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과 이름을 모르는 사람의 죽음을 추모하는건 어떤 의미일까. 무수한 죽음과 탄생들이 매일, 매순간 교차하지만 우리는 누군가의 상실을 위로하고 어떤 식으로건 공감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지만 감히 그 고통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쉽사리 위로의 말을 꺼내지 못하고 혼자 묵혀두는 때가 더 많다. 어제는 운명치곤 혹독한 하루였다. 나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를 준비하며 가장 친한 친구 어머니의 작고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생일 축하하는 자리를 친구집에서 갖기로 해 이미 열댓명의 사람들을 초대한 후였다. 파티를 취소할까도 했지만 친구는 어차피 친척집에 가게 되어 자리를 비울 것이기에 그러지 말라 했다. 5일간의 출장 끝에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소식을 접한 다음날이자 내 생일잔치인 날 아침 친구 집에 갔다. 혼자 사는 친구 집에 다행이 친척 한 명이 와 있었다.

적막이 가득한, 슬픔에 잠긴 그 공간은 몇 시간 내로 누군가의 삶이 계속되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자리로 채워질 참이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몰라 너무 괴로웠지만 일상이란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파티를 하며 새로 이사 온 도시에서 관계를 맺게 된 한 명, 한 명에 스스로를 비추어보면서 어느 때보다도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꼈다. 죽는다면 그 감각은 소멸되는 것인지 ‘죽는다는 감각’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다.

파티 다음날 친척과 친구집에서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온 친구를 기다렸다. 그는 어제부터 줄곧 나를 볼 때마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하며 미안하다 했다. 방금 엄마를 잃은데다 그와 혈육들 누구도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상태인데 어떻게 나를 챙겨줄 수 있는지.. 놀랍도록 침착한 그의 상태에 당혹스러웠다. 친구를 포함해 누나가 두 명이 더 있지만 자녀 누구도 장례에 참석하지 못해 아버지 혼자 모든걸 준비하고 있었다.

나의 생일은 다음이고 내일이고 언제든 축하하면 되지 지금 너가 나를 챙겨줄 그게 아닌데.. 싶으면서도 마침 돌아온 세월호 9주기가 떠올랐다. 재난은 일상을 여러모로 송두리째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당연히 올 줄 알았던 미래도 계속 될 것이라 여겼던 평범함들도 모두 앗아가버린다. 그 아이들과 어른들은 알았을까. 내년 그들의 생일엔 본인들이 자리할 수 없을 거란걸. 

1년 새에 두 국가와 도시를 경유해 겪은 우울과 고독 끝을 지나오며 스스로가 '생존'해내고야 말았다고 느낀다. 그래서인지 올해 이렇게 생일을 맞이 할 수 있음을 축하하고, 받고 싶었다. 내년 생일도 이렇게 무사히 맞이할 수 있을까? 왜 우리는 이토록 일상과 재난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사회를 살아가게 된 걸까.

얼마 전 이슬아 작가의 수필집에서 그가 학생들과 세월호를 기억하는 자리에서 바다에 가라앉은 모든 이들의 이름을 적는 작업을 했다는 걸 읽은 적 있다. 누군가에게 평생에 걸쳐 불려왔을 이름들. 이름으로 불리고 기억될 그들의 존재.

9년이 지난 후에야 제대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읽어보았다. 모니터 화면으로 스크롤을 자꾸 내려도 삼백명이 넘는 이름이 조금도 줄지 않았다. 한 학교의 한 학년 학생들이 통째로 사라지는 말도 안되는 사고였다. 그 외 설레는 마음으로 배에 몸을 실었을 여행객들과 일하러 다녀온 뒤 다시 만나게 될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을 세월호의 선원과 직원들. 칠흑같이 어두운 두려움과 죽음 속으로 헤엄쳐 들어간 잠수사와 죄책감을 견뎌내지 못해 사고 이후 운명을 달리한 이들도 있다.

오늘 온종일 친구 곁을 지키며 어머니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셨는지 물어 함께 듣는 시간을 가졌다. 배고프다하면 밥을 먹고 울다가 낮잠도 자고 다시 차를 끓이는 일상이란 시간이 무엇인지 애도가 무엇인지 연습하고 수행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의 이름은 타라. 타라가 부디 고통 없이 잠들었기를 그리고 나의 친구 알리가 너무 힘들어하지 않도록 보살펴주시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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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X 월드>

암중모색 2020. 10. 29. 17:20

출처 :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etc&mra=bkEw&pkid=68&os=10240485&query=%EC%9B%B0%EC%BB%B4%20%ED%88%AC%20X-%EC%9B%94%EB%93%9C%20%ED%8F%AC%ED%86%A0

