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rewind | 40 ARTICLE FOUND

  1. 2013.07.19 기다림
  2. 2013.04.09 존중
  3. 2013.04.01 봄을 기다리며
  4. 2013.03.30 광명
  5. 2013.03.27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트윅스트
  6. 2013.02.08 황야의 7인, 존 스터지스
  7. 2013.01.28 강아지 이불
  8. 2013.01.28 요이땅
  9. 2013.01.13 응당
  10. 2012.11.24 풍경의 기억

기다림

rewind 2013. 7. 19. 11:56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마냥 모든게 다 허망하게 느껴졌다. 아둥바둥 살아가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 켠도 있지만 마음처럼 모든게 다 따라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르고 달래며 같이 데려가야 하는 이런 모습들이 나의 일부인 것을. 그걸 인정하고 기다려주는 것 또한 내가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믿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도 있는 거지하면서 조금 지켜봐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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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

rewind 2013. 4. 9. 13:23



나 자신이 존중 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모든게 견딜 수 없어진다는 걸 지난 한 해를 지나면서 뼈저리게 깨닫았다. 그러면서 나 또한 상대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존중해주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내가 먹는 음식, 내가 만나는 이들, 내가 발 딛는 장소들. 많은 것들에 눈길을 한 번씩 더 돌리는 것이다. 지나온 시간들을 찬찬히 짚어보기도 하는데 모든 것엔 저만의 시간들이 필요한 듯 하다. 계절도 그러하듯.. 그 여리여리한 몸으로 흙을 뚫고 나와 봄의 완연한 햇살과 기운을 만나려면 굉장한 부단함을 필요로 할 것이다. 매일 매일 조금씩 싸우거나 다독이거나 치열하게 혹은 더디게 나를 밀어 올리는 것이다. 혹은 유유히 헤엄치기도 한다. 그러니 불안에 휩싸인 나와 내 안의 목격자들 그리고 더불어 사는 친구들. 모두 오늘은 조금 더 느슨해져 봅시다! 봄이 오고 있으니깐! (근데 지금 황사 바람에 문이 덜컹덜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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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며

rewind 2013. 4. 1.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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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지난했던 겨울 때문인지 영화를 볼 때나 사람을 만날 때 계속 다음 계절을 찾는다. 날이 풀리면 모든게 괜찮아질거야라며 나름의 위로랍시고 건네는 말이라던가 여름이 오면 어디를 가자던가 등등. 눈이 가득 쌓인 어느 날들은 극장에 갇혀 <샤이닝>을 보는 상상을 했고 신발에서 눈을 털어낼 때는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곤 집에서 <파고>를 다시 보았더랬지. <지나간 여름>이란 제목을 붙인 내 졸업 영화의 장면들도 늘 뇌리에 맴돈다. 시나리오를 쓰기 전 종로에서 푸른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걸 보곤 가을이 오기 전에 영화를 찍어야겠다 싶어 회기와 석계 일대를 돌아다녔었다. 그리고 요즘은 봄이 올 즈음 찍을 영화에 대해서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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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할머니댁 뒷산에서 달래와 두릅 나무를 캐오셨다. 두릅은 물에다 담가 놓으시곤 새싹이 돋을 때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신다. 달래를 입 안에 머금으니 향이 퍼졌다. 죽을 때 입에다 달래 한 움큼을 물린 채 묻어준다면 그것만치 좋은 것도 없을 거라며 동네 친구에게 부탁을 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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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리베트가 만든 장 르누아르 다큐 2부에서 "우린 달처럼 멍청해. 우리가 영리하지 않아 다행이야"라며 미셸 시몽이랑 포옹하며 깔깔거리는데 나이 먹으면 다 저렇게 아이 같아지는걸까?라고 친구에게 되물으니 절대 아니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날 술을 마시면서도 늙어감에 대해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했었는데 자꾸 여든 다섯의 외할아버지가 떠올라서 그런가보다. 나보다 두 살 어린 친구는 조그마한 입술로 잘 늙어가고 싶다고 얘기했다. 편견과 상대성에 대해 부딪히고 싸우면서 과연 잘 늙는다는건 어떤 걸까 싶다가 이런 것에 가깝지 않을까로 총총총 생각을 옮긴다.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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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rewind 2013. 3. 30. 02:46

 갓난 아기 때 눈을 못 뜰 정도로 눈꼽이 많이 껴서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갔었다는 엄마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몸이 약했던 엄마는 나를 업은 채로 길가에서 쓰러졌었다고도 한다.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그 때의 엄마를 지켜주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하고 안쓰럽다.

