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을 거부하자 더 깊은 물에 빠뜨리겠다고 불호령을 내리는 수영 코치의 말에 꼬마 미켈레는 다른 종목을 찾아가겠다며 스스로의 자유 의지를 매우 강력히 주장한다. 아이는 수년 후 자신의 운명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는지 몰라도 어머니의 말대로 수구 선수로 성장하며 유년 시절의 결기를 고스란히 지닌 채로 공산당의 대표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교통 사고를 당한 미켈레는 기억 상실증에 걸린 채로 자초지종을 챙길 새도 없이 수구 시합이 열릴 수영장에 놓이고 만다. 경기가 열리는 내내 끊임 없이 케익 따위를 들고 따라다니는 의문의 두 남자, 가정사를 운운하는 스포츠 여 기자, 현자로부터 답을 구하려는 양 매달리는 남자 등 여러 사람이 그에게서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싶어 잠시도 가만두지 않는 상황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유년기와 청년 시절의 드문드문한 기억 몇 개가 용케 그를 찾아온다.

 "어제는 아팠지만 오늘은 괜찮지?",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끌려온 듯한 어떤 아이가 수영장에서 헤엄을 치는 동안 한 어머니가 소리치는 장면은 그것들 중 하나로 영화의 전반적인 맥락과 매우 맞닿아 있다. 얼떨떨한 상황에 처해있는 그를 다짜고짜 선수들이 타고 있는 버스에 납치하듯 태우는 장면부터가 그러하다. 이러한 정황들로 인해 시합과 온전치 못한 일상을 오가며 그는 '종잡을 수 없는' 혼란의 중심에 선다. 유유히 헤엄을 치다가도 물이 너무 깊다며 소리를 질러 장 내 청중들 모두가 그를 다독이는 다소 어처구니 없는 상황까지 연출될 정도.

 이렇게 줄곧 청년과 소년의 기억를 오가며 행동을 달리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에게서 큰 수상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미스터리라면 미스터리다.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이 수상해 보이는게 난니 모레티식 코미디의 매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예로 시합을 판가름 낼 마지막 골을 던지려는 찰나 난데없이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을 보기 위해 경기장 내 바 앞의 조그만 텔레비전으로 관중 모두가 몰려든다. 마치 지구의 종말이라도 지켜보는 것처럼 선수들까지 수면 위로 하나 둘 올라오는데 그 모습이 꽤나 기이한 것이다.

 영화 전반의 배경이 되는 수영장의 모습 또한 미켈레와 마찬가지로 변화무쌍하다. 그가 사고 이후 가장 먼저 맞닥뜨린 그 곳의 모습은 마치 요람 혹은 놀이동산처럼 보여진다. 아이스크림과 컵케익 그림 광고판들이 뗏목처럼 흐르더니 잔뜩 긴장이 서린 표정으로 양팔을 올리고 둥둥 떠다니는 게 흡사 개구리를 연상케 하는 선수들이 지나간다. 경기에 탄력을 받은 선수들이 힘차게 물을 거슬러 가는 모습에선-특히 고속 촬영으로 연출된- 수영장 특유의 냄새가 몸에 배긴 듯한 착각에 들 정도로 청량함이 가득하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온 신경을 기울이며 쾌재를 부르다가 자신을 추종하는 열혈 지지자(!)를 귀찮다고 밀어내더니 경기 끝나고 먹는 피자 맛에 자신이 여태 이 자리에 와 있는 거 같다고 하는 남자. 과거 파시스트라며 비난했던 친구에 대한 자신의 처사를 반복 상기하며 이를 전면 부정했다가 이내 자괴감에 빠지고 마는, 선거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 진 당의 대표. 영화의 후반부에 이를 수록 공황 상태에 놓여 있던 그가 조금씩 기억과 해답을 되찾아가는 것처럼 언뜻 보인다. 그러나 어디로 향할 지 모르는 공처럼 전개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던 중 맞닥뜨린 엔딩은 다소 가볍게 넘기기엔 어딘지 모를 서늘함이 느껴지며 기묘하다.

 <빨간 비둘기>는 감독의 청소년 시절 이탈리아 수구 대표팀에 뽑히기도 했다는 이력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본의 아닌 자아 찾기 여정 안에서 최근작인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에 이르기까지 연기와 연출, 각본, 배급을 도맡으며 자신만의 화법대로 영화 안에서 정치를 풍자해온 모레티다. 종종 이탈리아의 우디 알렌이라 불리우는 그의 속사포도 매력적이지만 차창 너머 꼬마 아이들에게 혀를 내밀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 모습은 엉뚱하면서도 귀엽기 이를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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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극장

rewind 2012. 8. 11. 02:41

 중앙 극장에서의 첫 기억은 무려 10년도 더 지난 90년 경 초반으로부터다. 엄마, 큰엄마, 두 살 어린 사촌 동생과 함께 <마누라 죽이기>라는 작품을 봤었다. 달리 나와 사촌동생을 맡길 곳이 없었던 것인지, 두 어머니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그 영화를 함께 보러 가서는 이건 너희가 볼 영화가 아니라며 자꾸만 손으로 우리의 눈을 가리시곤 했다. 얼마전 스크린에서 만나 그 감회가 새로웠던 배우 박중훈씨와 이미 유명을 달리하신 고 최진실씨 그리고 엄정화씨가 나오는 불륜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으로 얼핏 기억한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장면은 최진실씨가 식칼을 들고는 어느 주방에서 박중훈씨를 죽기 살기로 쫓았던 모습이다. 그것이 내가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에 대한 기억이다.

