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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17 프랑수아 트뤼포의 <마지막 지하철, 1980>



마지막 지하철, 1980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다. 극장 안이 어둠으로 가득 차고 영화가 시작되는데 왠지 축축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오랜 시간 지하실에 갇혀 지내야 했던 남 주인공에 대한 어슴푸레한 기억 때문이리라 짐작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영화 속에서도 비가 내렸다. 마치 상영관 위층으로 올라가면 까뜨린 드뇌브가 좀 전의 연기가 어땠느냐며 물어올 것만 같은 착각에 사로잡혔다. 상영이 끝난뒤 일전 이수에 있던 극장에서 <누들>이란 영화를 봤을 때의 기억이 올라왔다. 꼬마 남자아이가 엄마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여행 트렁크 가방 안에 들어가는 장면이 있었더란다.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고 난 뒤 텅 빈 상영관에 앉아 있는데 문득 내가 트렁크 가방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었다. 무한히 샘솟는 희망을 안고 어디로든 떠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 <마지막 지하철>은 보고 나자 극장 안이 엄청난 고독감에 휩싸인 느낌이었다. 언젠가 집에서 조그만 모니터로 보았던 영화와 동일한 것이라기엔 감흥의 여파가 너무도 다름에 또 한 번 놀랐다. <이웃집 여인>의 경우 연소해버린 잿더미 속 같았다면 이는 마지막 장면이 암시하는 불길함으로 인해 스크린 너머에 미처 꺼뜨리지 못한 혹은 꺼뜨릴 수 없는 불씨를 두고 극장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무대 연극 연출가 뤼카 스타이너(헤인즈 베넨 분)는 남 배우 베르나르(제라르 드빠르디유 분)에게 아내 마리옹(까뜨린 드뇌브 분)이 그에 대해 어느 정도 마음이 있음을 첫 만남에서 넌지시 대화를 통해 전한다. 내내 흔들림 없이 강인해 보이기만 하던 마리옹이 남편 뤼카가 거처하고 있던 지하실을 독일군이 수색하려 하자 베르나르에게 도움을 청한 때다. 붉은 화장과 옷에 흐트러짐 없는 머리와 눈빛으로 무장한 그녀는 남편의 빈 자리를 대신해 굳건히 극장을 지켜나가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남편에게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 마음 속으로 불안과 처절히 싸우고 있는 그녀의 그림자가 보인다. 앙트완 드와넬 연작에서 보여진 트뤼포 감독에 대한 인상은 재기발랄한 캐릭터와 상황들을 유희하듯 능수능란하게 다룬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지하철>을 포함해 <이웃집 여인>, <부드러운 살결>과 같은 작품에서 그는 놀랍도록 감정의 결을 촘촘히 쌓아 올린다. 끓는점 직전까지 치고 올라가는 그 여정을 보노라면 정말 경이로운 감정의 환희를 앓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메리카의 밤>에서 촬영장 곳곳에 상주하고 있는 뜨개질 할머니라도 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모든 상황을 치밀하게 계산 하에 두고 가는 것인지 아니면 배우들의 호흡에 맡긴 부분이 더욱 큰 것인지에 대한 여러 궁금증들 때문이다. 만일 과거로 돌아가 까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나 혹은 그 도처에 있는 인물이 될 수 있다면 트뤼포 다음으로 최근 들어 역시 이러한 의문들로 나를 자극 시킨 자크 로지에 감독에게 <오루에 쪽으로>의 연출 비화를 묻고 싶다.


 다시 <마지막 지하철>로 돌아와 마리옹이 감춰왔던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을 꼽아보면 베르나르가 레지스탕스를 위해 떠난다며 짐을 챙기던 때다. 아마 그 전에도 둘 사이의 미세한 제스쳐들이 몇 차례 있었던 걸로 짐작한다. 예로 그가 여자들의 손금을 봐주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리옹의 곁눈질 시선 등이 그러할테다. 지하로 새나가는 남편의 귀동냥 없이 온전히 둘만 방에 있게 되면서 처음으로 밀회를 즐긴다. 그리고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재회하게 된 둘. 배경은 병원으로 베르나르는 부상자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녀와 눈조차 마주치지 않는다. 극장을 떠난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는 여인을 옆에 두고 텅빈 눈빛을 띄고 있다. 이전의 모습은 간데 없이 비로소 둘만의 사랑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며 애정을 구하는 마리옹. 그녀가 남편으로 추정되는 이의 부재를 전하는 순간 나와 관객 모두는 이제 새로운 연인들의 앞날이 시작되는가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뤼카가 연출한 연극의 일부였음을 깨닫게 된다. 어떻게 된 연유인지 생각해 볼 여력도 없이 지상으로 올라 온 뤼카가 무대 위로 올라 관객들에게 소개되고 박수를 받는다. 여기서 마리옹은 잠시 주춤하다 두 남자 사이에서 양 손을 잡고 인사를 올린다.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감정이 있음을 인지했던 상황, 그러니까 지하에서 지내던 중에 쓰여졌을 것으로 짐작되는 작품이 좀 전의 우리가 착각할 뻔 했던 모습인 것이다. 800여 일간 폐쇄된 공간에서 지내는 상상을 해보았다. 아마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 할 지라도 수 만번이고 엄청난 고독과 싸우며 무너지는 과정을 온 몸에 아로새겼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박수 치며 환영하는 뤼카의 모습은 너무도 말쑥하며 그 누구도 그가 지나온 시간들을 가늠해보기 힘들다. 아내의 곁에 다른 남자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것을 당사자 앞에서 조금의 미동도 없이 말한다는 것은 본디 뤼카의 성격에서 기인한 것도 있을 지 몰라도 이미 수 차례 그의 상념들 속에서 손으로 지면으로 그리고 무대 위로 향할 준비를 하며 떠나가고 있었기 때문일테다. 너무 과민하게 받아들였는지 몰라도 마지막 장면에서 이 감정의 누수를 목도한 순간 <마지막 지하철> 또한 파국을 향하는 <이웃집 여인>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그들은 과연 마지막 지하철을 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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