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

rewind 2013. 3. 30. 02:46

 갓난 아기 때 눈을 못 뜰 정도로 눈꼽이 많이 껴서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갔었다는 엄마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몸이 약했던 엄마는 나를 업은 채로 길가에서 쓰러졌었다고도 한다.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그 때의 엄마를 지켜주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하고 안쓰럽다.

 원체 눈이 안 좋기도 했던 모양인 내가 처음 안경을 쓰게 된 건 초등학교 1학년 때다. 책 읽는 데에 한참 재미를 붙이기 시작해 어느 출판사에서 40권 시리즈로 출간된 과학 학습 만화를 반복해서 읽곤 하였었다. 심지어는 늦은 저녁 무렵까지 아빠 친구분에게서 국민학교 입학 선물로 받은 스탠드(이게 아직도 집에 있는데 심지어 작동도 잘 된다.)에 불을 켜고 앉아 혼자 조용히 읽었었는데 지금은 조금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그리고 어릴 때의 나는 오늘날 돌이켜 보면 조금은 아니 조금 많이 괴이하기까지 한 이상한 습관들을 몇 개 가지고 있었다. 이게 외동딸이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꽤나 많아 그랬던 거 같기도 한데 여하간 어느 한 때 나의 하루 일과 중 하나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이쑤시개로 브라운관의 픽셀 수를 세는 것이었다. 그 때만 해도 픽셀의 개념은 전혀 알리 없었고 우연히 가까이 다가갔다가 이게 멀리서는 안 보이는데 도대체 무슨 정체지하는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던 듯 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너무 아찔해서 애를 들어다 옮겨 놓고 싶고 막 그런데 요즘 지하철 어디서나 사람들이 스마트폰과 혼연일체 되어 있는 걸 보면 저들은 누가 챙겨주고 염려해주지 싶다.

* 아, 유년 시절 떠올리다가 문득 머리에 스쳐가는 기억이 하나 있다. 거의 십 몇 년을 잊고 있던 것이어서 더 놀라운데 이건 놀이터와 지구에 관련된 엄청난 사건이다. 누군지도 기억 안 나는 소꿉 놀이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놀던 중이었을 거다. 아니면 그거 자체를 계획 삼아서 갔었나. 어떤 애가 놀이터의 흙을 열심히 파다 보면 지구의 가운데 끝이 보이게 된다면서 잘못 건드리면 아마 용암 같은 게 터질거라는 얘기를 흘렸는데 그거에 혹 몇 시간을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동네의 놀이터에 가 삽질(!)해댄 것. 아마 두 세 시간은 족히 팠었을 것이다. 우리가 발견했던 건 땅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배수관이었다. 

 그로부터 안경을 끼고 지낸 게 어연 17년. 워낙 눈이 초고도근시였기 때문에 수술이야 거의 포기하고 지내온 나다. 영상 작업은 물론 원체 평소 컴퓨터를 오래 붙들고 있는 편이라 항상 안구 건조증에서 벗어날 틈 없이 바삐 살아 왔는데 한 달 전 강남의 한 병원을 찾게 되었다. 네이버 배너 광고에서 우연히 링크를 타고 들어갔다가 상담과 정밀 검사가 무료라는 말에 혹했던 것. 집 앞 안과에서 이미 라식이고 라섹이고 모두 안된다고 했으니 사실 어떤 기대도 없이 상담을 신청한 건데 바로 그 날 오후 전화가 왔다. 가능한 일자를 잡아보자며. 이거 정말 무료인건가 싶어 이상했지만 그래 수술도 못한다는데 평생 안경 끼고 살게 되더라도 제대로 된 검사 한 번 받아보지 못하면 억울하겠다 싶어 무작정 다음주 무슨 무슨 요일 오전에 그 곳으로 찾아가겠다고 했다. 

 실은 수술 못할 거라는 확인 사살이 당하기 싫어 여태 피해온 것이었는데 막상 당일에 가니 혹시나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밀려 들었다. 오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50여명의 사람들이 로비에서 다들 검사를 기다렸는데 대기 시간까지 하여 1시간 반 정도가 걸렸던 거 같다. 검사를 모두 마치고 상담사와의 면담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정말 드문 케이스 중 하나인지 이건 의사 선생님과 만나 더 자세히 얘기해보는 게 좋을 것이라며 말을 아끼셨다. 다른 사람들을 다 둘러봐도 나만큼 눈이 안 좋은 사람이 없어 보이는 듯 싶었다. 

