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rewind | 40 ARTICLE FOUND

  1. 2014.06.08 여름 시작! 2
  2. 2014.06.05 브뤼셀 마지막 날
  3. 2014.06.04 벨기에 비에르 만만세
  4. 2014.05.28 부모와의 통화
  5. 2014.05.22 런던의 중반부
  6. 2014.05.22 님포매니악
  7. 2014.05.15 London calling 1
  8. 2014.03.01 제주, 그곶
  9. 2014.02.06 환기
  10. 2013.12.07 할머니 보고싶다

여름 시작!

rewind 2014. 6. 8. 08:39
파리는 어제부터 갑자기 20도가 넘으며 늦더위가 시작되었다. 물 사먹는게 돈 아깝다고 생각되어 기를 쓰고 끓여 마시는데 사실 이상하게 하루에 한 잔 마시기도 어렵다. 전철 고장으로 20분간 사람들 북새통 사이에 앉아있는데 머리가 빙빙 돌아 아 아무래도 물을 안 마셔서 더위를 먹은 모양인가보다라고 생각되어 오늘은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서 물을 한 사발 끓여 마시기로 한다.

사실 화장실 갈 때 돈을 지불해야한다거니 위급한 상황에 도심에서 발견하기 어렵다는 사실과 영화를 보는 동안 마려워하면 안된다는 게 더욱 이상한 쪽으로 강박 관념을 만들어버렸다.

그러고 나서 상태가 조금 호전되어 심야 영화로 <The Rover>를 보러 나갔다. 워낙 천천히 진행되는 서사 탓에 중도에 나가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는데 기다림이 필요한 영화다. 이 두 배우가 대체 연기를 하고 있는 건가 싶다가 로버트 패틴슨의 호주 억양 영어를 듣고 있노라면.... 불어 자막에 간간이 나오는 단어들만으로 상황을 유추할 때도 더러 있었다. 그만큼 알아듣기가 너무 어려웠음. 며칠 전에 포럼 데 이마주에서 호주 영화 한 편 봤다가 정말 패닉;;

중후반부 두 배우의 마스크, 표정을 쉽게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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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 마지막 날

rewind 2014. 6. 5. 20:21
Grand Palace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광장이 하나 나온다. 여기에서는 그 어떤 것을 비싸게 팔아도 사람들 그러니까 관광객들이 주저 없이 지갑을 열 것만 같다. 기회가 된다면 여기서 반짝 시즌으로 팥빙수를 팔아보고 싶다.

가게의 이름은 모르겠지만 레페 한 잔을 주문하고 30초도 되지 않아 황금빛을 띈 무언가가 잔에 담겨 나온다. 4,80유로로 역시 한 잔은 턱도 없다. 한 두입 마셨더니 이미 잔은 바닥을 드러냈고 옆 테이블의 부부로 추정되는 이들은 정말 한 두 입씩 홀짝홀짝 맛을 보나보다. 그래도 잔을 비운채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나도 눈치껏 남겨두었던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켰다. 햇볕에 미지근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목넘김은 도리어 더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끝맛이 약간 초콜렛 향이 난다. 바삐 움직이는 웨이터들을 보며 서울에 돌아가면 술이나 음식을 파는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1년간 책상 머리 앞에 앉아 컴퓨터로 눈을 혹사시켰기 때문에 이번에는 몸을 좀 움직여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맥스 가게에서 한 달간 일했던 경험을 떠올려보건데 다리는 좀 아팠을지언정 늘 멀찌감치 떨어져 사람들 바라보기를 좋아했었다. 문득 함께 스치는 생각이건대 나는 항상 사람들 지켜보기를 즐겼던 거 같다. 공연이나 어느 술자리에 가도 늘 반쯤 뒤로 물러서있는 느낌이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여튼 몸을 좀 바쁘게 움직여보고싶다. 당시엔 영어를 그나마 좀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외국인 손님만 오면 내가 나서곤 했으며 운이 좋으면 팁을 받기도 했었더란다. 아까 남은 돈을 팁으로 넘기지 않고 일일이 세어 지갑에 고이 넣은게 조금 죄송했지만 웨이터가 잔을 비운 이에게 자리를 비켜달라는 식의 얘기를 하는 듯 하다. 그래도 마지막 날이니 호사스럽게 감자튀김에 커리 케챱을 찍어 먹으러가야겠다. 그래. 결국 돈이지 뭐... 돈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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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숙소에서 곧장 직진하여 왕복 2시간을 산책하고자 했다. 10시 즈음부터 해서 어두워지니 그 정도면 꽤 괜찮은 산책이 될 거 같았다. 기왕이면 길목에서 괜찮은 공원 하나가 나타나주기를 바랐지만 강둑을 지나 올라가니 보이는 것은 오로지 공장으로 추정되는 것들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곳은 오후 9시였고 해가 지는 시간이었으며 사람들은 길에 없었다. 서울에서의 9시라면 사람들은 퇴근 중이거나 혹은 야근 그것도 아니면 집이나 술집 어딘가에 속속들이 넘쳐났어야 했다.

