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may contain: 5 people, cloud, sky and text


<극한직업> 등장인물, 스토리, 감독 등에 대한 정보 전혀 없이 동네 친구들과 운 좋게 우연히 보게 된 심야영화였다. 정말 많이 웃었고 즐거웠다. 그리고 잘 쓰여진 대사들과 배우들의 캐릭터에 감탄했다. 그렇지만 그 웃음들 이후 불편하게 머릿 속을 헤매는 잔여들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역시나 벗어나지 않는, 고쳐지지 않는 고질적인 여성 캐릭터에 대한 편견. 이 영화에서 대사를 가진 여성은 4명이다. (연출자의 지난 작품에 비해 주연급 5명 중 무려 1명을 여성으로 넣었으니 이를 발전이라 해야 할 지 모르겠으나...)‬


1. ‪잠복 수사 중에 중년의 여성이 마약반 형사를 두고 왜 자신을 스토킹하냐며 따진다. 여기서는 사회적인 ‘여성성’(성적 대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중년’으로 설정했다는 데에서 교묘하게 비켜나가며 이를 유희로 승화시키고자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건 ‘스토킹’은 농담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몇 년전 머리 나쁜 이 모배우가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멍이 든 내 다리를 보고 십 여명의 스텝들이 있는 자리에서 “어? 데이트폭력?”이라며 깔깔 웃었던 적이 있다. 만일 그것이 정말 데이트 폭력으로 인해 얻어진 상처였다면?


‘일방적인 폭력’은 유머의 소재가 아니어야 한다.‬


2. ‪공동 주연급인 마약반 5명에 그나마 여성 캐릭터 이하늬 한 명을 끼워준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지.. 그러나 그녀의 로맨스 라인은 흡사 미녀와 야수 급이다. 외모로 비하 받기 일쑤인 상대 동료와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키스를 나누는 순간 동료들은 대번에 그들을 두고 농담으로 (총을) 쏘라고 한다. 상대가 평소 외모 비하로 놀림 받아오던 대상이 아니었어도 그런 농담이 유머로 기능할 수 있었을 지 의문이다.


3. ‪마약반 반장의 부인은 철야로 잠복 수사를 하고 들어오는 신랑의 빨랫거리를 항상 명품 종이백에 담겨진 채로 받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잠복수사로 인해 우연히 큰 돈을 벌게 되자 그 명품 종이백에는 진짜 실물의 명품백과 현금다발이 담겨온다. 부인은 이에 기뻐하며 “나 씻을까?”라며 화답한다. 연출자는 집안일(무료 가사 노동)을 하는 여성에게 ‘명품백’이 과연 그 노동들에 응답하는 선물이라 순수하게 생각하고 쓴 것인지 궁금하다. 명품 좋아하는 여자는 곧 사치스러운, 일명 된장녀라는 익숙한 서사가 떠오르지 않는가? 이에 성관계를 암시하는 것으로 응답하는 아내(안 사람-을 뜻하는 말이어서 쓰기를 지양한다). 여기서 그녀의 역할은 '안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게 전부다.‬


4. ‪마약왕을 보필하는 보디가드 여성은 우리가 킹스맨에서 열광했던, 매력적인 살인무기를 연기한다. 그녀는 무자비하게 마약왕의 오더에 따라 사람들을 처치할 뿐 어떤 감정도 표현하지 않는다. 마지막 그에게 버림 받았을 때 내뱉는 한 마디가 이 캐릭터가 가진 대사의 전부다. 살인무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남성들은 이에 대한 어떤 지배 받는, 압도 되는 이상한 판타지가 있는 듯 하다. (하도 어이 없어 장문의 글을 쓰다 멈춘 <마녀>에 대한 이야기에서 추후 이것을 더 이어갈 수 있을 거 같다.)‬


‪한국 영화에서 제대로 된 여성 캐릭터를 보고 싶었던 마음은 역시 웃음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다. 다행이 이것이 올해 첫 영화가 아니었다는 것에 덜 허망해해야 할지...


그리고 채식을 하는 이로서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아는 사람이었다면 저런 포스터 속 카피(닭을 잡을 것인가 범인을 잡을 것인가)는 감히 생각도 못해냈을 것이다. 애초 닭이 곧 '서민'이라고 명명하는 영화의 전반적인 가치관 아니 대한민국 사회의 치맥으로 단결 된, 지나친 소비는 이를 당연한 전제로 깔고 들어간다.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생닭을 토막내고 조리하는 장면들은 정말 보기 매우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치킨 소비'가 팽배한 모습들 사이에서 나는 종종 침묵으로 빠져야만 했다.


AND