내밀던 순간 나는 창문 뷰를 다 가리지 않고 슬쩍 옆으로 비켜주는 (당연한) 센스까지 보여줬었음. 좌석에 붙은 모니터 다루는 것도 모르길래 도와주려 했더니 내치질 않나. 그래 그건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화장실'은 나와 모두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염병할.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젠틀한 영국 신사들을 만나기 이전 극명한 대조를 위해 겪은 환난이라고 생각해버리겠다. 무궁화호로 5-6시간 밤샘 부산행 기차를 타며 영화제를 다녔던 걸로 단련이 되있었던 건지는 몰라도 '폐쇄 공포'에 대한 걱정이 앞섰던 11시간의 비행은 제법 이렇게 무난했다(?) 아시아나 항공에서 제공하는 콘텐츠에는 무려 산울림, Janis Joplin, The Clash, WHAM 등이 있었다. 나는 mp3로 알아서 챙겨갔지만 지난해 제주 여행 떄 처음 경험한 이륙이 너무도 불안했기에 The Clash의 'Complete Control'을 볼륨 높여 들으니 모든게 짜릿했다. 그냥 순간 증발해버리고 싶었을 정도였음.

( * 대부분의 친구들이 내가 직항 비행기를 타고 간다는 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이 예약은 3개월 전에 이루어졌고 이미 당시엔 5월 초 황금 연휴로 인해 러시아 공항에서 숙박해야 할 지도 모르는 33시간의 경유 비행기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 며칠 안되는 연휴 동안 모두 다 유럽을 간다니. 참 가늠할 수 없는 나와 당신들의 빈부격차여. 여튼 나는 1년 벌은 돈을 모두 탈탈 털어 간다. 가는게 신기하지)

바깥 창문으로 보이는 대륙의 표면들을 면면이 넋놓고 보는데 새삼 내가 발 딛고 살아온 곳은 정말 일부에 불과하구나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나는 이 느낌에 다가서기 위해 항상 마음 속으로 보이지 않는 도표를 그려왔었다.

아마 중국으로 추정되는 곳은 용맹한 호랑이의 등줄기처럼 모양새가 우렁찼고 거침 없었다. 영국 전까지의 대륙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는 곳들인듯 구획이 신기하리만치 나뉘어있었는데 사람들이 삶을 구성하고 건축해나간다는 것이 정말 경이롭게 다가왔다. 영국에 도착하면서는 그 감흥이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는데 정갈하게 나뉘어 있는 구획들을 보며 서로의 삶을 정말 존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만큼의 정원을 가질테니 너도 이만큼 가지도록 해." 아니면 정말 신경쓰지 않고 각자의 삶에 집중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국외라고 해서 빈익빈 부익부가 없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은 하지 않지만 보여진 바에 의해서만 판단되기로는 그랬다. 좁은 땅 덩어리에 빼곡히 고개를 들고 올라서는 빌딩들을 보며 느꼈던 답답함에 비해 그것들이 훨씬 나은 생활을 가능하게 만들 것이라 생각했다.

긴 비행을 마치고 입국 수속을 하러 나가는 데 아시아나 항공기에 꽉 들어차있던 한국인 몇 다스와 외국인들 소수가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다. 심사하는 분 앞에 줄을 서있는데 이건 마치 텔레비전에서나 보아온 파주 영어마을의 한 풍경같다고나 해야할까.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며 그는 '너희는 우리 때보다 훨씬 좋아진 거야. 크크크'라는 식의 인사인지 농담인지를 혼잣말로 중얼거렸는데 나는 알아듣지 못했고 '너 여기에 무엇 하러 왔니'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하지 속으로 열 댓개의 대답을 상상했던 데에 비해 약간의 서운함만을 남겨주었다.

여튼 상상했던 것보다 거대하지 않은 히드로 공항의 모습에 또 한 번 놀랐다. 영화 <터미널>의 배경이 이 곳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가장 근접한 바로는 그와 같은 것이었는데 터미널과 전철로 이어지는 통로로 나가는 중에도 그저 '코스트코'와 유사한 모습을 떠올렸다. 내내 지금 내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거지하는 생각에 킬킬킬 웃어대며 열심히 이 곳 저 곳으로 시선을 돌려댔다. 수화물을 찾는 데에만 3-40분의 시간이 걸렸고 나머지 1시간 정도는 길을 헤매는 데에 보냈다. 아무런 걱정도 앞서지 않았고 그냥 그 모든 낯선 상황들이 재밌었다. 우선 가장 먼저 내게 말을 걸어준 보라색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 언니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엘레베이터를 잡아줬던 그 잘생긴 남자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2번인가 같은 엘레베이터를 오르락 내리락했는데 그 때마다 엘레베이터를 홀딩하며 기다려주었더니 두 노부부가 고맙다며 세상에서 가장 포근해보이는 인사들을 건내주었다. 순간 여기 와서 엘레베이터 걸이나 하고 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3초 정도 해보았다.

궂이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보겠다고 갖은 애를 다 쓴 것은 효진과의 대화에서 떠올렸던 제주 공항에서 3시간 버스를 타고 강정으로 갔던 기억이 올라왔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결국은 UNDERGROUND를 타기로 했다. 오이스터 카드를 충전해주던 역무원 아저씨는 '여기에 싸인이나 해'라며 창구 사이로 펜과 영수증을 던지다시피 했는데 그마저도 불쾌하지 않고 그냥 순순히 응했다고 하면 지나친 여행자로서의 긍정의 힘이었던 걸까. (결국 마지막 날 지하철역에서는 역무원의 그 대수롭지 않은 태도에 살짝 열이 받았지만 뭐 그 날은 비를 흠뻑 맞았었기 때문에 동등한 상황이라고 보기 힘듬으로 패스.)

to be continued (i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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