런던에서 이 곳으로 넘어오는 중에 시차가 바뀌면서 '1시간'을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소도시인 이 곳에서의 시간은 조금 다르게 간다. 친구들과 술 한 잔 나누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간 데 없고 오로지 혼자 맥주를 홀짝이며 해가 지는 것을 기다린다. 마트에서 라쇼페가 2천원도 채 안되는 것을 발견하고는 자축하는 마음으로 한 병을 사왔지만 숙소에서 내내 뚜껑을 따기 위해 별 수를 다 쓰다가 결국 거품만 축내고 흘린 맥주들만 닦아내야했다. 뚜껑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작년 여름 경민이 엄마와 함께 나눠 마시라며 사준 라쇼페가 생각난다. 여기 함께 왔다면 매일 같이 서로의 병을 따주며 건배를 외쳤을텐데 하는 생각들이 들면서 왜 나는 병따개를 가져오지 않았나 싶다.

혼성 4인실인 이 곳에서 친절한 미소를 지닌 프랑스인 클레어와 싱가폴에서 태어나 얼마 전 호주에서 학교를 마치고 졸업 여행을 왔다는 남자를 만났다. 티모시인가 팀 모시기였는데 이름을 적어둘걸 그랬다. 적어놓고 보니 티모시와 팀 모시기 두 이름의 모양새가 꽤 닮아있다. 여튼 그처럼 젠틀한 남자를 만나본 것도 참 간만이라 꽤나 한참 영어로 대화를 나누며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했다. 나는 런던에서 이 곳으로 날아왔지만 그는 곧 암스테르담인가를 들렸다가 그리로 갈 것이라 했다. 같은 2개월의 기한이지만 여기서 누구든 내 여행 일정과 경로에 대해 들으면 놀라는 눈치다. 대부분 열심히 빠릿하게 유럽 군데 군데를 둘러다니는 편인데 비해 나는 오로지 3군데 그것도 파리에만 1개월 반을 머물기 때문이다. 이래서 3개월 남미 여행을 다녀온 상희님이 그것도 턱없이 짧을 것이라 하신 모양이다. 런던에서는 10여일간 하루 온종일 걸어다니며 구미를 당기는 것들에 눈을 열심히 굴리고 다녔다면 여기 브뤼셀은 잠시 방학을 보내고 있는 기분이다. 휴가가 아닌 방학. 런던 호스텔에서는 조식을 먹기 위해서라도 매일 7-8시에 꼬박 일어나곤 했는데 여기 온 뒤로는 10-11시가 되어서나 슬그머니 일어나 침대 위에서 깜빠뉴에 감자샐러드를 발라 우걱우걱 먹어댄다. 깜빠뉴 한 덩어리를 4, 5일에 걸쳐 먹었더니 식비가 꽤나 많이 절감되었다. 대신 더 많은 맥주를 마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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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 시내 중심에는 유서 깊은 성당 같은 건물들이 제법 있다. 누구든 도서관처럼 쉽게 드나들 수 있는데 런던에서도 보았던 것처럼 어디까지나 자율 기부인지라 그냥 놓여진 통에 최소한의 예의만 보이면 된다. 그 중에 하나를 클레망틴과 만난 날 처음 들어갔었다. (클레망틴은 아는 지인의 지인의 딸로 소개를 받아 이 날 잠시 동네 투어에 동행해주었고 여름에 한국에 놀러온다고 하여 그 때는 내가 가이드가 되어줄 참이다.)

"I don't know how to describe this. but the place has a power for sure. it just makes me really calm."

그녀와 헤어지고서 몇 시간 뒤 다시 찾았었는데 다른 이들이 모두 건축물에 감탄하며 스테인글라스와 동상들의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을 때 나는 거기에 앉아 시네마테크 책자를 보다가 졸고 있었다. 어느 곳에 가던지 돈을 지불해야 하는 이 유럽 한복판에서 공원이나 이런 공공재는 여행객인 내게 굉장한 안식처가 되어준다. 성스러운 곳에서 졸고 앉아 있었다니 그게 할 짓이냐고 누군가는 뭐라 할 지 모르나 모두가 셔터를 눌러대고 있을 때 가만히 그 모습을 응시하는 것 또한 다른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이 여행에서 새삼 신기하게 느끼는 것은 바로 '빛'인데 이게 장소에 따라 달라보이기도 하지만 어느 곳에나 있다는 점.

그리고 성당 앞에는 앉아서 다리를 뻗을 수 있는 모양의 의자가 여럿 놓여있다. 첫 날에는 텅텅 비어있더니 볕이 좋은 오늘 같은 날에는 다들 주위 벤치에 앉아있다가 빈 자리가 나면 바로 기회를 틈 타 그 곳에 몸을 뉘이곤 했다. 대부분 연인들이 한 자리를 비집고 앉아 두 몸을 포개고 있었는데 그 중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떤 할머니가 자리를 비키자마자 엉덩이를 붙인 남자 꼬마였다. 점심을 먹기 위해 그 앞 벤치에 앉으려던 찰나에 그 꼬마를 보았고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던 걸로 짐작하건대 닌텐도 정도나 만지작거리기 위해 자리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황급하게 음식을 밀어넣은 뒤 고개를 돌려보니 그 꼬마는 약 10분도 안되는 시간동안 그 의자에 앉아있다가 이내 일어서서는 자기가 앉아있던 의자를 핸드폰으로 촬영해가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감동 받고 말아서 처음에 의레 짐작해버렸던 내 생각이 부끄러워졌고 그 꼬마가 의자를 '기억'하는 모습이 참 예뻐보였다. 내가 10대 초반일 때에는 그러니까 초등학생 때 간 수련회가 생각이 난다. 당시에는 핸드폰은 물론이고 디지털 사진기가 보급되어 있지 않았던 지라 오늘의 꼬마가 기록한 방식과는 조금 달랐지만 나도 일종의 그런 '의식'을 가지곤 했었다. 이를테면 처음으로 집에서 멀리 떠나와 2박 3일간 지낸 수련회 숙소에 고별 인사를 전하는 식이었다. 모두가 짐을 챙겨 떠난뒤 비어있는 그 방에 그동안 고마웠다며 속으로 몇 번이고 방 번호를 읊조리곤 했었다. 그 방 번호를 잊지 않고 일기에 잘 적어두었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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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주는 한적한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곳에는 카메라 장비로 무장한 관광객들이 진을 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인터넷에서조차 찾을 수 없을 거 같은 호텔들이 의외의 장소에 위치해있는데 풍파 같은 삶을 살고 난 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이 곳에서 여생을 마감하면 좋을 거 같은 곳들도 더러 있다. 그리고 나는 인사동에서조차 상술이라는 것을 잘 믿지 않기 때문에 마켓들을 보고도 큰 감흥이 일지 않으며 가능한 카메라를 들지 않으려 한다. 조금 뽄새가 웃길 수도 있겠지만 옆에서 nothing else to do?라며 부인에게 질문을 건네는 남자의 말을 듣고 나서 더욱 나는 sightseeing, 관광이라는 말을 믿지 않게 된다;;