 원체 눈이 안 좋기도 했던 모양인 내가 처음 안경을 쓰게 된 건 초등학교 1학년 때다. 책 읽는 데에 한참 재미를 붙이기 시작해 어느 출판사에서 40권 시리즈로 출간된 과학 학습 만화를 반복해서 읽곤 하였었다. 심지어는 늦은 저녁 무렵까지 아빠 친구분에게서 국민학교 입학 선물로 받은 스탠드(이게 아직도 집에 있는데 심지어 작동도 잘 된다.)에 불을 켜고 앉아 혼자 조용히 읽었었는데 지금은 조금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그리고 어릴 때의 나는 오늘날 돌이켜 보면 조금은 아니 조금 많이 괴이하기까지 한 이상한 습관들을 몇 개 가지고 있었다. 이게 외동딸이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꽤나 많아 그랬던 거 같기도 한데 여하간 어느 한 때 나의 하루 일과 중 하나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이쑤시개로 브라운관의 픽셀 수를 세는 것이었다. 그 때만 해도 픽셀의 개념은 전혀 알리 없었고 우연히 가까이 다가갔다가 이게 멀리서는 안 보이는데 도대체 무슨 정체지하는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던 듯 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너무 아찔해서 애를 들어다 옮겨 놓고 싶고 막 그런데 요즘 지하철 어디서나 사람들이 스마트폰과 혼연일체 되어 있는 걸 보면 저들은 누가 챙겨주고 염려해주지 싶다.

* 아, 유년 시절 떠올리다가 문득 머리에 스쳐가는 기억이 하나 있다. 거의 십 몇 년을 잊고 있던 것이어서 더 놀라운데 이건 놀이터와 지구에 관련된 엄청난 사건이다. 누군지도 기억 안 나는 소꿉 놀이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놀던 중이었을 거다. 아니면 그거 자체를 계획 삼아서 갔었나. 어떤 애가 놀이터의 흙을 열심히 파다 보면 지구의 가운데 끝이 보이게 된다면서 잘못 건드리면 아마 용암 같은 게 터질거라는 얘기를 흘렸는데 그거에 혹 몇 시간을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동네의 놀이터에 가 삽질(!)해댄 것. 아마 두 세 시간은 족히 팠었을 것이다. 우리가 발견했던 건 땅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배수관이었다. 

 그로부터 안경을 끼고 지낸 게 어연 17년. 워낙 눈이 초고도근시였기 때문에 수술이야 거의 포기하고 지내온 나다. 영상 작업은 물론 원체 평소 컴퓨터를 오래 붙들고 있는 편이라 항상 안구 건조증에서 벗어날 틈 없이 바삐 살아 왔는데 한 달 전 강남의 한 병원을 찾게 되었다. 네이버 배너 광고에서 우연히 링크를 타고 들어갔다가 상담과 정밀 검사가 무료라는 말에 혹했던 것. 집 앞 안과에서 이미 라식이고 라섹이고 모두 안된다고 했으니 사실 어떤 기대도 없이 상담을 신청한 건데 바로 그 날 오후 전화가 왔다. 가능한 일자를 잡아보자며. 이거 정말 무료인건가 싶어 이상했지만 그래 수술도 못한다는데 평생 안경 끼고 살게 되더라도 제대로 된 검사 한 번 받아보지 못하면 억울하겠다 싶어 무작정 다음주 무슨 무슨 요일 오전에 그 곳으로 찾아가겠다고 했다. 

 실은 수술 못할 거라는 확인 사살이 당하기 싫어 여태 피해온 것이었는데 막상 당일에 가니 혹시나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밀려 들었다. 오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50여명의 사람들이 로비에서 다들 검사를 기다렸는데 대기 시간까지 하여 1시간 반 정도가 걸렸던 거 같다. 검사를 모두 마치고 상담사와의 면담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정말 드문 케이스 중 하나인지 이건 의사 선생님과 만나 더 자세히 얘기해보는 게 좋을 것이라며 말을 아끼셨다. 다른 사람들을 다 둘러봐도 나만큼 눈이 안 좋은 사람이 없어 보이는 듯 싶었다. 