 

영화가 시작하며 '시월드'라는 얘기에 시어머니로부터 고통 받는 여성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여기서 '시어머니'와 '여성'이라는 단어를 선택하게 된 순간적인 의식의 흐름을 짚어보고 싶다. 엄마는 즉 나를 낳고 기르고 보호해주는 데에 헌신한 이로서 '여성'과 '개인'이라는 정체성보다 '엄마', '모성'이란 것으로 대체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몇 년전부터 엄마 대신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반면 시어머니는 어떠한가. 한국 드라마에서 그들은 홧병의 근원이자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는데 한 역할하는 이들이다. 우리 엄마의 시어머니만 해도 내가 태어났을 때 '여자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눈물을 보이셨다고 한다. 당시 엄마가 받으셨을 상처에 비할 데 없지만 이는 이따금씩 잊을만하면 나를 울컥하게 한다. 내 탄생이 축하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런 대우를 받아야 했을 엄마 곁에 '지금의 내가' 있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서다. 보통 시월드에서 나쁜 역은 시어머니가 도맡아 하는 데다 시아버지는 '며느리 사랑'을 시전하거나 막상 중요한 때에는 꽁무니 빼버리는 얄미운 대상이기에 이 빗나감에 당황했다. 언제, 어디까지 여성들은 악역을 자처해야 하나. 주입 된 K-드라마 공화국의 서사에 물든거 같아 괜히 민망하고 화가 났다.

 

주인공 최미경은 오래 전 사고로 남편을 여의고 12년째 '시아버지'를 보필하고 있다.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어렸을 때 매일 같이 "엄마, 그냥 아빠랑 이혼하면 안돼?"라며 마치 구멍가게에 가서 과자 사오는 일처럼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양 묻곤 했던 그 때의 마음 같았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그를 보필 할 시가 친척이 미경만이 아님을 안 순간에는 배신감마저 느꼈다.

 

'큰며느리의 업보'였다.

 

나의 큰엄마도 이모도 최근까지 그 굴레에 있었다. 남편을 잃고도 '도련님들'을 도와 제삿상을 차리고 설겆이 일을 했던 큰엄마는 최근에 먼 교외로 이사를 가셨고, 시댁 근처에 살며 도통 집 근처를 벗어나지 못했던 이모의 시아버님은 불과 몇 달 전 돌아가셨다.

 

미경의 시월드는 시아버지의 갑작스런 '독립 통보'로 흔들린다. 12년을 함께 살아 온 한 식구인데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었을 지는 상상할 수 밖에 없다. 시아버지는 방 안 냉장고에 생라면을 넣어두고는 곳곳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며 본인만의 세상을 구축하신 듯한 분이다. 면의 숙성도와 쫄깃함을 높이기 위한 고단수의 노하우이신걸까. 때때로 '창문'을 넘어다니는 모습을 보노라면 여러 세상을 넘나 드는 듯한 기이함까지 느껴진다. 요양원에 계신 우리 할아버지는 아흔 다섯의 나이에 치매를 앓고 계시다. 사랑하는 손녀인 나를 때때로 기억해내시기도 하지만 대게는 늘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그 때 그 때 떠오르는 파편들을 헤집고 다니신다. '노인'이 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나는 과연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어른이 되면>을 연출한 장혜영 감독의 노랫말이 습관처럼 생각나는 요즘이다.

 

딸 한태의는 방문 하나 없는, 열린 공간에서 그 둘과 함께 기거한다. 여지껏 평생 내 방 한 칸 가져보지 못한 이로서 그 고충을 알기에 할아버지가 '방 문'을 떼어버렸다는 대목에서 나는 거의 발작 직전 수준이었지만 막상 그는 크게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미경이 말하는 것처럼 그녀는 참 낙천적이다. 카메라 뒤에 숨어 그 고민들을 안 보여주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갑작스런 '독립'에 대해 여러가지 경우를 떠올려보다가도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라며 카메라를 돌려버리는 그의 행보에는 머뭇거림이 없다. 여리고 힘든 미경이 기댈 수 있도록 하고자 함일까. 두 모녀의 관계를 보며 어느 때 보다도 '반려자'라는 단어가 또렷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 수록 눈물이 많은 엄마를 어느 순간부터 안아주게 된 나의 모습도...