유럽의 화장실을 생각하면 조금 정내미가 떨어진다. 50센트?를 내고 화장실에 들어가 침묵 속에 자리를 지키며 돈 받고 있는 할머니는 빵을 드시고 나는 대변을 소화시키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순환'의 법칙인가... 그런데 또 의외의 일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내가 맥주잔을 들고 헬렐레 미소를 흘리면서 두번째로 화장실을 찾았을 때였다. 처음에 달갑지 않게 느껴졌던 화장실 지키미 할머니가 내게 그 주플리에 맥주 꽤 strong할텐데 너 맥주 좋아하니? 이러시는 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 저 많이 좋아해요 하며 볼일을 보고 나왔다. 그리고 세번째로 그 곳에 갔을 때 그녀는 조금 취한 내가 동전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지고 있는 모습 위로 손을 저으며 그냥 들어가라고 했다. 이렇게 정내미 없는 유럽 화장실과 나는 어느 정도 타협을 하는 것일까.

브리주 광장에서 파는 주플리에 쌩맥주는 정말 인생을 갖다 바칠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생음악들은 어떻고!

브리주 광장에서 신나게 취해 눈가를 적시고 있는 애미가 있다면 바로 나일 것이다. 노인네들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나는 3일도 더 지난 깜빠뉴를 뜯어대며 한 잔을 마쳤다. 노부부 사이에 걸쳐앉아 님포마니악의 조가 그랬듯 내 머리 위 그림자를 만들어주고있는 이 나무를 인생의 나무라고 여기리라했다. 오른쪽 할아버지는 이명세 감독님을 닮았다! 두 잔 째에 접어들며 광장에 춤추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노부부들을 보니 또 주책 맞게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는데 올려다보니 나무가 보인다. 가장 끝에 있는 잎사귀들은 빛을 받아 하얗고 밝은 연두빛을 띄고 있고 그 아래 다른 잎사귀들은 빛이 오기까지의 시간을 기다릴테다. 차근차근 하나 하나. 너도 나도. 모두 그렇게 빛을 기다린다.

눈감고 광장을 애워 싸고 있는 이 음악을 들으니 어렸을 적 오래된 삼촌 방에서 눈에 띄곤 했던 ybm 영어 테이프가 떠올랐다. 수 많은 기억 중에 그것을 떠올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디에선가 이 비슷한 선율을 떠올리면 이 날의 볕과 선명한 사람들, 바람이 떠오를까 하는 마음.

4유로 생맥주에는 망설임 없으면서 4유로 까르푸 샐러드 (for 저녁거리)에는 돈 쓰기 힘들어하는 불편한 진실. 3잔 째에 이르러 플라스틱 컵을 자꾸 새것으로 바꿔주려는 것이 내키지 않아 please use this one이라고 청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에게 가치가 있다 여겨지는 것들에 애정을 쏟아붓기 마련이다. 깜빠뉴 한 덩이를 3,4일간 감자샐러드를 발라 먹으며 연명한 나는 남은 모든 유로를 이 브리주 광장에서 쌩맥주를 마시는 데에 바쳐도 조금도 아깝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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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의 통화

rewind 2014. 5. 28. 05:20
오늘은 근 3주만에 2G 폰을 쓰는 부모와 전화 통화를 했다. 어김없이 길가 공중 전화에서 낯설고도 익은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손 쓸 새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부모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침착하였고 그 비싼 선글라스를 잃어버렸다고 하니 중요한 거 아닌거면 괜찮다고 나를 위로했다. 아니 그거 엄청 비싼 거였는데 중요한게 아니라고 그리 나를 감싸주다니.. 눈물이 막 더 나려고 해서 엄마에게 대략의 필요한(!) 말들을 쏟아내고 무뚝뚝한 정내미가 넘치는 아비와는 더 이상 말을 잇지도 못했다. 그리고 시뻘거진 얼굴로 루브르에서 헤쀼블리크로 미친듯이 쏘다니다가 종말을 구경 나온 듯한 관람객들이 점령한 카페들을 뒤로 한 채 한적한 곳에 마침내 몸을 밀어 넣었다. 30유로 가까이를 맥주에 진을 마시다가 이거 안되겠다 싶어 모노프리에 가 런던 드라이 진을 한 병 샀다. 입구를 지키던 무서운 엉아가 오더니 찬장에서 꺼내준다. 막 쏟아내고 싶은데 여전히 아무일 없는 냥 보통의 평균적인 끼니와 생활을 이어나가야 한다. 큰 일은 아니지만 부모와 쉽사리 연락하지 못하고 지내는 삶이 평생에 처음인지라 조금은 마음이 격해진다. 엄마 얼굴만 떠올려도 눈물이 나는 촌년인지라 부은 눈으로 또 남은 시간 술을 댓병 들이켜 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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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중반부