 기다림 끝에 전해 들은 말은 기적이라면 기적인 것인데 수술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 다만 왼쪽 눈의 각막이 매우 얇은 편이기 때문에 교정 시력을 낮추어서 해야 할텐데 그렇게 되면 0.8과 1.0 정도의 시력을 예상할 수 있다 했다. 상담 끝에 나를 계속 불안케 만들었던 건 나이가 들어 시력이 다시 나빠지게 되었을 때 재수술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조언도 구해보고 고민을 했지만 17년을 이리 살아왔는데 단 몇 년도 좋으니 안경 없이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간절해졌다.  다시 눈이 나빠진다 해도 성장도 멈춘 상태에서 지금과 같이 -12의 시력까지는 안 내려갔지라는 생각으로 별별 고민들을 다 했던 거 같다. 

 그렇게 일주일 뒤 수술을 하러 강남의 고층 빌딩 숲을 지나 엄마와 동행하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나의 손을 꼭 잡아준게 선명하게 떠오른다. 간단한 검사와 결제 뒤 한 시간 정도의 대기가 있었고 수술을 하러 들어가는데 지난밤까지 수백번 뇌리에 스친 생각이 다시 올라왔다. 혹시나 이게 잘못 되면 어쩌지하는 마음. 마취 약을 눈에 투여하고도 못 미더워서인지 눈을 깜빡이면 어떡하지 싶어 저 아무래도 못하겠어요라고 말하려던 차 모든게 순식간에 진행되어버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수술대 위에 누워 시선을 고정키 위해 정면에 있는 레이저 불빛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데 극장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영화 <지옥인간>의 한 장면이 펼쳐졌다. 주인공이 제 3의 눈 비스무리한 것으로 보게 되는 환영같은 것들이 있는데 수술 내내 레이저 불빛이 분사되는 모양새가 딱 그 장면 같았던 것. 그 와중에 그걸 생각하고 있는 나나 수술을 진행하는 의료진들의 일사불란함 같은 상황이 오묘해 속으로 꽤나 낄낄거렸던 거 같다. 3-4분도 채 안되어 모든게 다 끝난뒤 일어나도 좋다는 말에 어 나 안경도 안 껴서 앞 안보이는 환자(!)인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스레빠를 신고 부축을 받아 나가는데 다음 수술자가 내 옆으로 지나가는 것이었다. 이건 또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한 장면 같네하면서 사이보그 된 기분으로 수술 대기실이었던 곳에 가 앉아서 신발을 갈아신는데 아. 앞이 보였다. 보인다는 걸 그제야 인지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수술하고 3일까지는 뜬 눈으로 밤을 새우는 냥 눈이 너무 시리고 아파서 하루 온 종일 집에 불 끄고 라디오를 벗 삼아 지내다 친구의 전화에 눈물을 폭포수마냥 쏟았다. 2주 차 들어서는 컴퓨터나 핸드폰의 글씨가 보이기 시작하니 신기했는데 이게 컨디션에 따라 어느 순간 시야가 흐려지니 지레 겁을 먹어서 최대한 화면들을 안 봐야겠거니 싶었다. 펄프와 에코앤더버니맨을 주구장창 듣다가 길모어걸스 시즌 1을 틀어 놓고 누워서 듣다 잠들기도 했다. 중학생 때부터 수 없이 봐온 드라마여서 왠만한 내용과 장면들을 보지 않고도 다 기억하는 편인데 이게 눈을 감고 듣기만 하니 그 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컷'으로 드라마가 상상되며 리듬을 혼자 타보기 시작했다.  영화 안 보고 술 안 마시며 지내던 이전의 일상들은 어떠했는가를 생각하며 새로운 감각들을 그렇게 새겨 나갔다. 3주 즈음이 지나자 영화를 못 보는 신세를 한탄하기 시작했고 모든게 너무 서러워졌다. (사실 참다 못해 로메르 영화나 록키 호러 픽쳐쇼를 '듣거나' '멀리서 응시'하곤 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영화는 '극장에서의 영화'.) 영화도 이렇게 못 보는 거 왜 수술을 했나 싶은 마음이 들자 엄마에게 미안함이 들기 시작했고 왜 이렇게 삐뚤어지나 싶었다. 수술 전 미량언니가 그 전까지 봐 온 영화들 떠올리면 되지 않느냐고 이 응석을 다그쳐 주었었는데 매일 사람들을 바삐 만나오다가 어느 순간 빈 틈에 놓여버리니 한 없이 마음이 주저 앉았다. 정말 모든게 환영이거나 기적이었나 싶었을 정도로 머릿속에서 영화의 장면들을 끄집어 올리려 안간힘을 썼던 거 같다. 아벨 강스 영화에서 서커스 단원들이 안개 속에서 나타나 마지막 인사를 하던 모습, 지난 여름 스크린에서 만났던 트뤼포의 영화들, <고스트 월드>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던 할아버지.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 투성이었다.

