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는 사이 딸애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멀리 가 버린 걸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뭔가를 바로잡아야 할 시기를 바보처럼 그냥 흘려보낸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한 거라곤 연단이 올려다보이는 이곳에 앉아 남들이 엿들을지도 모를 말들을 가만히 손으로만 매만지면서 침묵을 키운 것뿐이다. 하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 할 수 없는 말, 해서는 안 되는 말. 이제 나는 어떤 말에도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이런 말을 도대체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 누가 들어주기나 할까. 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말. 주인이 없는 말들.

김혜진, 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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