 기다림 끝에 전해 들은 말은 기적이라면 기적인 것인데 수술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 다만 왼쪽 눈의 각막이 매우 얇은 편이기 때문에 교정 시력을 낮추어서 해야 할텐데 그렇게 되면 0.8과 1.0 정도의 시력을 예상할 수 있다 했다. 상담 끝에 나를 계속 불안케 만들었던 건 나이가 들어 시력이 다시 나빠지게 되었을 때 재수술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조언도 구해보고 고민을 했지만 17년을 이리 살아왔는데 단 몇 년도 좋으니 안경 없이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간절해졌다.  다시 눈이 나빠진다 해도 성장도 멈춘 상태에서 지금과 같이 -12의 시력까지는 안 내려갔지라는 생각으로 별별 고민들을 다 했던 거 같다. 

 그렇게 일주일 뒤 수술을 하러 강남의 고층 빌딩 숲을 지나 엄마와 동행하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나의 손을 꼭 잡아준게 선명하게 떠오른다. 간단한 검사와 결제 뒤 한 시간 정도의 대기가 있었고 수술을 하러 들어가는데 지난밤까지 수백번 뇌리에 스친 생각이 다시 올라왔다. 혹시나 이게 잘못 되면 어쩌지하는 마음. 마취 약을 눈에 투여하고도 못 미더워서인지 눈을 깜빡이면 어떡하지 싶어 저 아무래도 못하겠어요라고 말하려던 차 모든게 순식간에 진행되어버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수술대 위에 누워 시선을 고정키 위해 정면에 있는 레이저 불빛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데 극장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영화 <지옥인간>의 한 장면이 펼쳐졌다. 주인공이 제 3의 눈 비스무리한 것으로 보게 되는 환영같은 것들이 있는데 수술 내내 레이저 불빛이 분사되는 모양새가 딱 그 장면 같았던 것. 그 와중에 그걸 생각하고 있는 나나 수술을 진행하는 의료진들의 일사불란함 같은 상황이 오묘해 속으로 꽤나 낄낄거렸던 거 같다. 3-4분도 채 안되어 모든게 다 끝난뒤 일어나도 좋다는 말에 어 나 안경도 안 껴서 앞 안보이는 환자(!)인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스레빠를 신고 부축을 받아 나가는데 다음 수술자가 내 옆으로 지나가는 것이었다. 이건 또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한 장면 같네하면서 사이보그 된 기분으로 수술 대기실이었던 곳에 가 앉아서 신발을 갈아신는데 아. 앞이 보였다. 보인다는 걸 그제야 인지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수술하고 3일까지는 뜬 눈으로 밤을 새우는 냥 눈이 너무 시리고 아파서 하루 온 종일 집에 불 끄고 라디오를 벗 삼아 지내다 친구의 전화에 눈물을 폭포수마냥 쏟았다. 2주 차 들어서는 컴퓨터나 핸드폰의 글씨가 보이기 시작하니 신기했는데 이게 컨디션에 따라 어느 순간 시야가 흐려지니 지레 겁을 먹어서 최대한 화면들을 안 봐야겠거니 싶었다. 펄프와 에코앤더버니맨을 주구장창 듣다가 길모어걸스 시즌 1을 틀어 놓고 누워서 듣다 잠들기도 했다. 중학생 때부터 수 없이 봐온 드라마여서 왠만한 내용과 장면들을 보지 않고도 다 기억하는 편인데 이게 눈을 감고 듣기만 하니 그 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컷'으로 드라마가 상상되며 리듬을 혼자 타보기 시작했다.  영화 안 보고 술 안 마시며 지내던 이전의 일상들은 어떠했는가를 생각하며 새로운 감각들을 그렇게 새겨 나갔다. 3주 즈음이 지나자 영화를 못 보는 신세를 한탄하기 시작했고 모든게 너무 서러워졌다. (사실 참다 못해 로메르 영화나 록키 호러 픽쳐쇼를 '듣거나' '멀리서 응시'하곤 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영화는 '극장에서의 영화'.) 영화도 이렇게 못 보는 거 왜 수술을 했나 싶은 마음이 들자 엄마에게 미안함이 들기 시작했고 왜 이렇게 삐뚤어지나 싶었다. 수술 전 미량언니가 그 전까지 봐 온 영화들 떠올리면 되지 않느냐고 이 응석을 다그쳐 주었었는데 매일 사람들을 바삐 만나오다가 어느 순간 빈 틈에 놓여버리니 한 없이 마음이 주저 앉았다. 정말 모든게 환영이거나 기적이었나 싶었을 정도로 머릿속에서 영화의 장면들을 끄집어 올리려 안간힘을 썼던 거 같다. 아벨 강스 영화에서 서커스 단원들이 안개 속에서 나타나 마지막 인사를 하던 모습, 지난 여름 스크린에서 만났던 트뤼포의 영화들, <고스트 월드>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던 할아버지.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 투성이었다.