 시력이 정말 조금씩 더디게 새싹이 자라나듯 나아지니 그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선 나 자신부터 서두르지 말아야 했다. 시야가 뚜렷하지 않으니 꿈 속의 이미지들이 너무도 선명해져 며칠 동안은 꿈에 기가 모두 빨릴 듯이 잠을 설치기도 했다. 하루는 꿈이 나를 잡아 삼키려나 싶을 정도로 자다 깨다를 3번 정도 반복하는데 모두 다 내가 결혼하는 내용의 꿈이었다. 기억은 잘 안나지만 처음의 결혼은 누군지 모르는 이와 식을 올리게 되었는데 일가 친척 친구들 등 많은 이들이 이미 모두 모여 있으니 헛걸음 시키지 않으려면 일단 하긴 해야겠네라는 식으로 생각했던 듯 하다. 그리고 한 번은 눈에서 실핏줄이 초록 나뭇가지로 자라나는 이미지를 보았는데 그 뒤로 마음에 물을 주듯 조금 더 지켜보자고 나를 다독였던 거 같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한 주가 지날 수록 점차 달력의 글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밤에 어지럽게 번지던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들도 어느 정도 수그러든 듯 했다. 4주차에 극장에 가 첫 영화로 <트윅스트>를 보았다. 멀찌감치서 뒷 자리에 앉아 썬그라스를 낀 채 보는데 그 전과 달리 강건너 불구경하는 기분으로 응시하는 기분이었다. 영화의 내용처럼 꿈이 눈 앞에 그려지는 거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 날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실핏줄이 선명하게 터진 걸 보고 또 겁을 먹었다. 하루를 건너 뛰고 푹 숙면을 한 뒤 두 번째로 극장을 찾았는데 그 전보다 나아진 거 같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다시 극장. <아버지를 위한 노래>를 보는데 모든게 선명했다. 영화의 캐릭터나 모든 디테일들이 마음에 들었을 뿐만 아니라 너무 비현실적일 정도로 오롯해서 내가 꿈 속에 들어왔나 싶을 정도로 이상하여 자꾸 스크린 아래 사람들의 뒷통수로 시선을 옮겨보기도 했다.

 어젠 병원에 가 시력 검사를 받고 왔는데 0.7/1.0 정도가 나온다 했다. 그런데 아직 다 회복된 게 아니라며 여기서 더 좋아질 것이라 했다. 당근 잘근잘근 통으로 씹어 먹으며 썬글라스를 낀 채 컴퓨터를 한 보람이 있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멍청이 같다. 오래오래 잘 보살펴 주어야지. 그래서 하루에 영화도 2편으로 제한시켰다. 초록이 많은 숲이나 바다에 가서 3, 4시간씩 눈에 좋은 공기를 쏘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새삼 안경을 쓸 때엔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이 요즘의 나를 매일 설레게 한다. 지금도 머리 감을 때에 물줄기가 타일 위로 떨어지는 그 선명한 광경은 무섭기까지하다. 자꾸 안경을 찾게 되고 그러다 보니 썬그라스를 걸치고 있는 것이 덜 허전하다. 누구는 일본 감독 같다고 하였고 누구는 장님 같다 하였다. 다시 태어난 거 같지 않느냐고 수술을 경험한 친구 몇이 묻는데 정말 그러하다. 지나칠 수 있는 광경과 감정들이 나를 찾아온다. 불안을 지나고 나니 이렇게 봄이 찾아오고 있구나. '광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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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의 시계 종탑이 '끈질기게'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했다. 영화의 도입부는 소설 속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냥 나레이션으로 시작되며 스완 밸리라는 마을의 풍경을 읊어댄다. 나는 이 '끈질기다'라는 어감에서 끈덕진(응고된) 피가 시계 초침에 엉켜있는 모습을 연상하게 되었고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영화라는 단서만을 부여잡은 채 이것이 꽤나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 짐작했다.