 10대가 되고 나서 종종 그 곳을 찾긴 했지만 <마누라 죽이기>를 보았던 곳이란 사실을 알게 된 건 기껏해야 3, 4년전이다. 처음 영화를 본 극장이라는 사실만으로 뭔가 항상 내 과거에 자리 잡아있는, 그러나 실제하는 모래궁전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이 5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시대라는 파도에 휩쓸린다고 한다. 오피스 빌딩이 새로 들어설 것이라 하니 지금의 중앙극장은 내 가슴만이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다소 담담한 마음으로 극장을 향하던 중 가장 최근 그 곳에서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함께 보았던 두 고교 동창 친구들에게 극장에 관한 소식을 문자로 전했다. 그제야 조금 더 실감이 났다. 캔커피와 간단한 저녁거리로 스낵을 사들고 6시 반 <인 디 에어>와 8시 35분 <시>를 예매했다.

 <인 디 에어>를 보며 얼마 전 꿈에 나와 내 마음을 뭇 설레게 했던 조지 클루니의 매력을 새삼 다시 깨닫고, 베라 파미가에게선 나도 저렇게 아름다운 미소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착착 배기지(baggage)를 꾸리며 흠 하나 없어 보이던 남자가 신발끈마냥 조금씩 느슨해지는데 내 마음도 녹아들더라. 그리고 난 16대 9의 영화 스크린의 프레임만 섹시한 줄 알았더니 항공 마일리지 카드라는 물체가 그리 매끈할 줄이야.아, 나도 부유(浮遊)하고 싶어라.

 영화가 끝난 뒤 극장 로비에 나와 보니 관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극장의 마지막 상영일에 일부러 찾아온 관객들이려나하고 내심 반가워했다가 가운데 꾸려진 시사회 테이블을 보곤 아..차 싶었다. 최근 찾았던 시사회들에서 상영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도 입장하는 관객들이라던가, 크레딧이 올라가기도 전에 극장을 나선다던가하는 불편한 일들에 데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뭐 어떤 이유로든 극장에게는 반가운 일일터, 괜한 편견과 심술에 사로잡힌 내가 우습게 느껴졌다.

 <시>. 8시 35분. 제법 관객들이 들어 차있었다. 영원한 순간이었으면 했지만 역시나 크레딧이 올라가고 내 손은 이미 현실로 돌아가는 핸드폰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조금 아까 들이킨 캔커피때문인지 온 몸의 감각들이 곤두서있었다. 자꾸만 손 끝을 매만지고 꼬았던 다리를 풀기를 반복했다. 극장 안의 모든 것이 너무도 선명해보여 그것이 도리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영화에 담그고 있다가도 곧 모든게 끝나버릴 순간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안절부절했다. 극장에서 나와 이미 빈, 어두컴컴한 다른 상영관에 들어가 한참을 앉아 생각했다. 미자씨가 나무를 바라보며 그 나무에 대해 생각했듯 나도 극장에 대해서 마음을 기울여보았다. 저 어딘가에 6살의 내가 앉아있었겠지하면서. 그리고 19살, 20살, 21살의 내가 앉아있었을 곳들. 수 없이 스쳐 지나갔을 이들의 체취와 기억들. 그 곳에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어연 마흔 살을 먹었다는 중앙 극장. 문이 닫힌 뒤 한참동안 밖을 서성이는 데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변변한 카메라 하나 챙겨오지 못한 나는 누군가에게 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할까하다가 이내 다가온 두 여성분에게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모 대학에서 언론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인데 사라지고 있는 극장들에 대해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들어 알게 된 '바다 극장'이란 곳은 이미 지난 주에 폐관을 했다고 한다. 6월에 꼭 가봐야지하며 핸드폰에 가는 약도까지 알아두어 메모했었는 데 이미 가볼 수 없는 곳이 되버렸다. 인터뷰를 하던 중 올라오는 감정을 주체 못하고 생전 모르는 여자 둘 앞에서 주책 맞게 눈물을 흘렸다. 나중에 좀 더 얘기를 나눠 보니 나와 동갑이라고 했다. 내가 존댓말을 계속 이어나가니 그들도 똑같이 해주었다. 새삼 지금 우리 나이가 사회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이렇게 예를 갖추게 되는 어른이 되었구나 싶어 기분이 이상했다.

 아침 등굣길에 올랐던 202번 버스에 또 다시 몸을 싣었다. 한동안 감정을 추스리다가 오늘 이 날을 기억할 매개체로 아이팟에서 음악 몇 개를 골라 들었다. 쿨의 추억이 오는 날. Otis Redding의 Sitting on the dock of the bay. 그리고 집에 도착해 한동안 엄마와 포옹을 했다. 왜 오늘 같이 극장에 가서 내 눈을 가려주지 않았느냐고 심술을 부렸다. 아, 이젠 얼마나 더 많은 상실을 겪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 심술로서 해결된다면 나는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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