rewind 2014. 5. 22.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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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uxhall bridge에서 길을 헤매는 동안 흡사 해운대 신시가지 일대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순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내게 런던은 이런 곳이야 아니 이래야해라는 생각이 들어와있던 것일까. 하늘을 치고 올라오는 빌딩들을 보지 않아 좋았던 도시였는데 꿈틀거리는 이 도시의 미래의 안위까지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오지랖. 서울은 그러니까 한국은 지금 2014년의 시간을 통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까. 상상하기 무서울 정도다. 어제는 페이스북에 어떤 여자의 옷차림을 두고 비난과 조롱을 퍼붇는 댓글과 좋아요 갯수가 수 만개를 넘었다. 그냥 청바지에 날개 모양 스티치가 붙어있었고 그저 타이트한 스키니진이었을뿐. 런던 어디에서도 누군가의 옷차림이나 행색을 두고 신경 쓰는 걸 못 봤기 때문에 그런 한국의 병적인 태도들이 더욱 끔찍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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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발 딛고 있는 이 도시를 온 몸으로 체감하려고 했던 것인지 신기하게도 지난 며칠간 익숙했던 한국에서의 모습들이 거의 떠오르지 않았다. 처음부터 난 친숙한 부모란 사람들도 없이 온전히 여기에 존재해 살아왔던 것처럼. 힘들었던 것들도 생각나지 않고 그렇게 1년 만에 꼬박 7-8시간을 자며 평균적으로 행복한 일상을 살았다.

볕드는 버스 2층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어제부터 시작된 생리에 통증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항상 극심한 생리통으로 고생하는 우리 모녀이기 때문에 순간 이 사실을 엄마에게 가장 먼저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는 지금 핸드폰을 정지해 와이파이만이 가능한 상태고 엄마는 인터넷이 되지 않는 핸드폰을 사용 중이다. 떠나기 이틀 전에야 비로소 이메일 계정을 만들어주고 컴퓨터를 끄고 켜는 것 정도만 알려드리고 왔지만 확신할 수 없다. 이따금 동네 단짝 친구가 내가 카톡으로 보낸 사진을 멀티메일 문자를 통해 받는 것 정도로 내 생사를 확인하실 터. 갑자기 엄마의 얼굴과 집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겉잡을 수 없는 것들이 몰려들었다. 혹시나라도 전화 할 기회가 생겨 엄마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나와 이 엄마는 주책없이 누가 죽기라도 한 마냥 울음과 그리움을 쏟아낼 것이다. 잔뜩 어지럽혀져 있는 방 안에 이따금 밤이 되서나 어슬렁거리던 큰 덩치의 딸내미 하나가 부산영화제보다 더 멀고 긴 여행을 떠났으니 지금 정도면 허전함 이상의 것들이 그녀를 찾았을 지도 모르겠다. 투어 버스에 몸을 싣고 도심 곳곳을 촬영하는 무리를 건너편 시야에 둔 채 2층 버스에서 혼자 조용히 썬글라스를 끼고 훌쩍거렸다. 너무 갑작스런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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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그런 삶을 사는 건 아닐테지만 이 여행에서 나는 어떤 행복한 가정들의 표상을 그려본다. 면면이 살펴보기로는 여행자의 시선에 비춘 그들은 명절에 다같이 모여 칠면조를 구워 먹고 난 뒤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올이 잘 풀리지 않는 스웨터를 입고 하하호호. 부모에 대한 예의를 지켜나가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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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들 중 하나는 내셔널 갤러리에서 방마다 "No photography!"하며 지키고 있는 사람들. 빛이 움직일 때마다 그림들이 제각기 다른 모양새를 띄게 되는데 어떤 그림은 너무도 선명해서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속이 메스꺼워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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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uxhall bridge에서 찬바람 얼굴로 맞아가며 길을 헤맸던 건 1800년대에 지어진 배터씨독스 앤 캣츠 홈 보호소를 찾아가기 위한 여정이었다. 이 곳은 대부분 대형견들을 주로 키우는데 공원이 곳곳에 자리해있으니 전철과 같은 대중교통에 케이지 없이 탑승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많이 크지 않고 털 안 빠지는 브랜드의 개를 원해요"라고 묻던 한국을 생각하니 또 한 번 갑갑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환경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퇴근 후 나를 허전하지 않게 반기거나 기다려 줄 장식물을 집 안에 꽁꽁 숨겨 놓는게 아니라 언제든 맘 먹고 산책 나가려하지 않아도 거주지 일대에 그런 공간이 놓여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광활한 리젠트 파크에서 지나가던 개를 보고 반기며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본 것도 굉장히 인상에 남는다. 우리는 그들을 보살 필 기회를 얻었으면 모든 책임감을 다하되 그만큼 의사를 존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모든걸 통제 하에 두어야 한다는 그 얄팍한 지식과 생각들은 내려두자. 다 마음으로 통하기 마련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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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명 오빠의 부탁으로 모즈 커틀링을 찾으러 캠든 타운으로 향했다. 어차피 핀 뱃지 하나 사기 위해 찾아가려던 참이긴 했지만 뭔가 임무를 부여 받으니 기행이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캠든 타운을 속속들이 다 뒤져 모즈 파더를 찾아냈지만 그는 Curnerby street?에 가보라고 조언해주었다. oi 모시기 하는 가게를 또 찾았으나 문을 닫아서 결국 모즈 파더 아저씨가 알려준 대로 그 힌트 하나만 가진 채로 무작정 찾아나서 face라는 문 닫은 모즈 가게를 하나 또 지나 마침내 찾은 sherllys!! 그런데 알고보니 이 곳은 마침 폴 웰러가 단골이라는 성지였었다.... 우리나라 중년배 가수가 음식 가게 찾아가서 사인 한 번 해주고 걸어 놓는 것마냥 그랬는지는 몰라도 관광객인 나야 뭐 별 수 있나. 순간 흥분해서는 나 폴 웰러 겁나 좋아한다며 아저씨에게 묻지도 않은 말들을 줄줄줄 쏟아냈다. 그리고는 커틀링을 발견하자마자 i've been looking for this all day long이라며 시가도 모른 채 무작정 거금을 털어 구입. 그래. 심부름이니까..하며 감격에 겨워 집으로 돌아왔지만 얼씨구.. 오빠가 찾았던 것은 커틀링 이미지이긴 했지만 그냥 모즈 핀 뱃지였던 것. 결국 그 다음날 찾아갔더니 환불이 안된다고 해서 결국 45유로 가까이를 모두 핀뱃지로 바꿔야만 했다. Small Faces같은 헤어 스타일을 하고 어벙벙하게 있던 알바생과 사장님.. 저의 실수와 변덕에도 끝까지 미소 잃지 않아주셔서 감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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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 생각해보니 10시간을 가까이 걸어다녔다. 애비로드에서 비를 흠씬 쳐맞고 포르토벨로마켓으로 피신했다가 거기서만 왕복 2시간을 돌아다닌 듯 하다. 준명 오빠가 바버 쟈켓 꼭 사라는 말 한 마디를 던져두어 보는 것마다 눈독을 들였지만 결국 참고 참다가 브릭레인 마켓에서 그 다음 날엔가 샀다.

