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rewind | 40 ARTICLE FOUND

  1. 2012.11.12 영향 아래의 여자 2
  2. 2012.11.05 심해
  3. 2012.11.01 앤디워홀의 햄버거
  4. 2012.10.15 액션! 2
  5. 2012.09.07 <두 개의 문, 2011> 그리고 서울복지필름페스티발
  6. 2012.09.03 결혼
  7. 2012.08.23 영화 속 영화 5
  8. 2012.08.16 가장 이상했던 여름밤 아침
  9. 2012.08.12 2011년 10월 부산
  10. 2012.08.11 중앙 극장 4

영향 아래의 여자

rewind 2012. 11. 12. 02:13

 어떤 밤은 방 안에 온통 마귀가 들어 차 있다. 내 기억이 닿는 곳마다 신경을 갉아 먹고 이를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이들인데 막으려 하지도, 싸우려 달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내버려 둘 뿐이다. 그런데 또 어떤 밤은 세상의 온기로 발끝부터 머리 정수리까지 가득 차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요 며칠 간의 밤에서 나는 내 안의 파도가 숨 쉬고 있음을 알아챘다. 혹자는 내게 '마음의 털'이 있다고도 했다.

 하루 동안 기분 상태가 수 차례 변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 나는 '이것이 혹 조울증이라는 것인가?'하고 염려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착 가라 앉은 날씨 탓인지 몰라도 그 기복이 이전에 비해 많지 않은 편인데 이를 두고 한 마디 건네주었던 지인이 생각난다. 언뜻 기억을 더듬어 보기로는 "미연, 그건 미연 감정의 스펙트럼이 그만큼 넓기 때문인거지. 조울증은 아니야"라고. 그 날 이후로 난 이 한 마디를 꼭 붙잡아 지난 기억들을 돌이켜 보며 '위안의 시간들'을 지나왔더란다. 운이 좋다면 내일도 모레도 밤을 붙들고 보고픈 이들의 얼굴을 그려볼 것이다. 그리고 운이 좋은 나는 그들과 밤길을 거닐며 바람에 춤추는 낙엽을 보기도 하고, 오지 않은 다른 밤을 그리워 하며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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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

rewind 2012. 11. 5. 17:07


요즘 들어 이 순간이 미친듯이 좋아서 놓치고 싶지 않아서 붙들고 싶어서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런데 그 죽음이 끝이 아니라 이 순간을 영원으로 이끄는 길이라는 직감. 심해 어딘가에 잠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거기는 오히려 안 춥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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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워홀의 햄버거

rewind 2012. 11. 1. 22:49

<Andy Warhol eating a hamburger>

미리 준비해 놓은 케챱통이 눈에 들어온다. 패티와 빵 사이에 뿌리지 않고 찍어먹는 모양이 왠지 그의 고집인냥 느껴진다. 어렸을 때 피자를 케챱에 찍어먹는 나를 보며 어쩜 그리 외삼촌과 똑같냐며 얘기하시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삼촌의 키는 약 185, 나는 176이다. 돌이켜 보면 초등학생 때 케챱을 참 많이 즐겨 먹었다. 고슬고슬한 밥 위에 올려진 계란 후라이. 거기에 오뚜기 케챱을 찍찍 뿌린뒤  김치라도 한 점 올려 먹는 날이면 정말 횡재한 날이다. 키 크고 싶으신 분들은 이 케챱에 성장판의 비밀이 있을 지도 모르니 한 번 시도해 보시길. (그리고 입 안에 혓바늘 났을 때 케찹 먹으면 심장이 벌벌벌 떨린다.)