 시력이 정말 조금씩 더디게 새싹이 자라나듯 나아지니 그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선 나 자신부터 서두르지 말아야 했다. 시야가 뚜렷하지 않으니 꿈 속의 이미지들이 너무도 선명해져 며칠 동안은 꿈에 기가 모두 빨릴 듯이 잠을 설치기도 했다. 하루는 꿈이 나를 잡아 삼키려나 싶을 정도로 자다 깨다를 3번 정도 반복하는데 모두 다 내가 결혼하는 내용의 꿈이었다. 기억은 잘 안나지만 처음의 결혼은 누군지 모르는 이와 식을 올리게 되었는데 일가 친척 친구들 등 많은 이들이 이미 모두 모여 있으니 헛걸음 시키지 않으려면 일단 하긴 해야겠네라는 식으로 생각했던 듯 하다. 그리고 한 번은 눈에서 실핏줄이 초록 나뭇가지로 자라나는 이미지를 보았는데 그 뒤로 마음에 물을 주듯 조금 더 지켜보자고 나를 다독였던 거 같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한 주가 지날 수록 점차 달력의 글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밤에 어지럽게 번지던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들도 어느 정도 수그러든 듯 했다. 4주차에 극장에 가 첫 영화로 <트윅스트>를 보았다. 멀찌감치서 뒷 자리에 앉아 썬그라스를 낀 채 보는데 그 전과 달리 강건너 불구경하는 기분으로 응시하는 기분이었다. 영화의 내용처럼 꿈이 눈 앞에 그려지는 거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 날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실핏줄이 선명하게 터진 걸 보고 또 겁을 먹었다. 하루를 건너 뛰고 푹 숙면을 한 뒤 두 번째로 극장을 찾았는데 그 전보다 나아진 거 같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다시 극장. <아버지를 위한 노래>를 보는데 모든게 선명했다. 영화의 캐릭터나 모든 디테일들이 마음에 들었을 뿐만 아니라 너무 비현실적일 정도로 오롯해서 내가 꿈 속에 들어왔나 싶을 정도로 이상하여 자꾸 스크린 아래 사람들의 뒷통수로 시선을 옮겨보기도 했다.

 어젠 병원에 가 시력 검사를 받고 왔는데 0.7/1.0 정도가 나온다 했다. 그런데 아직 다 회복된 게 아니라며 여기서 더 좋아질 것이라 했다. 당근 잘근잘근 통으로 씹어 먹으며 썬글라스를 낀 채 컴퓨터를 한 보람이 있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멍청이 같다. 오래오래 잘 보살펴 주어야지. 그래서 하루에 영화도 2편으로 제한시켰다. 초록이 많은 숲이나 바다에 가서 3, 4시간씩 눈에 좋은 공기를 쏘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새삼 안경을 쓸 때엔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이 요즘의 나를 매일 설레게 한다. 지금도 머리 감을 때에 물줄기가 타일 위로 떨어지는 그 선명한 광경은 무섭기까지하다. 자꾸 안경을 찾게 되고 그러다 보니 썬그라스를 걸치고 있는 것이 덜 허전하다. 누구는 일본 감독 같다고 하였고 누구는 장님 같다 하였다. 다시 태어난 거 같지 않느냐고 수술을 경험한 친구 몇이 묻는데 정말 그러하다. 지나칠 수 있는 광경과 감정들이 나를 찾아온다. 불안을 지나고 나니 이렇게 봄이 찾아오고 있구나. '광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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