애비로드도 그렇고 유명하다 싶은 곳들을 우연히 혹은 부러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놀랍고도 그렇지 않은 사실은 그저 누군가가 살아가는 곳들이라는 것. 이미지에 현혹되어 내가 만들고 상상해온 아우라라는 것은 그 곳에 없다는 이야기다. 카메라를 챙겨왔음에도 불구하고 떠나기 전 날에서야 꺼내든 것은 그 때문이기도 하다. 나와 함께 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 그 곳을 어떠한 애정의 시선으로 닮을 수 있을리는 만무. 볼 것들이야 많지만 사실 아이폰으로 찍는 것들은 대게 기억을 소환해내기 위한 지표에 불과하지 한국에 있던 것처럼 마음을 다해 찍는 사진은 거의 없다. 몇 년만에 이렇게 사진 찍는 것이 아무 감흥 없기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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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ind 2014. 5. 22. 17:04
- 님포매니악

님포매니악에서 손톱 깎는 얘기를 하던 장면이 좋았다. 남자는 세상에 손톱을 깎는 방향에 따라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뉜다고 보아왔다고 하는데 거기에 여자가 새로운 반론을 제기해주기 때문. 날선 지적도 아니고 그냥 역시나 심드렁하게 조는 나는 편한 대로 깎아요. 왼편을 쉽게 깎고 나면 다른 오른쪽도 그리 어렵지 않잖아요. 뭐 이런 식. 순간 남자는 놀라는데 나는 내 삶에 이런 의문을 던져주는 이들을 만나는게 가장 큰 기쁨이라 여긴다.

그 다음날 바로 볼륨 2를 보았고 엔딩에 소스라치게 놀라 썅욕을 해댔다. 물론 라스 폰 트리에고 이 정도 짖궂음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지만 조크라기엔 그 많은 시간들을 모두 엿 바꿔 먹는 태도여서 사실 화가 났다. 차라리 볼륨 1만 보았더라면 좋은 감흥이었을텐데. 자막이 없으니 온전히 샬롯 갱스부르 언니 음성에 매달려야했고 그녀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캐릭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듣고 있기에 싫증이 났다. 영화 자체가 매우 루즈하기도 함. 이 영화는 섹스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그 행위 자체에 관음적인 시선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국내에서 이것을 두고 선정적이라고 난리통 피울 생각을 하니 답답하다. 1편에서 조의 섹스 장면과 함께 동물들의 풋티지가 함께 나올 때는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냥 정말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보는 기분이었다. 샬롯 갱스부르보다는 스테이시 마틴의 발견이 흥미로웠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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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don calling