그리고 나는 (반드시) 찰진 밀크 쉐이크에 뜨겁고 짭쪼름한 감자 튀김을 찍어 먹는 걸 무척 좋아한다. 롯데리아도 아닌 맥도날드여야 한다. 롯데리아의 쉐이크는 찰기가 덜하다. 채식을 시작한 이후로는 밤새 술을 부어 마시고 첫차를 기다리는 정류장 즈음으로 가끔 들리기만 하는 패스트푸드점. 뭔가 섭섭하니 올해가 가기 전 쉐이크후라이를 한 번 먹으러 가야겠다. 기왕이면 창가가 큰 곳으로. 혜화 맥도날드 2층에 가 넓고 커다란 횡단보도 위 행인들을 구경하며 먹는 것도 좋으리라.

영상에서 보여지는 바에 의하면 앤디 워홀은 햄버거(와퍼)의 맛을 음미하며 먹는 다기보다 도려내거나 조각 내어 입 안으로 집어 넣는 느낌이다. 담담한 표정 가운데 이따금 마주하게 될 대상(관객)과 시선을 마주칠 때면 그 즉시 피해버리는데 여기서 예상치 못했던 감정이 도출된다. 이 자가 분명 오늘 나와 식사를 한 뒤 무슨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거 같은데 그 발화의 순간을 피하는 듯한 인상.

일종의 의식인냥 와퍼를 다 넣은 뒤 그는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다음과 같은 한 마디를 내뱉고 사라진다.

"내 이름은 앤디 워홀이고요. 난 방금 햄버거를 먹었습니다."

무언가를 기대했는 지 몰라도 나는 이내 마음이 서운해진다. 그리고 나도 햄버거는 아니지만 음식을 먹을 줄 알아라고 대꾸하고 싶어진다. 뭐 나는 그렇게 느꼈다고 치자.

이것은 워홀이 아닌 Jørgen Leth라는 덴마크 영화감독의 제안에 의해 촬영된 것이라고 한다. 그는 <66 scenes from america>라는 영화의 장면 중 하나로 햄버거 먹는 장면을 워홀에게 제안했으며 그는 흔쾌히 이에 응했다고 한다. Jorgen은 그의 캠벨 수프와 같은 특정 브랜드들에 대한 고집을 미루어 볼 때 조수가 사다 놓은 햄버거를 마음에 들지 않아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는 "맥도날드는 없냐"고 물었고 그것은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지칭했다 한다.

"All the Cokes are the same and all the Cokes are good. Liz Taylor knows it, the President knows it, the bum knows it, and you know it."

음.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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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rewind 2012. 10. 15. 19:50
 

 5회차로 예정되어 있었던 학교 후배의 졸업 영화 촬영이 무사히 4회차로 마무리 되었다. 붐 마이크를 들고 아스팔트 위에 맨발로 서 핸드헬드 카메라를 따라 뒷걸음질 치는데 길가에 스며든 새벽 공기가 몸의 이곳 저곳에 옮겨 붙더니 결국 경미한 감기 몸살에 걸렸다.

 철도길 옆에서 노을을 맞으며 마지막 씬 촬영을 하는데 난니 모레티 감독의 <빨간 비둘기>가 생각났다. 매해 부산을 찾을 때마다 서울역에서 마주하던 풍경에서 <가족의 탄생>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듯 언젠가 나도 영화에서 등장인물을 모두 한 데 모아 내가 손 흔드는 모습으로 마무리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벽 1시경이 되어서야 뒷풀이를 하러 돈암에 갔다. 닭한마리 집에 들어가 모두가 소주를 한 잔씩 기울이는데 그 앞에서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 두 어 시간이 지났을까. 다들 노곤한 몸에 취기가 찾아 들어 웃음을 흘려댔다. 종필 선배를 두고 양조위를 운운하는 이들에게 눈을 째렸다. 새삼 체감하는 것이지만 결국 영화라는건 내가 가보지 못한, 가늠할 수 없는 어떤 이들의 삶을 엿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끄럼 많은 줄로만 알았던 후배가 연출하는 모습을 보며 그의 얼굴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들을 감지했다. 그리고 무척이나 황홀했다. 매일 밤 촬영이 끝나고 집에 들어 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는데 미미한 소음이 찾아들 때마다 머릿속으로 "아, 잠시만요"라는 말이 불쑥 찾아들었다. 그 어둠 속에서 누군가 "액션"을 외쳐주기를 기다리다 한참을 잠을 설쳤다. 

