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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rewind 2012. 9. 3. 02:24

 내가 태어난지 7개월 되었을 당시 엄마와 나에겐 이웃이 있었다. 잦은 출장으로 아빠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셨기 때문에 아직 만삭 상태였던 그 이웃을 비롯해 이후 다른 새댁들과 엄마는 꽤 절친한 친구 사이로 오랜 시간을 보내셨다. 지금이야 다들 사는 곳도 다르고 바빠 연락을 많이 못하지만 자녀들이 또래의 나이였던데다 동네가 같았던 만큼 인근 초등학교를 함께 다녔고, 아마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하여도 망년회를 함께 여시는 등 대부분의 시간들을 함께 보냈던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 어머니들을 자연스레 이모라 부르며 자랐고, 키도 훤칠하니 음식을 가리지 않는 내게 이모들은 밥상 앞에서 본인의 자녀가 채워주지 못하는 것들을 대신 만족하시곤 하였다. 때문에 "많이 먹어", "우리 미연이는 어쩜 그리 복스럽게 먹니"라는 말이 늘 끊이지 않았고 지금의 넉넉한 식성은 아무래도 그 때로부터 기인한 듯 하다. 지금 이 글을 끄적이게 된 것은 엄마로부터 전해 들은 한 이모의 자녀 그러니까 나의 초등학교 동창의 소식을 듣고서다. 7개월 이상 차이로 늦게 태어난 아이는 줄곧 나를 언니라 부르며 지내다가 빠른 년도생으로 함께 국민학교에 입학했었다. 그러더니 대뜸 어느 날부터 이모의 말대로 친구 먹으라며 "야"라고 부르기 시작해 내가 기분이 못내 상해있던 것이 중학생 때까지도 계속 되었었다. 그런 친구가 7살 많은 남자친구로부터 청혼 비스무리한 것을 제안 받은 모양이다. 친구의 어머니인 이모는 엄마를 붙들고 이 늦은 새벽까지 속상한 마음을 털어 놓으셨다 한다.

 오늘 낮 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본 뒤 지인과 '결혼'에 대해 잠시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 장건재 감독의 <잠 못드는 밤, 2012>이었는데 그녀는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을 보며 누군가와의 동행하는 삶을 꿈꾸고 싶다 하였고 나는 오히려 그렇지 못할 것만 같다는 반응이었다. 부부 2년 차에 아이를 가질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는 현수(김수현)와 주희(김주령)는 함께 자전거도 타고 별을 보는 등 함께 나란히 놓여 있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이 느껴지는 이들이다. 특히 주희 역을 맡으신 배우의 나긋나긋한 음성과 애정 어린 표정이 가져다 주는 느낌이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만든다. 그러나 각자의 무의식이 담긴 꿈 속에서 이따금 불안이 스며 나오는데 여기서만큼은 사소한 다툼 한 번 없었던 그들에게 말 한마디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서로를 향해 달려들다 못해 조여온다. 롱테이크로 보여지는 이 장면에서 두 배우의 호흡이 너무도 놀라웠는데 때문에 더 옴싹달싹 못하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사실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가늠하지 못하는 것이 특히 가족과의 감정이다. 하물며 부부란 오랜 시간을 각자 다른 환경과 사람들 속에서 자라 온 이들인데 이것이 울타리 안에 놓여 버리니 얼마나 많은 것들이 깎이고 떨어져 나가며 또 보태지겠는가. (뭐 다른 경우들도 있을테지만 내가 그리는 결혼의 이미지 안에서는) 근래 돐을 막 지나온 사촌 언니네의 조카 딸을 보노라면 어림조차 되지 않는 누군가와의 삶이 기대되는 면도 한 편 물론 있다. 아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디엔가 자라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치만 모르겠다. 모를 수 밖에 없다. 내년 봄 즈음 졸업하는 동시에 그 친구의 청첩장을 받게 되면 난 기분이 어떨까. 운동화는 안되겠지. 그 생각부터 먼저 드네.

 아. 지금 또 생각이 났는데 오늘 카톡으로 좋아하는 언니의 청첩장을 받았다. 지난 여름 즈음부터 하여 간간이 이 커플의 모습을 지켜봐온 나로서는 마음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마냥 마음이 예쁘고 맑아 보이는 언니여서 그리고 배우자가 되실 분도 무척 좋아보이셔서 부럽다. 그 날은 좋아하는 이들로 북적북적거리며 모두들 한탕 거나하게 취해있을 것이다. 영화 촬영 도중이라 마음 한 구석은 붕 떠 있을테지만 가을에 이런 피로연이라니. 아, 또 사람 일은 모르는 건가. 아, 가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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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단지 <네 멋대로 해라>를 만들고 있을 때 내가 매우 정확한 어떤 것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릴러 영화나 갱스터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처음 그 영화의 프린트를 보았을 때 나는 내가 만든 영화가 추측하고 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스카페이스의 아들>이나 <돌아온 스카페이스>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이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았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 너는 문제가 있어, 친구, 라고 말했다.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지켜보아야 한다. 그래서 내가 두 번째 영화를 시작했을 때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영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해, 꿈꾸는 것이 아니야, 라고. 그래서 아마 그 때문에 나는 항상 ㅡ 심지어 영화 속에서도 ㅡ 이것은 영화이다, 꿈이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 고다르 X 고다르, 고다르 : 인생과 영화는 차이가 없다 P.56



주문처럼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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