rewind 2014. 5. 15. 01:04
새벽까지 짐을 싸면서도 엄마에게 '나 정말 가는 것이냐'고 물었듯 공항에서도 내내 그 말을 떨쳐내지 못했다. 더 이상 무슨 증명을 원했던 것일까. 평생의 숙원이었는데 왜 이리 설렘조차 없는 건지 스스로가 야속했다. 친구들이 너도 나도 정말 가는 거냐며 분위기를 몰아주는 와중에도 얼떨떨한 당혹스러움에 '응 그런가봐'로 대충 무마하곤 했다. 좋겠다고 부러움을 표하는 이들 앞에서는 나도 그만큼이나 명확한 감정이 있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사실 더 이상 깊이 생각하기 시작하면 또 청승맞게 울컥할 것이 뻔했음으로 더 집요한 고민들이 달려들기 전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떠나는 것 같은 모양새를 만들어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가늠할 수는 없지만 '2개월'의 시간은 분명 내게 엄청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출국 몇 시간을 앞두고서야 대체 왜 이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그 곳까지 가는 걸까하는 별별 생각들이 다 들었다. 내 안의 아빠가 고개를 든 모양. 아빠는 이 여행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출국 전 날까지도 정말 가는 거냐고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엔 '잘 다녀오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참 흥미로운 부모를 두고 있다. 이 여행의 시초는 사실 루프트한자 메일링을 받고 있던 내가 '유럽 특가'라는 홍보 문구를 보고 엄마에게 이런게 있다며 말 한마디를 던진 데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참으로 쿨하게 '그럼 가봐'라는 말 한마디로 딸을 움직이게 한 것. 내 평생에 외국 가서 영어를 써보는게 소원이었던지라 초등학교 때부터 알아 듣지도 못하는 영어 동화 테이프를 따라 들으며 외계어를 중얼거리곤 했었다. 어릴 때의 나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와 기호, 특징, 행동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했었다. 그 중에 하나가 브라운관 픽셀을 이쑤시개로 세고 논다거나 등교하는 길 보이는 사람들마다 그 사람의 영혼이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해보는 일 따위들이었다. 아무래도 외동이었고 나는 고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집에서 인형을 가지고 놀거나 엄마가 빌려다주시는 비디오가게 테이프들을 보는 일상이 전부였다. 그 때의 나는 참 연약했었다. 할 수 있다면 지금의 내가 지켜줄텐데.

갈증을 해소하듯 영화를 찾는 것은 이미지 자체에 대한 매혹도 있겠고 여러 복잡다단한 감흥들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내가 도착하지 못한 시간, 공간,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라도 스스로를 어느 시간과 공간에 내던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어떻게든 고질적인 반복을 끊고 삶을 흔들어보겠다고 직장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정들을 내쳐버리지 않았었나. 가능하다면 내쳤다기보다는 함께 안고 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안에서 얻었던 귀중한 시간과 사람들은 지금의 나를 있게 했기 때문에. (눈물 없이는 쓸 수 없는 글이다. 맥주를 마시는데 눈으로 나오고 있다. 나는 칼스버그를 잘 마시지 않는데 처음에는 맹맹한 물 같더니 지금 이게 눈으로 나오고 있다.) '순환'의 힘을 믿는다. 지치지 않고 줄곧 내가 믿고 지지하는 것들에 대해 힘껏 목소리를 실어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혹시나 그런 내 마음을 엿보기나 한건지 공항으로 마중을 나와 준 혜민은 탑승 수속 몇 시간 전까지 내내 옆에서 어린 아이들처럼 장난을 걸어주었다. 어떤 때는 굉장히 진중하고 어떤 때는 정말 철없는 아이들처럼 노는 이 친구와의 균형은 참 흥미롭다. 항상 서로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런 듯한데 아무래도 이 친구와 함께 있으면 내가 제법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점점 나를 지배해나가는 생각 중 하나는 아무래도 사람이란 스스로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상대를 향하는 법이다.

탑승 수속 3시간 전에 여유 있게 도착해 미처 하지 못했던 일을 하나 더 마무리해야만 했다. 공항 내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보험 회사를 찾아갔다. 데스크 너머 한 켠으로 프라다 백을 모셔 놓은 채 얼마 동안 가 있을 거냐는 질문을 이물난듯이 말하는 직원의 태도를 보았다. 아마 나와 같이 떠나는 이들을 이렇게 매일 같이 보며 그 무리에 하루 빨리 스스로를 합류 시키고 싶을 터. 세상에서 내가 하지 못할 일이 있다면 보고 싶은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동안 그 티켓을 팔고 있어야하는 처지가 되는 것인데 아마도 그 일이 그녀에겐 차마 할 만한 일이 못되는 듯 했다.

기내에서는 옆에 앉은 두 아저씨의 눈치를 보느라 7시간동안 기적적으로 화장실을 참았던 것을 제외하면 모든게 좋았다. 순전히 내 입장에서만 생각해보자면 나는 비건으로 특별 기내식을 신청했기 때문에 남들이 물기 없는 음식을 먹을 때 '과일'을 먹었다. 남이 무엇을 먹었건 관심이 없다하더라도 간식으로 나온 '치킨랩'을 나는 안 먹는다며 순순히 건네주었으면 '이보게 내가 궂이 window seat을 고집한 데에는 화장실을 가기 어렵다는 것쯤은 감수한 건 맞지만 그 치킨랩 하나 더 입에 물거든 이따가 알아서 내게 눈치껏 기회를 좀 주겠나. 당신도 밥 먹고 나면 화장실 가고 싶을 거 아니냐'

(* 첫번째 기내식은 커리, 두번째는 가지인지 쥬키니인지 가늠 안가는 채소를 쪄서 토마토 소스를 베이스로 한 것 같은데 샐러리와 피망이 섞여있는 샐러드와 함께 먹음. 이 맛 잊고 싶지 않아서 생각날 때마다 떠올리는데 승무원에게 재료 물어본다는 걸 깜빡.)