 그리고 얼마전 내 시나리오를 두고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코멘트 해주었던 어느 선배의 말과 벨라 타르 감독의 인터뷰 글을 함께 떠올렸다. 부산을 다녀온 뒤 지속적으로 날 지탱해주고 밀어 붙이는 생각은 내가 지나 온, 믿었던 영화들에 대한 확신과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지의 영화들에 대한 꿈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영화의 소품으로 사용되었던 꽃다발 두 개를 품에 한 가득 안고 있으니 기사님께서 무슨 좋은 일이 있냐고 물으신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내리게 되는 상황에서 자초지종을 얘기하던 차에 아저씨의 보물 1호인 LP 1천 장에 대해 전해 들었다. 갑자기 또 신이 나 밤 산책을 더 할까 했지만 택시비가 없어 마음을 접어야 했다. 꽃다발 하나를 건네드리니 내일 아침 아내가 식탁에 놓여있는 걸 보면 좋아하겠다며 기쁘게 받아주셨다. 이렇게 그 곳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201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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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대 시네마테크에서 오늘 6일부터 토요일인 8일까지 '서울복지필름페스티발(http://swff.tistory.com)'이 열린다. 영화 한 편당 티켓이 2천원으로 이는 모두 쌍용 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용산 참사 부상자들을 위한 기금으로 쓰인다고 한다. 사실 오늘 개봉 이래 관람을 미루어 온, 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 했던 <두개의 문, 2011>을 보았다. 우연히도 참사가 일어났던 당시 2009년 1월 나는 용산에 출근을 하고 있었다. 휴학을 한뒤 고등학교 때부터 활동해온 청소년 언론사에서 취재 기자로 사무실에 나가기 시작한지 한 달 즈음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고가 일어난 용산 남일당은 그 사무실로부터 약 2, 3블럭 떨어진 근방에 위치해있었다. 다음날 무슨 일이 닥칠 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그 날 남일당 건물 일대에 전경들이 모여들고 있으며 누군가 돌을 던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중대 병원 앞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면 바로 그 건물로 가는 골목이 보였지만 길목에는 돌맹이가 군데군데 있었고 사람들의 통행을 제한하는 듯 했다. 무언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지만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건지 사건의 발단을 알 방도가 없었다. 그러다 철거민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다음날 아침 출근하는 길 그 곳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얘길 들었다. 엄청난 무기력함에 휩싸였다.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이자 형제가 하루 아침 사이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나버린 것이다. 영화에서의 진술들에 따르면 사건 당일 저녁까지도 시신들의 행방은 물론 신원까지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아마 구타의 흔적이나 여러가지를 신속히 은폐하기 위해 경찰 쪽에서 시신들을 각기 다른 병원의 영안실들로 빼돌렸을 거라는 것.

  <두 개의 문>이 개봉함과 동시에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지인들에게 관람을 권유하였지만 막상 나는 기억의 저편 뒤로 숨어 있었다. 그 날의 먹먹함과 공포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 무언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내 안에서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비로소 오늘에야 그 날을 다시 마주하고 나니 오히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단단해진 기분이다. 보는 내내 너무 화가 나 이를 악 물고 눈물을 참았는데 가장 무서웠던 것은 불길에 휩싸인 망루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동료가 죽은 것이 '농성자들' 때문이라고 말하는 경찰 특공대원의 한 마디였다.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이지 자신에게는 그 어떤 상황에 대한 이해와 본능적인 생명 위협에조차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하나같이 입 모아 말하는 이들. 철거민 유가족들을 변호하는 이마저도 일개 대원이 진압을 유보해야 하지 않느냐고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이에게 말하는 것이 쉽게 허용되지 않는, 소통의 구조적 문제가 특공대 내부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공권력이라 자행되는 모든 폭력의 시발점이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곤봉으로 두들겨 패고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며' '성공적인 진압을 했다'고 말했던 계급 높은 이들. 무엇이 그들을 약자들 위에 군림해도 된다고 말하는지 너무도 화가 나고 무섭다. 가장 인간으로서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먹고 사는 문제' 앞에 우리가 왜 목숨을 담보로 내놓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이를 무기력함에 젖도록 방치할 것이 아니라 마주 보는 것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이다. 12월 대선 때까지 영화 <두개의 문>을 극장과 공동체 상영 그리고 IPTV를 통해 지속적으로 상영할 예정이라 하는데 더욱 많은 이들이 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애써 마음을 다독이지만 아직 부단히 갈 길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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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rewind 2012. 9. 3. 02:24