 영화는 할 발티모어란 마녀 소설을 쓰는 작가가 스완밸리의 살인 사건과 함께 얽힌 어느 꿈 속으로 우연히 발을 딛게 되며 안개를 걷어내기 시작한다. (사실 어쩌면 안개 뿐이다.) 달이 수놓은듯 부드럽게 화면에 떨어지는 흑백의 꿈 속엔 붉은 핏기 어린 눈 화장을 한 소녀와 모텔, 숲, 죽은 아이들이 등장한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영화 안에서처럼 꿈결이 손에 닿을듯 하며 이것이 현실의 창작으로까지 매게체로 이어진다면 그것만치 이상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왜 근래엔 우디 알렌 할아버지도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꿈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시간 여행을 그리지 않았었던가. 노년의 거장들이 근래 이렇게 꿈과 낭만(!)을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자면 동시대에 사는 이로서 참 행운이 아닐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와중에 아 결국 모든건 다 오래 전 꿈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

 그러나 사실 <트윅스트>가 아쉽게 느껴지는 점은 정말 이 영화가 꿈결에 지나지 않는다는 허망함이 밀려들어서다. 결국 나는 함께 동행할 수 없는 꿈 같다고나 해야 할까. 코엔 형제의 서부극 영화에 나올 법한 건조한 유머가 곳곳에 놓이는 듯 하더니 예상했던 피비린내는 마을 하수구를 조용히 지나고 있는 것인지 도통 새어나오지 않는다.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살인 사건의 피해자인 시체에게서 말뚝을 뽑아내었을 때 피가 분수처럼 솟아나는데 이것마저 나오지 않았다면 극장을 나서고 나서도 뭔가 엉켜있는 듯한 느낌을 덜어내지 못했을 거다. 할 발티모어가 적극 수면제까지 복용해가며 꿈 속으로 돌진해가자 에드가 앨런 포가 꿈에 나타나선 묘한 실마리를 계속 던져주지만 정말 그 뿐이다. 엄청난 위험이 도사릴 것만 같았던 종탑 장면이 가장 맥 빠지는 부분 중 하나였는데 여기선 이 술 주정뱅이 발 킬머(할 발티모어 분)가 트라우마에 에코를 장착했는지 이를 주워 담지 못하고 흘리다 못해 추락하기까지 한다. 설마 이것이 정령 히치콕 영화에 대한 오마주인건가 싶다가 그 느슨하면서도 과한 사운드 효과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정말 할 발티모어라는 인물의 최대 트라우마인 딸의 사고 당시의 음성이 오버랩되면서 종탑 꼭대기를 에워싼다.)

