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빨간 비둘기 | 1 ARTICLE FOUND

  1. 2012.08.12 난니 모레티의 <빨간 비둘기, 1989>


 연습을 거부하자 더 깊은 물에 빠뜨리겠다고 불호령을 내리는 수영 코치의 말에 꼬마 미켈레는 다른 종목을 찾아가겠다며 스스로의 자유 의지를 매우 강력히 주장한다. 아이는 수년 후 자신의 운명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는지 몰라도 어머니의 말대로 수구 선수로 성장하며 유년 시절의 결기를 고스란히 지닌 채로 공산당의 대표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교통 사고를 당한 미켈레는 기억 상실증에 걸린 채로 자초지종을 챙길 새도 없이 수구 시합이 열릴 수영장에 놓이고 만다. 경기가 열리는 내내 끊임 없이 케익 따위를 들고 따라다니는 의문의 두 남자, 가정사를 운운하는 스포츠 여 기자, 현자로부터 답을 구하려는 양 매달리는 남자 등 여러 사람이 그에게서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싶어 잠시도 가만두지 않는 상황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유년기와 청년 시절의 드문드문한 기억 몇 개가 용케 그를 찾아온다.

 "어제는 아팠지만 오늘은 괜찮지?",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끌려온 듯한 어떤 아이가 수영장에서 헤엄을 치는 동안 한 어머니가 소리치는 장면은 그것들 중 하나로 영화의 전반적인 맥락과 매우 맞닿아 있다. 얼떨떨한 상황에 처해있는 그를 다짜고짜 선수들이 타고 있는 버스에 납치하듯 태우는 장면부터가 그러하다. 이러한 정황들로 인해 시합과 온전치 못한 일상을 오가며 그는 '종잡을 수 없는' 혼란의 중심에 선다. 유유히 헤엄을 치다가도 물이 너무 깊다며 소리를 질러 장 내 청중들 모두가 그를 다독이는 다소 어처구니 없는 상황까지 연출될 정도.

 이렇게 줄곧 청년과 소년의 기억를 오가며 행동을 달리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에게서 큰 수상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미스터리라면 미스터리다.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이 수상해 보이는게 난니 모레티식 코미디의 매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예로 시합을 판가름 낼 마지막 골을 던지려는 찰나 난데없이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을 보기 위해 경기장 내 바 앞의 조그만 텔레비전으로 관중 모두가 몰려든다. 마치 지구의 종말이라도 지켜보는 것처럼 선수들까지 수면 위로 하나 둘 올라오는데 그 모습이 꽤나 기이한 것이다.

 영화 전반의 배경이 되는 수영장의 모습 또한 미켈레와 마찬가지로 변화무쌍하다. 그가 사고 이후 가장 먼저 맞닥뜨린 그 곳의 모습은 마치 요람 혹은 놀이동산처럼 보여진다. 아이스크림과 컵케익 그림 광고판들이 뗏목처럼 흐르더니 잔뜩 긴장이 서린 표정으로 양팔을 올리고 둥둥 떠다니는 게 흡사 개구리를 연상케 하는 선수들이 지나간다. 경기에 탄력을 받은 선수들이 힘차게 물을 거슬러 가는 모습에선-특히 고속 촬영으로 연출된- 수영장 특유의 냄새가 몸에 배긴 듯한 착각에 들 정도로 청량함이 가득하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온 신경을 기울이며 쾌재를 부르다가 자신을 추종하는 열혈 지지자(!)를 귀찮다고 밀어내더니 경기 끝나고 먹는 피자 맛에 자신이 여태 이 자리에 와 있는 거 같다고 하는 남자. 과거 파시스트라며 비난했던 친구에 대한 자신의 처사를 반복 상기하며 이를 전면 부정했다가 이내 자괴감에 빠지고 마는, 선거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 진 당의 대표. 영화의 후반부에 이를 수록 공황 상태에 놓여 있던 그가 조금씩 기억과 해답을 되찾아가는 것처럼 언뜻 보인다. 그러나 어디로 향할 지 모르는 공처럼 전개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던 중 맞닥뜨린 엔딩은 다소 가볍게 넘기기엔 어딘지 모를 서늘함이 느껴지며 기묘하다.

 <빨간 비둘기>는 감독의 청소년 시절 이탈리아 수구 대표팀에 뽑히기도 했다는 이력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본의 아닌 자아 찾기 여정 안에서 최근작인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에 이르기까지 연기와 연출, 각본, 배급을 도맡으며 자신만의 화법대로 영화 안에서 정치를 풍자해온 모레티다. 종종 이탈리아의 우디 알렌이라 불리우는 그의 속사포도 매력적이지만 차창 너머 꼬마 아이들에게 혀를 내밀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 모습은 엉뚱하면서도 귀엽기 이를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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