 내가 태어난지 7개월 되었을 당시 엄마와 나에겐 이웃이 있었다. 잦은 출장으로 아빠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셨기 때문에 아직 만삭 상태였던 그 이웃을 비롯해 이후 다른 새댁들과 엄마는 꽤 절친한 친구 사이로 오랜 시간을 보내셨다. 지금이야 다들 사는 곳도 다르고 바빠 연락을 많이 못하지만 자녀들이 또래의 나이였던데다 동네가 같았던 만큼 인근 초등학교를 함께 다녔고, 아마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하여도 망년회를 함께 여시는 등 대부분의 시간들을 함께 보냈던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 어머니들을 자연스레 이모라 부르며 자랐고, 키도 훤칠하니 음식을 가리지 않는 내게 이모들은 밥상 앞에서 본인의 자녀가 채워주지 못하는 것들을 대신 만족하시곤 하였다. 때문에 "많이 먹어", "우리 미연이는 어쩜 그리 복스럽게 먹니"라는 말이 늘 끊이지 않았고 지금의 넉넉한 식성은 아무래도 그 때로부터 기인한 듯 하다. 지금 이 글을 끄적이게 된 것은 엄마로부터 전해 들은 한 이모의 자녀 그러니까 나의 초등학교 동창의 소식을 듣고서다. 7개월 이상 차이로 늦게 태어난 아이는 줄곧 나를 언니라 부르며 지내다가 빠른 년도생으로 함께 국민학교에 입학했었다. 그러더니 대뜸 어느 날부터 이모의 말대로 친구 먹으라며 "야"라고 부르기 시작해 내가 기분이 못내 상해있던 것이 중학생 때까지도 계속 되었었다. 그런 친구가 7살 많은 남자친구로부터 청혼 비스무리한 것을 제안 받은 모양이다. 친구의 어머니인 이모는 엄마를 붙들고 이 늦은 새벽까지 속상한 마음을 털어 놓으셨다 한다.

 오늘 낮 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본 뒤 지인과 '결혼'에 대해 잠시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 장건재 감독의 <잠 못드는 밤, 2012>이었는데 그녀는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을 보며 누군가와의 동행하는 삶을 꿈꾸고 싶다 하였고 나는 오히려 그렇지 못할 것만 같다는 반응이었다. 부부 2년 차에 아이를 가질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는 현수(김수현)와 주희(김주령)는 함께 자전거도 타고 별을 보는 등 함께 나란히 놓여 있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이 느껴지는 이들이다. 특히 주희 역을 맡으신 배우의 나긋나긋한 음성과 애정 어린 표정이 가져다 주는 느낌이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만든다. 그러나 각자의 무의식이 담긴 꿈 속에서 이따금 불안이 스며 나오는데 여기서만큼은 사소한 다툼 한 번 없었던 그들에게 말 한마디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서로를 향해 달려들다 못해 조여온다. 롱테이크로 보여지는 이 장면에서 두 배우의 호흡이 너무도 놀라웠는데 때문에 더 옴싹달싹 못하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사실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가늠하지 못하는 것이 특히 가족과의 감정이다. 하물며 부부란 오랜 시간을 각자 다른 환경과 사람들 속에서 자라 온 이들인데 이것이 울타리 안에 놓여 버리니 얼마나 많은 것들이 깎이고 떨어져 나가며 또 보태지겠는가. (뭐 다른 경우들도 있을테지만 내가 그리는 결혼의 이미지 안에서는) 근래 돐을 막 지나온 사촌 언니네의 조카 딸을 보노라면 어림조차 되지 않는 누군가와의 삶이 기대되는 면도 한 편 물론 있다. 아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디엔가 자라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치만 모르겠다. 모를 수 밖에 없다. 내년 봄 즈음 졸업하는 동시에 그 친구의 청첩장을 받게 되면 난 기분이 어떨까. 운동화는 안되겠지. 그 생각부터 먼저 드네.