 평소 나 자신의 꿈의 기억을 붙잡으려는 노력들을 미루어 봐서는 코폴라 감독의 이러한 백일몽 이야기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지 몇 몇 코드가 안 맞았던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기묘한 느낌이 도통 떠나지 않는 듯 하기도 하고. 과거 그 자신이 만들어 온 영화들과 달리 독립적인 형태로 또 다른 재미를 찾아나가는 듯 보이는 코폴라 감독. 사실 전작인 <테트로>가 꽤나 좋았기 때문에 이 할아버지가 다음엔 무슨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들려주실지 기대되는 것도 사실. 근래 개봉도 안 하고 영화제에서도 상영하지 않은 이 노장의 작품을 꾸준히 틀어주신 우리 서울아트시네마에게도 무한 애정과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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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스크린을 온통 헤집고 다니던 미후네 도시로의 엄청난 존재감을 상기시키보면 <7인의 사무라이>의 리메이크작인 <황야의 7인>은 나에게 밋밋하기 그지 없는 서부극에 지나지 않았다. 비교를 떠나 무엇보다 내게 석연치 않은 부분은 두 가지 정도가 가장 큰데 하나는 제임스 코번 같은 배우를 데려다 놓고도 그의 눈빛 하나 (혹은 아우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 <석양의 무법자>에서 흰 콧수염 아래로 이빨 까던 (치아라 표기해야 맞지만 어감상 이게 더 와닿는다.) 그의 눈부신 미소가 여기선 그 어떤 마스크의 스펙타클도 찾아보기 힘들다. 가장 먼저 그가 등장했던 칼 던지는 장면에서 모자 아래 숨긴 시선 옆으로 모래 바람 한 줌 쓸고 지나갔더라면 이 섭섭한 마음이 덜하였을까. 

그리고 나는 마을의 지도자라는 사람이 등장한 두 씬 (기억이 맞다면)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첫번째는 마을 농부들이 약탈자들을 두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조언을 구하러 갔을 때. 명색이 지도자라하는 이가 던지는 말이 단지 총을 사라니. 약탈은 이미 마을 전체의 일상을 뒤흔들만큼 큰 영향력과 위협을 가하고 있는 도중이었다. 그런데 지도자라는 이가 그에 대한 대응 방안이라곤 고민해온 흔적이 전혀 보이질 않는 것. 총기를 구매함으로 그에 뒤따를 어떤 위험들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다는 듯 그냥 말을 툭툭 내뱉고는 마지막에서 "Famers always win"이라고 했나 여튼 그 말을 장식하는데 와 부화가 치밀었다. 겉모습만으론 인자한 멕시칸 현자 같이 코스프레하고선 어쩜 오늘날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들과 그리도 닮았는지..  그런 모습을 무게감 없이 그냥 지나쳐 버리는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 감독이 눈 앞에 있다면 따지고 싶었다. 농부들이 조언을 구하러 갔을 때의 장면만큼은 정말 왜 그러셨느냐고!

그나저나 Clash는 설마 정령 여기서 노래의 제목을 따온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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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이불

rewind 2013. 1. 28. 21:51

어느날 그녀에게 다가갔던 그는 자살을 당한채 엉금엉금 기어다니다가 굴러다니는 한통에 발이 까딱 채여 한강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빨랫비누 덩어리들이 그를 먹듯 달려들더니 팬티가 구멍이 나버려 배터리가 방전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불에 있던 강아지는 귀를 후비다 못해 혓바닥을 넣어 지난 가을에 자신이 삼켰던 생선 서른 아홉 마리를 토해 내었고 그것을 불에 콩과 함께 구워 먹더니 생크림을 몽땅 태워버리고 말았다. 새로 들어온 주택가엔 니트가 구름을 대신해 비를 내려주곤 하였는데 스카프와 기린은 그걸 모르고 불도저를 데려와 이들을 모두 앗아가는 것도 모자라 영화를 공짜로 보여주겠다며 꼬득여서는 뉴욕에 커다란 불상을 세우더니 맥주병을 드라이로 말리기 시작하였다. 꼴을 보다 못한 아이는 커서 옆집에 있던 아이가 사는 할머니의 본가에 있던 감나무의 줄기 빛이 되겠다며 매일 때를 밀어 자신의 몸에 광채를 붙이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옥황상제가 공장에 이후 비닐봉지 겹이 눈알을 닦아내는 광경을 보고 비명을 지르면서 폭포에 피가 가득 끓기 시작하고 솜털 이불엔 물이 자라나곤 했다. 콩을 말린뒤 그것들을 모조리 겨울을 말살시키는데 주라 하였지만 누구도 그렇게 하지 못하였으며 앞에 이는 활자들을 하나 하나 꺼내어 씹어 먹기 시작하였고 거기서는 철근 콘크리트 냄새가 났으며 시간은 손톱 위로 떨어지며 머리에서 파도 소리가 나는 기이한 경험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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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이땅

