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 아래의 여자

rewind 2012. 11. 12. 02:13

 어떤 밤은 방 안에 온통 마귀가 들어 차 있다. 내 기억이 닿는 곳마다 신경을 갉아 먹고 이를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이들인데 막으려 하지도, 싸우려 달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내버려 둘 뿐이다. 그런데 또 어떤 밤은 세상의 온기로 발끝부터 머리 정수리까지 가득 차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요 며칠 간의 밤에서 나는 내 안의 파도가 숨 쉬고 있음을 알아챘다. 혹자는 내게 '마음의 털'이 있다고도 했다.

 하루 동안 기분 상태가 수 차례 변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 나는 '이것이 혹 조울증이라는 것인가?'하고 염려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착 가라 앉은 날씨 탓인지 몰라도 그 기복이 이전에 비해 많지 않은 편인데 이를 두고 한 마디 건네주었던 지인이 생각난다. 언뜻 기억을 더듬어 보기로는 "미연, 그건 미연 감정의 스펙트럼이 그만큼 넓기 때문인거지. 조울증은 아니야"라고. 그 날 이후로 난 이 한 마디를 꼭 붙잡아 지난 기억들을 돌이켜 보며 '위안의 시간들'을 지나왔더란다. 운이 좋다면 내일도 모레도 밤을 붙들고 보고픈 이들의 얼굴을 그려볼 것이다. 그리고 운이 좋은 나는 그들과 밤길을 거닐며 바람에 춤추는 낙엽을 보기도 하고, 오지 않은 다른 밤을 그리워 하며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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