이렇게 알아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치킨랩은 사실 승무원의 실수로 내게 주어진 것이었고 나는 그냥 그것을 넘겨버릴 수도 있었거늘. window seat을 점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히드로 공항에 착륙할 때 고개를 빼꼼 내밀던 순간 나는 창문 뷰를 다 가리지 않고 슬쩍 옆으로 비켜주는 (당연한) 센스까지 보여줬었음. 좌석에 붙은 모니터 다루는 것도 모르길래 도와주려 했더니 내치질 않나. 그래 그건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화장실'은 나와 모두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염병할.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젠틀한 영국 신사들을 만나기 이전 극명한 대조를 위해 겪은 환난이라고 생각해버리겠다. 무궁화호로 5-6시간 밤샘 부산행 기차를 타며 영화제를 다녔던 걸로 단련이 되있었던 건지는 몰라도 '폐쇄 공포'에 대한 걱정이 앞섰던 11시간의 비행은 제법 이렇게 무난했다(?) 아시아나 항공에서 제공하는 콘텐츠에는 무려 산울림, Janis Joplin, The Clash, WHAM 등이 있었다. 나는 mp3로 알아서 챙겨갔지만 지난해 제주 여행 떄 처음 경험한 이륙이 너무도 불안했기에 The Clash의 'Complete Control'을 볼륨 높여 들으니 모든게 짜릿했다. 그냥 순간 증발해버리고 싶었을 정도였음.

( * 대부분의 친구들이 내가 직항 비행기를 타고 간다는 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이 예약은 3개월 전에 이루어졌고 이미 당시엔 5월 초 황금 연휴로 인해 러시아 공항에서 숙박해야 할 지도 모르는 33시간의 경유 비행기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 며칠 안되는 연휴 동안 모두 다 유럽을 간다니. 참 가늠할 수 없는 나와 당신들의 빈부격차여. 여튼 나는 1년 벌은 돈을 모두 탈탈 털어 간다. 가는게 신기하지)

바깥 창문으로 보이는 대륙의 표면들을 면면이 넋놓고 보는데 새삼 내가 발 딛고 살아온 곳은 정말 일부에 불과하구나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나는 이 느낌에 다가서기 위해 항상 마음 속으로 보이지 않는 도표를 그려왔었다.

아마 중국으로 추정되는 곳은 용맹한 호랑이의 등줄기처럼 모양새가 우렁찼고 거침 없었다. 영국 전까지의 대륙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는 곳들인듯 구획이 신기하리만치 나뉘어있었는데 사람들이 삶을 구성하고 건축해나간다는 것이 정말 경이롭게 다가왔다. 영국에 도착하면서는 그 감흥이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는데 정갈하게 나뉘어 있는 구획들을 보며 서로의 삶을 정말 존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만큼의 정원을 가질테니 너도 이만큼 가지도록 해." 아니면 정말 신경쓰지 않고 각자의 삶에 집중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국외라고 해서 빈익빈 부익부가 없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은 하지 않지만 보여진 바에 의해서만 판단되기로는 그랬다. 좁은 땅 덩어리에 빼곡히 고개를 들고 올라서는 빌딩들을 보며 느꼈던 답답함에 비해 그것들이 훨씬 나은 생활을 가능하게 만들 것이라 생각했다.

긴 비행을 마치고 입국 수속을 하러 나가는 데 아시아나 항공기에 꽉 들어차있던 한국인 몇 다스와 외국인들 소수가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다. 심사하는 분 앞에 줄을 서있는데 이건 마치 텔레비전에서나 보아온 파주 영어마을의 한 풍경같다고나 해야할까.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며 그는 '너희는 우리 때보다 훨씬 좋아진 거야. 크크크'라는 식의 인사인지 농담인지를 혼잣말로 중얼거렸는데 나는 알아듣지 못했고 '너 여기에 무엇 하러 왔니'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하지 속으로 열 댓개의 대답을 상상했던 데에 비해 약간의 서운함만을 남겨주었다.

여튼 상상했던 것보다 거대하지 않은 히드로 공항의 모습에 또 한 번 놀랐다. 영화 <터미널>의 배경이 이 곳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가장 근접한 바로는 그와 같은 것이었는데 터미널과 전철로 이어지는 통로로 나가는 중에도 그저 '코스트코'와 유사한 모습을 떠올렸다. 내내 지금 내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거지하는 생각에 킬킬킬 웃어대며 열심히 이 곳 저 곳으로 시선을 돌려댔다. 수화물을 찾는 데에만 3-40분의 시간이 걸렸고 나머지 1시간 정도는 길을 헤매는 데에 보냈다. 아무런 걱정도 앞서지 않았고 그냥 그 모든 낯선 상황들이 재밌었다. 우선 가장 먼저 내게 말을 걸어준 보라색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 언니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엘레베이터를 잡아줬던 그 잘생긴 남자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2번인가 같은 엘레베이터를 오르락 내리락했는데 그 때마다 엘레베이터를 홀딩하며 기다려주었더니 두 노부부가 고맙다며 세상에서 가장 포근해보이는 인사들을 건내주었다. 순간 여기 와서 엘레베이터 걸이나 하고 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3초 정도 해보았다.

