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시계 종탑이 '끈질기게'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했다. 영화의 도입부는 소설 속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냥 나레이션으로 시작되며 스완 밸리라는 마을의 풍경을 읊어댄다. 나는 이 '끈질기다'라는 어감에서 끈덕진(응고된) 피가 시계 초침에 엉켜있는 모습을 연상하게 되었고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영화라는 단서만을 부여잡은 채 이것이 꽤나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 짐작했다.

 영화는 할 발티모어란 마녀 소설을 쓰는 작가가 스완밸리의 살인 사건과 함께 얽힌 어느 꿈 속으로 우연히 발을 딛게 되며 안개를 걷어내기 시작한다. (사실 어쩌면 안개 뿐이다.) 달이 수놓은듯 부드럽게 화면에 떨어지는 흑백의 꿈 속엔 붉은 핏기 어린 눈 화장을 한 소녀와 모텔, 숲, 죽은 아이들이 등장한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영화 안에서처럼 꿈결이 손에 닿을듯 하며 이것이 현실의 창작으로까지 매게체로 이어진다면 그것만치 이상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왜 근래엔 우디 알렌 할아버지도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꿈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시간 여행을 그리지 않았었던가. 노년의 거장들이 근래 이렇게 꿈과 낭만(!)을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자면 동시대에 사는 이로서 참 행운이 아닐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와중에 아 결국 모든건 다 오래 전 꿈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

 그러나 사실 <트윅스트>가 아쉽게 느껴지는 점은 정말 이 영화가 꿈결에 지나지 않는다는 허망함이 밀려들어서다. 결국 나는 함께 동행할 수 없는 꿈 같다고나 해야 할까. 코엔 형제의 서부극 영화에 나올 법한 건조한 유머가 곳곳에 놓이는 듯 하더니 예상했던 피비린내는 마을 하수구를 조용히 지나고 있는 것인지 도통 새어나오지 않는다.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살인 사건의 피해자인 시체에게서 말뚝을 뽑아내었을 때 피가 분수처럼 솟아나는데 이것마저 나오지 않았다면 극장을 나서고 나서도 뭔가 엉켜있는 듯한 느낌을 덜어내지 못했을 거다. 할 발티모어가 적극 수면제까지 복용해가며 꿈 속으로 돌진해가자 에드가 앨런 포가 꿈에 나타나선 묘한 실마리를 계속 던져주지만 정말 그 뿐이다. 엄청난 위험이 도사릴 것만 같았던 종탑 장면이 가장 맥 빠지는 부분 중 하나였는데 여기선 이 술 주정뱅이 발 킬머(할 발티모어 분)가 트라우마에 에코를 장착했는지 이를 주워 담지 못하고 흘리다 못해 추락하기까지 한다. 설마 이것이 정령 히치콕 영화에 대한 오마주인건가 싶다가 그 느슨하면서도 과한 사운드 효과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정말 할 발티모어라는 인물의 최대 트라우마인 딸의 사고 당시의 음성이 오버랩되면서 종탑 꼭대기를 에워싼다.)

 평소 나 자신의 꿈의 기억을 붙잡으려는 노력들을 미루어 봐서는 코폴라 감독의 이러한 백일몽 이야기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지 몇 몇 코드가 안 맞았던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기묘한 느낌이 도통 떠나지 않는 듯 하기도 하고. 과거 그 자신이 만들어 온 영화들과 달리 독립적인 형태로 또 다른 재미를 찾아나가는 듯 보이는 코폴라 감독. 사실 전작인 <테트로>가 꽤나 좋았기 때문에 이 할아버지가 다음엔 무슨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들려주실지 기대되는 것도 사실. 근래 개봉도 안 하고 영화제에서도 상영하지 않은 이 노장의 작품을 꾸준히 틀어주신 우리 서울아트시네마에게도 무한 애정과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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