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혹은 보고 있다.

그들의 표정에서 권태를 읽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력감은 아니었다. 이내 그들은 노래에 맞추어 흥겹게 몸을 들썩였고 그림을 그렸으며 열심히 사랑을 나누었다.

그녀는 사내들의 마음에 모두 하나같이 외로움이 있다 하였지만 그것뿐이겠느냐.

허영과 욕심도 가득할테다. 그건 나와 다르지 않다.

3시간 중 절반은 영화를 꿈꾸었고 절반은 그들과 같이 취해 있었다.

다시 또 만나겠지.

AND

풍경의 기억

rewind 2012. 11. 24. 13:54

2012/2/29/해운대


 버스 안에서 미라 언니와 나눈 이야기가 자꾸 떠오른다. '개미 구멍을 한 없이 들여다 보느라 세상의 시간이 흘러가는 줄 몰랐던 유년 시절', 오늘날의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러한 '어느 때'라는 것. 

 내 머리 위로 구름은 흘러 갔고 어느 집에선 저녁 밥 짓는 냄새가 솔솔 새어 나왔으며 엄마는 비디오 가게에 들렸다가 집으로 오는 길 붕어빵을 사 놓으셨었다. 때때로 머리보다 몸이 기억하는 순간들이 더 오롯할 때가 있는데 이따금 풍경과 스크린 안에서 그것을 소환하게 된다.

 요즘은 틈이 나는 대로 한강을 내려다 본다. 201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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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 아래의 여자

rewind 2012. 11. 12. 02:13

 어떤 밤은 방 안에 온통 마귀가 들어 차 있다. 내 기억이 닿는 곳마다 신경을 갉아 먹고 이를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이들인데 막으려 하지도, 싸우려 달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내버려 둘 뿐이다. 그런데 또 어떤 밤은 세상의 온기로 발끝부터 머리 정수리까지 가득 차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요 며칠 간의 밤에서 나는 내 안의 파도가 숨 쉬고 있음을 알아챘다. 혹자는 내게 '마음의 털'이 있다고도 했다.

 하루 동안 기분 상태가 수 차례 변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 나는 '이것이 혹 조울증이라는 것인가?'하고 염려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착 가라 앉은 날씨 탓인지 몰라도 그 기복이 이전에 비해 많지 않은 편인데 이를 두고 한 마디 건네주었던 지인이 생각난다. 언뜻 기억을 더듬어 보기로는 "미연, 그건 미연 감정의 스펙트럼이 그만큼 넓기 때문인거지. 조울증은 아니야"라고. 그 날 이후로 난 이 한 마디를 꼭 붙잡아 지난 기억들을 돌이켜 보며 '위안의 시간들'을 지나왔더란다. 운이 좋다면 내일도 모레도 밤을 붙들고 보고픈 이들의 얼굴을 그려볼 것이다. 그리고 운이 좋은 나는 그들과 밤길을 거닐며 바람에 춤추는 낙엽을 보기도 하고, 오지 않은 다른 밤을 그리워 하며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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