 아. 지금 또 생각이 났는데 오늘 카톡으로 좋아하는 언니의 청첩장을 받았다. 지난 여름 즈음부터 하여 간간이 이 커플의 모습을 지켜봐온 나로서는 마음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마냥 마음이 예쁘고 맑아 보이는 언니여서 그리고 배우자가 되실 분도 무척 좋아보이셔서 부럽다. 그 날은 좋아하는 이들로 북적북적거리며 모두들 한탕 거나하게 취해있을 것이다. 영화 촬영 도중이라 마음 한 구석은 붕 떠 있을테지만 가을에 이런 피로연이라니. 아, 또 사람 일은 모르는 건가. 아, 가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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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영화

rewind 2012. 8. 23. 02:07


 동네 카페에서 자리를 잡아 졸업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내가 있던 구역이 마감할 시간이 되었다고 하여 주문대 앞으로 자리를 옮겨왔는데 갑자기 누군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초,중학교를 함께 나온 한 때는 둘도 없는 사이라 생각했던 친구다. 굉장히 반가워하는 기색에 나 예뻐지지 않았냐며 여기서 무엇 하느냐고 묻는 그 아이. 그 때처럼 여전히 당차고 거침 없는 말투를 지녔다. 멋쩍은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나는 그대로지?"라고 물으니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바로 "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리고는 이어 "살이 너무 많이 쪘어."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하자 작가냐며 묻는다. "어, 아니 아직 학생이야. 졸업 영화 준비해." 대뜸 양 손으로 하이 파이브를 청하더니 열심히 하란다. 그리고는 언제 한 번 같이 밥을 먹자며. 지나 온  '관계'를 두고 이전 같지 않은 마음과 상황들에 대해 시나리오를 쓰고 있던 참이었다. 그 때의 시각과 장소의 타이밍도 참 기가 막히지. 마치 내가 키보드로 적어 나가던 글에서 튀어나온 상황 같음에 쓴 웃음을 흘렸다. 아마 그 친구와 난 함께 밥을 먹을 일이 없을 테지. 카페 안을 온통 너털웃음으로 채우던 그 친구는 그렇게 오빠들 무리와 함께 기척 없이 사라지고 없다. 밴드 Gong의 노래들을 2시간 반째 반복해서 듣고 있다.  김밥 한 줄로 저녁을 떼워 그런지 허한 속을 음악이 채워주고 있는 기분이다.

2012년 8월 23일 새벽 2시


- 오늘은 2학기 수강 신청을 했다. 이렇게 여름방학도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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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미 소리가 온 도시를 채우고 구름들은 서둘러 몸을 옮긴다.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부딪히고 메아리가 되어 내 주변을 온통 감싸고 있는 듯 했다. 신촌에서 이대로 넘어가는 횡단보도 앞, 구름 떼를 발견하고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불이 다시 한 번 바뀌었을 때 딛고 있던 발을 떼는데 순간 이대로 세상 어느 끝에 이르러 낭떠러지와 같은 곳으로 말려 들어가도, 혹은 내가 산산조각이 나도 전혀 이상할 거 같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가까운 두려움은 아니었지만 마치 다른 너머로 이미 가 있는, 또 다른 내가 그 짐을 안고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듯 했다. 가장 이상했던 7월 30일 여름밤 아침 7시 14분