rewind 2013. 1. 28. 18:15


1월 31일까지 바쁜 일들 다 마무리 지어놓고 2월부턴 요이땅 하고 싶은 것들만 하고 살아야지!라는 소망 : 매일 매일 영화 리뷰도 쓰고 한가로운 대형서점에 가 남자 사람도 구경하고 여름에 다 미처 찍지 못한 필름 카메라 속 36롤에 봄이 오기 전 이 시린 겨울을 담은 뒤 배우와 친구들 그리고 카페 사장님을 비롯한 여러 지인들께 졸업 영화 디비디를 돌려야지 에헤라디 쿵기덕 쿵더더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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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당

rewind 2013. 1. 13. 02:14

 요즘 들어 새삼 사람은 '존중' 없이는 살아갈 수 없구나란 생각을 많이 한다. 워낙 사람 편의에 맞게 변해가는 세상인데다 얼굴보다도 핸드폰과 대화하는 시간이 더 잦은 것이 이제는 익숙한 풍경. 상식 밖의 일이 일어난다 해도 멀찌감치 떨어져 보면 체감 할 수 있는 무게와 온도는 제각기 모두 너무 다르다.

이런 고민들로 나날을 보내고 있던지라 누군가에게는 응당 기본적인 예의이자 방식인 것이 오늘처럼 때때로 큰 힘이 되어준다.

낮에 수민오빠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내가 오빠와 친구들의 공연을 촬영했던 영상을 본인의 밴드 페이지에 업로드해도 괜찮겠느냐며 동의와 의사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새삼 상대가 누구건간에 예를 다하는 오빠의 태도에 놀랐던 예전의 경험이 재차 상기. 그리고는 이어 나에게 비디오 업로드와 함께 무슨 호칭으로 기재되고 싶느냐고 물었다. 어떻게 보면 '명명'이다. 잠시 머뭇거리긴 하였지만 앞으론 감독이란 이름으로 더 많은 작업을 하고 싶으니 그렇게 적어달라 하였다. 그리고 집에 와 다시 생각에 잠겼는데 헤아려 보니 '학생'이란 이름으로 지내온 시간들이 인생의 절반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리고 머지않아 한 달 뒤에 있을 '졸업'이란 걸 거치고 나면 어떤 의미에서 나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니게 될런지도 모른다. 어떤 유난일 수도 있겠지만 꽁꽁 얼어붙은 겨울의 한가운데이니 다음 봄이 오기 전까지는 이렇게라도 몸과 생각을 으스스 떨 수 밖에 없겠다. 일종의 이런 기로에 있어 나는 무엇으로 불리우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을 해본다. 사실 그 유난을 내려다 놓고 보면 기로란 것은 매일 매 순간 내가 헤쳐나가는 일상의 연속이다. 스무살 초반엔 어딘가에 소속되거나 무엇으로 규정되고 싶지 않다며 나름의 발버둥을 쳤던 거 같은데 불안은 돌고 돌아 어떤 모습으로든 함께 동행한다. 다만 존중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이를테면 오늘과 같은 일련의 일들로부터. 이런 친구들을 곁에 두고 있는 한, 발 내딛는 곳곳에 행운이 도사릴 것이 틀림 없다. 오늘 하루 웃음을 쏟아 내준 경민에게도 감사를. 사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질질 녹아 내려 어느 순간 굉장히 쑥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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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기억

rewind 2012. 11. 24. 13:54

2012/2/29/해운대


 버스 안에서 미라 언니와 나눈 이야기가 자꾸 떠오른다. '개미 구멍을 한 없이 들여다 보느라 세상의 시간이 흘러가는 줄 몰랐던 유년 시절', 오늘날의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러한 '어느 때'라는 것. 

 내 머리 위로 구름은 흘러 갔고 어느 집에선 저녁 밥 짓는 냄새가 솔솔 새어 나왔으며 엄마는 비디오 가게에 들렸다가 집으로 오는 길 붕어빵을 사 놓으셨었다. 때때로 머리보다 몸이 기억하는 순간들이 더 오롯할 때가 있는데 이따금 풍경과 스크린 안에서 그것을 소환하게 된다.

 요즘은 틈이 나는 대로 한강을 내려다 본다. 201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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