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

암중모색 2015. 4. 28. 01:20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를 두고 다시 생각을 짚어본다. 선택의 연속으로 사건에 놓이고 그것으로 관계나 가치관을 지켜나가는 방식은 좌지우지 될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온전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묻기엔 막상 정해진 답도 없지. 실수는 반복되며 잘못은 당신을 가리킬 수도 있고 혹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 허공을 향해 있을 수도 있겠다. ㅎ언니는 결국 최초의 선택은 '태어나고자 하는 것'이라 하였고 ㅇ는 돌아가신 신해철님의 말을 빌어 '태어나는 것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삶 자체는 결국 덤으로 얻는 보너스라고 했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서 그리고 더 이상 직장이라는 규율에 매여있지 않게 되면서 '선택'의 연속이라는 굴레에 빠져버렸다. 어느 날은 정신을 잃고 어푸어푸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친구가 옷자락을 손으로 집어 올리더니 여기 물, 무릎까지밖에 안 와하며 구제해주었다. 유유하게 부유하고 싶은데 균형을 잡았다 싶으면 시도 때도 없이 급물살이 밀려온다. (갑자기 <라이프 오브 파이>가 떠오르네.)

 영화 <폭스캐쳐>를 통해 스스로의 내면을 돌보지 않는 이의 최후를 또 한 번 목격한다.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존 뒤퐁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고자하는 이다. 그런 그가 눈에 띈 마크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을 때 이 레슬러는 형에 대한 열등감에서인지 앞뒤도 재보지 않고 한달음에 그의 부름에 응답한다. 영화 전체가 전쟁 게임 혹은 흙탕물에서 뒹구는 동물들을 보는 기분이 들었는데 창 밖으로 멀리서 오는 차를 슬쩍 내려다보며 주시하는 시선이나 매섭게 솟아있는 존의 콧날을 보면 흡사 독수리의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불어난 근육을 스스로도 감당 못해서인지 엉거주춤 걷는 모양새가 영장류를 떠올리는 마크는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낮은 자세를 취하며 눈치를 보기 일쑤. 자신을 선보이는 자리에서 존은 레슬러 마크에게 쓰여진 연설문을 낭독하게 한다. 그리고는 명사들에게 소개시키길 새 장난감이나 또 하나의 무기를 자랑하듯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고 매번 입으로 상표를 갖다 붙인다. 이 게임의 불운을 예견했던 대목은 존과 어머니가 어린 시절(유년기)에 가지고 놀았던--아마 한 때 굉장히 아꼈을--기차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는 장면이다. 아동 박물관에 기증하면 어떻겠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그는 이제 자신과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한다. 비단 장난감 하나를 두고서 하는 말뿐만이 아니라 탱크에 총이 없다는 이유로 화를 낸다거나 하는 정황을 미루어 볼 때 그는 모든게 자신의 통제 하에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완벽주의자로도 보인다. 연설장으로 가는 헬기 안에서 독수리가 (날 수 없는) 영장류에게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게 만든답시고 악을 쓰며 집착을 부리는 것은 어떠했나.

 그런 그가 마크에게 처음으로 화를 내는 장면에서의 대사는 아마 "you stupid, ape"이었다.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는 말들(horse)이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먹고 배설하는 것 뿐이라며 폄하했던 존은 스스로를 조류학자라 칭하는 자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에 비하면 ape, 영장류는 말과 마찬가지로 땅에만 발을 딛는 동물인지라 하찮고 열등한 것에 지나지 않았을 터. 본인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동물을 곱게 못 보는 것이다. 왜소한 체구를 지녔기에 더더욱 상대를 정복하는 모양새인 스포츠 종목에 목을 맸을 지도 모르겠으나 그게 어떻게 또 하필 '레슬링'이란 계기로 흘러갔던 것인지도 궁금하다. (실제 뒤퐁의 이야기를 전해 들어보니 당시 폭스캐쳐 농장에는 레슬러 외에도 수영이라던가 여타 스포츠 종목들의 선수들에게 50여채의 집을 제공했었다고 한다.)

 유년기는 어느 한 때이지만 그것은 살아가는 내내 늘 마음 속을 배회할 것이다. 저마다의 생각을 지켜나가는 방식 또한 끝도 없이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맹신하는 것만큼 두려운 것도 없기에 늘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기를 소망한다. 감정의 결에 손을 얹어보는거다. 일련의 사건들을 대하고 있는 태도와 감정의 미동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볼 수 있다. 시간은 /  겹겹으로 쌓여있어 / 뒤돌아 볼 수도 있지만 / 기억을 통해 현재의 나와 마주하게 할 수도 / 혹은 / 오지 않은 시간들을  / 어렴풋이  ///// 내다볼 수도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선택은 오롯이 스스로의 몫이겠지만 모두가 건강하게 그렇게 차근차근 나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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