궂이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보겠다고 갖은 애를 다 쓴 것은 효진과의 대화에서 떠올렸던 제주 공항에서 3시간 버스를 타고 강정으로 갔던 기억이 올라왔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결국은 UNDERGROUND를 타기로 했다. 오이스터 카드를 충전해주던 역무원 아저씨는 '여기에 싸인이나 해'라며 창구 사이로 펜과 영수증을 던지다시피 했는데 그마저도 불쾌하지 않고 그냥 순순히 응했다고 하면 지나친 여행자로서의 긍정의 힘이었던 걸까. (결국 마지막 날 지하철역에서는 역무원의 그 대수롭지 않은 태도에 살짝 열이 받았지만 뭐 그 날은 비를 흠뻑 맞았었기 때문에 동등한 상황이라고 보기 힘듬으로 패스.)

to be continued (i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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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ind 2014. 3. 1.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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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

rewind 2014. 2. 6. 01:06

 이미 죽었을지도 모를 애들의 우는 소리를 온종일 귓방망이 맞으면서 그 날 정신없이 구겨 넣은 저녁을 새벽녘에 모조리 쏟아냈다. 토한게 아니라 그냥 정말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았는데 쏟아져 나왔다. 연휴 중 이미 어떤 일들이 진행될 것이라는 얘기를 전해 들은 이후로 신경이 계속 곤두서있었는데 아직 내 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가보다했다. 그래도 크게 호되게 당한 바가 있으니 이 상태로는 술을 안 마시는게 그나마 다행인가 싶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 역시나 또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강제 수용되는 전철에 몸을 밀어 넣었다. 전 정거장 차가 출발하지 않아 딜레이가 계속 되면서 점점 공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때 문 앞에 있던 어떤 젊은 여자가 적막을 깨뜨렸다. 119 좀 불러주세요. 앞이 갑자기 안 보여요. 이러기를 반복하는 거다. 어지러움증을 동반한게 아니라 꼿꼿이 선 채로 분명하게 그렇게 말하는데 나를 비롯해 사람들은 어리둥절. 여자가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데 다들 어찌할 줄을 몰랐다. 한 할머니가 여기서 그러면 119가 못 오지 않느냐며 손을 붙잡고 전철 밖으로 여자를 데리고 나갔다. 역무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 여자를 붙잡고 전화를 거는 듯 하더니 전철 문이 굳게 닫혔다. 밖에 있던 할머니가 에구머니나 하는 사이 전철 문은 다시 열렸고 그녀는 동행인에게 돌아오더니 못 탈뻔 했다며 안도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순간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갈듯이 패닉이 오면서 구토가 쏠리고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지금 막 출발했으면 다음 역까지 적어도 1-2분은 가야 하는데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죽어버릴 거 같았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겨우 다음역에 내리니 찬 바람이 불어 오한이 느껴졌고 화장실까지 어떻게 갔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한참을 헛구역질 해대다가 다시 용기를 내 어떻게든 출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전철을 다시 탔는데 이번에는 더 악화되는 거다. 또 다음 역에 내려 주저 앉은 채로 인파가 어서 계단을 모두 내려가 사라져버리기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역 내 화장실에 가 헛구역질에 설사를 해댄뒤 상사에게 늦어질거 같다고 양해의 문자를 보냈다.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기도 했고 이미 나는 겨우 2정거장을 오느라 1시간을 늦은 상태인데 그러면 연차가 사라지는 건가하는 생각들이 나를 집어 삼켜버릴 듯 했다. 다행이 시간이 지날 수록 괜찮아졌지만 그 다음날 출근길에선 양손을 꼼짝 할 수 없는 상태로 압박이 되어선 백발의 할아버지가 사람들이 비켜주지 않아 문을 앞에 두고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또 종일 악몽 같은 작업들을 했고 간밤 꿈에 음식물 쓰레기와 함께 개의 시체가 방에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나왔다. 상사는 이런 식으로 전체 업무에 지장을 주는데 내게 진단을 받아봐야하지 않겠느냐며 이번 사건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며칠 푹 쉬어보라고 했다. 사실 이 일이 어떤 식으로든 장기적으로 볼 일인데 마무리라니. 끝이 안 보이는 그 긴긴 어둠과 반복되는 악몽을 생각하니 숨이 막혀버릴거 같다. 머리를 왼쪽으로 기울이면 혈관이 끊어지는 고통이 느껴진다. 중요한건 마음가짐이라고 자꾸 괜찮다고 나를 쓰다듬어줘야하는데 도저히 일상의 환기가 안된다. 내가 왜 이렇게 나약한 인간인가에 대해 자책하는 와중에 또 머리카락을 열댓개 뜯은거 같다. 좋은 것들이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돌아볼 힘마저 안 남아있는 겨울이다. 언제나 그랬듯 날씨가 풀리면 모든게 괜찮아질 것이라 말해주고 싶다. 이렇게 문장들로 풀어내 읽다보면 내 처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들이 생기게 될까 싶어 자꾸 손을 바삐 움직인다. 어떤 면으로는 굉장히 낙천적이다 못해 될대로 되라는 식의 마인드를 가진 나이기 때문에 크게 안 좋은 기운에 빠져드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 반복되는 일과 악순환을 어떻게든 내 힘으로 끊어버리거나 다른 기운으로부터 몰아내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지금 바로 자리에 누우면 6시간은 잘 수 있을텐데 부디 푹 아무 걱정 없이 잠에 빠져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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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보고싶다

rewind 2013. 12. 7. 16:38
어제 치매 초기이신 외할아버지가 일주일 전 이사간 집을 못 잊고 수첩과 돈 몇 푼만 가진 채로 말없이 집을 나오셨었나보다. 오늘 아침 다행이 연락이 닿았고 나는 꿈에서 텅 빈 외갓댁에 들어가 덩그러니 남겨진 할머니의 유품들을 끌어안고 밤새 울었다.. 할머니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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