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

rewind 2014. 2. 6. 01:06

 이미 죽었을지도 모를 애들의 우는 소리를 온종일 귓방망이 맞으면서 그 날 정신없이 구겨 넣은 저녁을 새벽녘에 모조리 쏟아냈다. 토한게 아니라 그냥 정말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았는데 쏟아져 나왔다. 연휴 중 이미 어떤 일들이 진행될 것이라는 얘기를 전해 들은 이후로 신경이 계속 곤두서있었는데 아직 내 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가보다했다. 그래도 크게 호되게 당한 바가 있으니 이 상태로는 술을 안 마시는게 그나마 다행인가 싶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 역시나 또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강제 수용되는 전철에 몸을 밀어 넣었다. 전 정거장 차가 출발하지 않아 딜레이가 계속 되면서 점점 공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때 문 앞에 있던 어떤 젊은 여자가 적막을 깨뜨렸다. 119 좀 불러주세요. 앞이 갑자기 안 보여요. 이러기를 반복하는 거다. 어지러움증을 동반한게 아니라 꼿꼿이 선 채로 분명하게 그렇게 말하는데 나를 비롯해 사람들은 어리둥절. 여자가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데 다들 어찌할 줄을 몰랐다. 한 할머니가 여기서 그러면 119가 못 오지 않느냐며 손을 붙잡고 전철 밖으로 여자를 데리고 나갔다. 역무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 여자를 붙잡고 전화를 거는 듯 하더니 전철 문이 굳게 닫혔다. 밖에 있던 할머니가 에구머니나 하는 사이 전철 문은 다시 열렸고 그녀는 동행인에게 돌아오더니 못 탈뻔 했다며 안도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순간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갈듯이 패닉이 오면서 구토가 쏠리고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지금 막 출발했으면 다음 역까지 적어도 1-2분은 가야 하는데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죽어버릴 거 같았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겨우 다음역에 내리니 찬 바람이 불어 오한이 느껴졌고 화장실까지 어떻게 갔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한참을 헛구역질 해대다가 다시 용기를 내 어떻게든 출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전철을 다시 탔는데 이번에는 더 악화되는 거다. 또 다음 역에 내려 주저 앉은 채로 인파가 어서 계단을 모두 내려가 사라져버리기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역 내 화장실에 가 헛구역질에 설사를 해댄뒤 상사에게 늦어질거 같다고 양해의 문자를 보냈다.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기도 했고 이미 나는 겨우 2정거장을 오느라 1시간을 늦은 상태인데 그러면 연차가 사라지는 건가하는 생각들이 나를 집어 삼켜버릴 듯 했다. 다행이 시간이 지날 수록 괜찮아졌지만 그 다음날 출근길에선 양손을 꼼짝 할 수 없는 상태로 압박이 되어선 백발의 할아버지가 사람들이 비켜주지 않아 문을 앞에 두고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또 종일 악몽 같은 작업들을 했고 간밤 꿈에 음식물 쓰레기와 함께 개의 시체가 방에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나왔다. 상사는 이런 식으로 전체 업무에 지장을 주는데 내게 진단을 받아봐야하지 않겠느냐며 이번 사건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며칠 푹 쉬어보라고 했다. 사실 이 일이 어떤 식으로든 장기적으로 볼 일인데 마무리라니. 끝이 안 보이는 그 긴긴 어둠과 반복되는 악몽을 생각하니 숨이 막혀버릴거 같다. 머리를 왼쪽으로 기울이면 혈관이 끊어지는 고통이 느껴진다. 중요한건 마음가짐이라고 자꾸 괜찮다고 나를 쓰다듬어줘야하는데 도저히 일상의 환기가 안된다. 내가 왜 이렇게 나약한 인간인가에 대해 자책하는 와중에 또 머리카락을 열댓개 뜯은거 같다. 좋은 것들이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돌아볼 힘마저 안 남아있는 겨울이다. 언제나 그랬듯 날씨가 풀리면 모든게 괜찮아질 것이라 말해주고 싶다. 이렇게 문장들로 풀어내 읽다보면 내 처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들이 생기게 될까 싶어 자꾸 손을 바삐 움직인다. 어떤 면으로는 굉장히 낙천적이다 못해 될대로 되라는 식의 마인드를 가진 나이기 때문에 크게 안 좋은 기운에 빠져드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 반복되는 일과 악순환을 어떻게든 내 힘으로 끊어버리거나 다른 기운으로부터 몰아내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지금 바로 자리에 누우면 6시간은 잘 수 있을텐데 부디 푹 아무 걱정 없이 잠에 빠져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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