 

영화에서 둘은 두 번의 결혼식에 동행한다. 카메라를 든 딸 태의는 엄마의 모습을 멀찌감치서 바라본다. 여전히 결혼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는 소녀처럼 맑고 진심을 다해 축하해주고자 하는 그녀의 눈망울을 클로즈업한다. 두 번째 결혼식에서 미경은 부부가 된 이들을 보며 "둘이 닮으면 오래 산다던데"라고 말한다. 영화 초반에 미경과 그의 남편의 범상치 않았던 신혼 시절 사진들이 순간적으로 오버랩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두 사람, 참 예쁘고 근사했는데 그러면서 말이다.

 

카메라는 대게 집 안 곳곳에 놓이거나 엄마를 밀착해 따라 다닌다. 워낙 연예인들의 일상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이 일상이기에 누군가의 집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카메라는 집의 전경을 담기 위해 높이 매달리지도 그렇다고 삼각대 위에 균형을 잡는 등의 계산이 느껴지지 않는다. 무심코 밥상 위에 올려놓는 핸드폰처럼 그들의 일상의 일부처럼 놓일 뿐이다. 그러나 엄마의 뒷모습을 비추거나 프레임 안에 감독이자 등장인물인 딸 한태의가 '들어가' 대화를 시도함으로 서사가 전개될 때에는 감정적인 '사건'과 '시선'이 발생한다. 마치 이것이 부재한 아버지의 시선인 듯 말이다. 카메라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며 감독이 카메라를 들게 된 시작점이 궁금해진다.

 

둘은 낙관의 힘으로 결국 새로운 보금자리를 갖춘다. 그리고 함께 처음 '선택한 가족'으로 강아지 '호주'를 맞아들인다. 타지에 사는 오빠와 빔 프로젝터로 화상 통화를 나누며 새로운 방식의 유대를 찾아가기도 한다. 시월드로부터 성큼 걸어 나와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미경에게 태의는 더 없이 근사한 동반자다. 나의 엄마 그리고 이모, 큰엄마. 더 많은 이들에게 이 영화가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다양한 여성 개인들의 서사가 더 많이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도 든다.

 

 

 

* 표현이 다소 완화된 부분의 버전으로 오마이뉴스에 기고

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688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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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함

암중모색 2020. 3. 4. 01:04

"우리 개개인은 다 멀쩡한 사람이야. 문제가 없어. 근데 넷이 모이니까 비교가 되잖아. 너는 그냥 원래 그 시간에 일어나는데 늦게 일어나는 애가 돼버리잖아. 그리고 너는 원래 네 속도가 있는데 느린 애가 되고. 나는 성질 급한 애가 되고. 그게 우리의 문제였어. 비교."

"Each one of us is a fine person. No problem. But it becomes comparable just because the four people are gathered. You just wake up at time you usually do, but it makes you as a person who wake up 'late'. Your own rhythm becomes 'Slow person', and i become impatient person. That was our problem. Comparison."

 

요즘 들어 개개인의 표현 방식과 온도 차에 대해 자꾸 고민하게 된다. 분명 그럴 '의도'는 아니었을 텐데 너무나 다른 경험치와 배경을 가지고 자라 온 각자에게는 어떤 때에 그것이 상처가 되기도 한다. 3개월 간 심리상담을 통해 스스로를 한 개인으로서 돌아볼 수 있는, 너무나 근사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는 타인이 그리고 내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모습 간의 간극이 많이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동시에 견제하게 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나의 '기대치'다. 어디까지나 나를 기준 삼아 상황과 맥락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그 '기대치'를 줄이고자 함은 관계를 놓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타인을 내 기준과 상황에 맞추게 될까봐서다. 그냥 그러려니 넘겨짚을 줄 아는 것도 필요하고 예민하게 감각을 곧추 세울 때도 물론 필요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것을 단지 '너 너무 예민한 것 아니야'라는 말로 상대의 겹겹이 쌓여온 시간을 뭉개려고 해서도 안 될 것이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그렇게 서로 맞추어 나가고 실패하면서도 자꾸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 요즘은 그렇게 파도를 타고 있다.

 

These days, I think of how people express themselves and what the temperature difference is. It certainly wasn't an intention, But sometimes it hurts each one who has grown up with so many different experiences and backgrounds. For last three months, getting the psychological counseling, I had wonderful time looking back on myself as an individual. Now, the way people and I find myself seems to stop a gap step by step. At the same time, I try to keep my ‘expectation’ of others in check. We can only realize the circumstances and context based on ‘myself’. The reason why I try to lower that ‘expectation’ is not giving up the relationship. I got to know I sometimes put the others to my standard and circumstances. (Well. I know we can’t help it, but..) We need to let it go and also keep our sensitivity at the same time. But we should not flatten someone’s layered times by just saying “You’re too Sensitive”. We try to coexist and fail all the time. But the mind want to keep it. That’s how I surf on the waves now.

 

2019.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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