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며

rewind 2013. 4. 1. 03:38

-

유난히도 지난했던 겨울 때문인지 영화를 볼 때나 사람을 만날 때 계속 다음 계절을 찾는다. 날이 풀리면 모든게 괜찮아질거야라며 나름의 위로랍시고 건네는 말이라던가 여름이 오면 어디를 가자던가 등등. 눈이 가득 쌓인 어느 날들은 극장에 갇혀 <샤이닝>을 보는 상상을 했고 신발에서 눈을 털어낼 때는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곤 집에서 <파고>를 다시 보았더랬지. <지나간 여름>이란 제목을 붙인 내 졸업 영화의 장면들도 늘 뇌리에 맴돈다. 시나리오를 쓰기 전 종로에서 푸른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걸 보곤 가을이 오기 전에 영화를 찍어야겠다 싶어 회기와 석계 일대를 돌아다녔었다. 그리고 요즘은 봄이 올 즈음 찍을 영화에 대해서 생각 중이다.

-

아버지가 할머니댁 뒷산에서 달래와 두릅 나무를 캐오셨다. 두릅은 물에다 담가 놓으시곤 새싹이 돋을 때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신다. 달래를 입 안에 머금으니 향이 퍼졌다. 죽을 때 입에다 달래 한 움큼을 물린 채 묻어준다면 그것만치 좋은 것도 없을 거라며 동네 친구에게 부탁을 해두었다.

-

자크 리베트가 만든 장 르누아르 다큐 2부에서 "우린 달처럼 멍청해. 우리가 영리하지 않아 다행이야"라며 미셸 시몽이랑 포옹하며 깔깔거리는데 나이 먹으면 다 저렇게 아이 같아지는걸까?라고 친구에게 되물으니 절대 아니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날 술을 마시면서도 늙어감에 대해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했었는데 자꾸 여든 다섯의 외할아버지가 떠올라서 그런가보다. 나보다 두 살 어린 친구는 조그마한 입술로 잘 늙어가고 싶다고 얘기했다. 편견과 상대성에 대해 부딪히고 싸우면서 과연 잘 늙는다는건 어떤 걸까 싶다가 이런 것에 가깝지 않을까로 총총총 생각을 옮긴다.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rewind'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다림  (0) 2013.07.19
존중  (0) 2013.04.09
광명  (0) 2013.03.30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트윅스트  (0) 2013.03.27
황야의 7인, 존 스터지스  (0) 2013.02.08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