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워홀의 햄버거

rewind 2012. 11. 1. 22:49

<Andy Warhol eating a hamburger>

미리 준비해 놓은 케챱통이 눈에 들어온다. 패티와 빵 사이에 뿌리지 않고 찍어먹는 모양이 왠지 그의 고집인냥 느껴진다. 어렸을 때 피자를 케챱에 찍어먹는 나를 보며 어쩜 그리 외삼촌과 똑같냐며 얘기하시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삼촌의 키는 약 185, 나는 176이다. 돌이켜 보면 초등학생 때 케챱을 참 많이 즐겨 먹었다. 고슬고슬한 밥 위에 올려진 계란 후라이. 거기에 오뚜기 케챱을 찍찍 뿌린뒤  김치라도 한 점 올려 먹는 날이면 정말 횡재한 날이다. 키 크고 싶으신 분들은 이 케챱에 성장판의 비밀이 있을 지도 모르니 한 번 시도해 보시길. (그리고 입 안에 혓바늘 났을 때 케찹 먹으면 심장이 벌벌벌 떨린다.)

그리고 나는 (반드시) 찰진 밀크 쉐이크에 뜨겁고 짭쪼름한 감자 튀김을 찍어 먹는 걸 무척 좋아한다. 롯데리아도 아닌 맥도날드여야 한다. 롯데리아의 쉐이크는 찰기가 덜하다. 채식을 시작한 이후로는 밤새 술을 부어 마시고 첫차를 기다리는 정류장 즈음으로 가끔 들리기만 하는 패스트푸드점. 뭔가 섭섭하니 올해가 가기 전 쉐이크후라이를 한 번 먹으러 가야겠다. 기왕이면 창가가 큰 곳으로. 혜화 맥도날드 2층에 가 넓고 커다란 횡단보도 위 행인들을 구경하며 먹는 것도 좋으리라.

영상에서 보여지는 바에 의하면 앤디 워홀은 햄버거(와퍼)의 맛을 음미하며 먹는 다기보다 도려내거나 조각 내어 입 안으로 집어 넣는 느낌이다. 담담한 표정 가운데 이따금 마주하게 될 대상(관객)과 시선을 마주칠 때면 그 즉시 피해버리는데 여기서 예상치 못했던 감정이 도출된다. 이 자가 분명 오늘 나와 식사를 한 뒤 무슨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거 같은데 그 발화의 순간을 피하는 듯한 인상.

일종의 의식인냥 와퍼를 다 넣은 뒤 그는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다음과 같은 한 마디를 내뱉고 사라진다.

"내 이름은 앤디 워홀이고요. 난 방금 햄버거를 먹었습니다."

무언가를 기대했는 지 몰라도 나는 이내 마음이 서운해진다. 그리고 나도 햄버거는 아니지만 음식을 먹을 줄 알아라고 대꾸하고 싶어진다. 뭐 나는 그렇게 느꼈다고 치자.

이것은 워홀이 아닌 Jørgen Leth라는 덴마크 영화감독의 제안에 의해 촬영된 것이라고 한다. 그는 <66 scenes from america>라는 영화의 장면 중 하나로 햄버거 먹는 장면을 워홀에게 제안했으며 그는 흔쾌히 이에 응했다고 한다. Jorgen은 그의 캠벨 수프와 같은 특정 브랜드들에 대한 고집을 미루어 볼 때 조수가 사다 놓은 햄버거를 마음에 들지 않아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는 "맥도날드는 없냐"고 물었고 그것은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지칭했다 한다.

"All the Cokes are the same and all the Cokes are good. Liz Taylor knows it, the President knows it, the bum knows it, and you know it."

음. 그래?


'rewind'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향 아래의 여자  (2) 2012.11.12
심해  (0) 2012.11.05
액션!  (2) 2012.10.15
<두 개의 문, 2011> 그리고 서울복지필름페스티발  (0) 2012.09.07
결혼  (0) 2012.09.03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