동이 틀 때까지 술을 이빠이 마시는 날은 세상이 요동치는 기분이다. 이 날 조르주 들뢰르의 새 소리나는 음악을 들으며 하늘을 올려다 보는데 거짓말처럼 비둘기들이 춤을 추었다. 사진은 그 전 날 오후 종로 낙원상가 옥상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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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부산

rewind 2012. 8. 12. 16:17



 부유하고 있는 기억들을 붙잡으려 단어와 낱말을 더듬고 있다. 그러나 결국 잡히지 않을 것이고 애써 헛되지 않은 것이라 날 위로할거다.

 문득 깨닫았다. 지금 나는 여기 혼자 오롯이 존재하고 있음을. 앞과 위로 손을 뻗어 보면 기억과 사람들의 뿌리가 있다. 언제든 지켜줄테지. <알마이에르의 광기>를 보며 흙에 묻혀 있어야 할 뿌리가 홍수로 인해 수면 밖에 떠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댓썸머>와 <집시>도 그랬다. 그런데 연약한 그들을 스크린 너머에 두고 나는 세상의 모든 온기가 내게로 다가옴을 느꼈다. 물론 한차례 진통도 있었다.

 그러나 이만치 온 감각이 곤두선 것이 얼마만이던가. 시야가 맑으며 응집된 기분. 모든 것을 바로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사랑의 확신'. 이 확신의 기원은 아마 2번째인가 3번째 날 본 영화에서 빌려온 것인데 그를 맞닥뜨리는 순간 직감했다. 한낮 착각이라도 무척 살아있는 이 느낌이 좋다. 지나온 기억들을 유희하며 혼자 자위할 망정 이게 청춘이구나 싶네. 한반도를 가로 지르고 있다.

2011년 10월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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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극장

rewind 2012. 8. 11. 02:41

 중앙 극장에서의 첫 기억은 무려 10년도 더 지난 90년 경 초반으로부터다. 엄마, 큰엄마, 두 살 어린 사촌 동생과 함께 <마누라 죽이기>라는 작품을 봤었다. 달리 나와 사촌동생을 맡길 곳이 없었던 것인지, 두 어머니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그 영화를 함께 보러 가서는 이건 너희가 볼 영화가 아니라며 자꾸만 손으로 우리의 눈을 가리시곤 했다. 얼마전 스크린에서 만나 그 감회가 새로웠던 배우 박중훈씨와 이미 유명을 달리하신 고 최진실씨 그리고 엄정화씨가 나오는 불륜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으로 얼핏 기억한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장면은 최진실씨가 식칼을 들고는 어느 주방에서 박중훈씨를 죽기 살기로 쫓았던 모습이다. 그것이 내가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에 대한 기억이다.

 10대가 되고 나서 종종 그 곳을 찾긴 했지만 <마누라 죽이기>를 보았던 곳이란 사실을 알게 된 건 기껏해야 3, 4년전이다. 처음 영화를 본 극장이라는 사실만으로 뭔가 항상 내 과거에 자리 잡아있는, 그러나 실제하는 모래궁전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이 5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시대라는 파도에 휩쓸린다고 한다. 오피스 빌딩이 새로 들어설 것이라 하니 지금의 중앙극장은 내 가슴만이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다소 담담한 마음으로 극장을 향하던 중 가장 최근 그 곳에서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함께 보았던 두 고교 동창 친구들에게 극장에 관한 소식을 문자로 전했다. 그제야 조금 더 실감이 났다. 캔커피와 간단한 저녁거리로 스낵을 사들고 6시 반 <인 디 에어>와 8시 35분 <시>를 예매했다.

 <인 디 에어>를 보며 얼마 전 꿈에 나와 내 마음을 뭇 설레게 했던 조지 클루니의 매력을 새삼 다시 깨닫고, 베라 파미가에게선 나도 저렇게 아름다운 미소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착착 배기지(baggage)를 꾸리며 흠 하나 없어 보이던 남자가 신발끈마냥 조금씩 느슨해지는데 내 마음도 녹아들더라. 그리고 난 16대 9의 영화 스크린의 프레임만 섹시한 줄 알았더니 항공 마일리지 카드라는 물체가 그리 매끈할 줄이야.아, 나도 부유(浮遊)하고 싶어라.

 영화가 끝난 뒤 극장 로비에 나와 보니 관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극장의 마지막 상영일에 일부러 찾아온 관객들이려나하고 내심 반가워했다가 가운데 꾸려진 시사회 테이블을 보곤 아..차 싶었다. 최근 찾았던 시사회들에서 상영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도 입장하는 관객들이라던가, 크레딧이 올라가기도 전에 극장을 나선다던가하는 불편한 일들에 데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뭐 어떤 이유로든 극장에게는 반가운 일일터, 괜한 편견과 심술에 사로잡힌 내가 우습게 느껴졌다.

 <시>. 8시 35분. 제법 관객들이 들어 차있었다. 영원한 순간이었으면 했지만 역시나 크레딧이 올라가고 내 손은 이미 현실로 돌아가는 핸드폰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조금 아까 들이킨 캔커피때문인지 온 몸의 감각들이 곤두서있었다. 자꾸만 손 끝을 매만지고 꼬았던 다리를 풀기를 반복했다. 극장 안의 모든 것이 너무도 선명해보여 그것이 도리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영화에 담그고 있다가도 곧 모든게 끝나버릴 순간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안절부절했다. 극장에서 나와 이미 빈, 어두컴컴한 다른 상영관에 들어가 한참을 앉아 생각했다. 미자씨가 나무를 바라보며 그 나무에 대해 생각했듯 나도 극장에 대해서 마음을 기울여보았다. 저 어딘가에 6살의 내가 앉아있었겠지하면서. 그리고 19살, 20살, 21살의 내가 앉아있었을 곳들. 수 없이 스쳐 지나갔을 이들의 체취와 기억들. 그 곳에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어연 마흔 살을 먹었다는 중앙 극장. 문이 닫힌 뒤 한참동안 밖을 서성이는 데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변변한 카메라 하나 챙겨오지 못한 나는 누군가에게 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할까하다가 이내 다가온 두 여성분에게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모 대학에서 언론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인데 사라지고 있는 극장들에 대해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들어 알게 된 '바다 극장'이란 곳은 이미 지난 주에 폐관을 했다고 한다. 6월에 꼭 가봐야지하며 핸드폰에 가는 약도까지 알아두어 메모했었는 데 이미 가볼 수 없는 곳이 되버렸다. 인터뷰를 하던 중 올라오는 감정을 주체 못하고 생전 모르는 여자 둘 앞에서 주책 맞게 눈물을 흘렸다. 나중에 좀 더 얘기를 나눠 보니 나와 동갑이라고 했다. 내가 존댓말을 계속 이어나가니 그들도 똑같이 해주었다. 새삼 지금 우리 나이가 사회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이렇게 예를 갖추게 되는 어른이 되었구나 싶어 기분이 이상했다.

 아침 등굣길에 올랐던 202번 버스에 또 다시 몸을 싣었다. 한동안 감정을 추스리다가 오늘 이 날을 기억할 매개체로 아이팟에서 음악 몇 개를 골라 들었다. 쿨의 추억이 오는 날. Otis Redding의 Sitting on the dock of the bay. 그리고 집에 도착해 한동안 엄마와 포옹을 했다. 왜 오늘 같이 극장에 가서 내 눈을 가려주지 않았느냐고 심술을 부렸다. 아, 이젠 얼마나 더 많은 상실을 겪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 심술로서 해결된다면 나는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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